'무고의 무고의 무고' 장본인 차 아무개 씨를 알고 지냈던 한 변호사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차 씨의 시간은 서류 더미 속에 멈춰 있다. 차 씨는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2015년 5월 차 씨의 바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이 문제의 시작점이다. 바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방적 폭행을 무마하기 위해 폭행 피해자 손님 A 씨에 성추행 누명을 씌웠다. 그렇게 A 씨는 2016년 11월 징역 6월을 선고 받았다. 사건이 잘못된 걸 뒤늦게 알게 된 차 씨는 A 씨를 위해 곧바로 공익제보를 한다. 2016년 12월 차 씨의 결정적 증거 제출로 인해 재조사가 결정된다. 무고한 직원이 조사를 받고 A 씨는 2심에서 검사 무죄 구형으로 풀려나게 됐다.
‘[무고의 무고의 무고 ①] 출소 후 3만장 서류 속에 갇혀 사는 남자’ 이야기는 차 씨가 무고를 당한 A 씨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해주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고 사건을 만든 바 직원 이 아무개 씨와 조 아무개 씨가 검찰에 공익제보한 사람이 차 씨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차 씨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들 입에서 새로운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2일 이 씨는 갑자기 “각 범죄 사실은 차 씨의 무고 교사로 행한 일이다. 차 씨가 경찰관들과 친분이 있다. 그래서 경찰들이 무고인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차 씨는 갑작스런 이들 주장을 두고 ‘검찰과 무엇이든 얘기가 됐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씨 주장에 따르면 차 씨가 지시한 시점은 이 씨가 새벽 4시 48분 112에 허위 신고 이후 출동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난 다음이며 오후 6시 13분 파출소에 나가 첫 진술을 하기 전이다. 이날 차 씨와 이 씨 통화기록은 오후 6시 10분 신호음을 포함한 1분 2초 한 번이 전부다. 포렌식을 통해 이들 사이에 또 다른 대화가 없었다는 점은 밝혀졌다. 차 씨는 “현장에 없어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분 이내에 구체적인 허위 진술을 꾸며 지시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씨는 A 씨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지운 것도 차 씨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6시 50분 파출소에서 작성된 임의동행 보고서와 이후 강북경찰서 진술에서 이 씨는 “현장에 CCTV는 있으나 녹화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5월 3일 이 씨는 0시 45분부터 새벽 2시 49분까지 약 2시간에 걸쳐 무인 경비업체에 10차례 전화를 걸어 CCTV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 무인 경비업체와 통화 중이던 새벽 1시 10분 이 씨는 차 씨에게 카카오톡으로 “혹시 몰라 CCTV 다 포맷해버렸다”고 말했다.

이후 2017년 4월 20일에 열린 차 씨 무고 교사 재판에서도 이 부분이 쟁점이 됐다. 차 씨 변호인은 “대화에서 차 씨가 지우라고 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자 이 씨는 “들었던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이 “대화 내용만 보면 (지시했다고 보기에는) 이상하다”고 묻자 이 씨도 “네, 그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이 씨는 “CCTV 녹화는 안된다” “폭행 장면이 찍혀 있을까봐 증거인멸했다” “차 씨 지시로 지웠다”로 거듭 번복했고 그럼에도 진술은 그때마다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체포된 차 씨는 서울북부지검 검사실로 가게 됐고 그때 이 아무개 검사를 만나게 된다. 악연의 시작이었다. 그제야 차 씨는 자신의 무고 교사 혐의를 알게 됐다. 차 씨는 “나는 무고 사건의 공익제보자다. 교사한 사람이 제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외쳤지만, 이 검사는 “내일 영장 실질심사에서 말해보라”고 했다.
영장 실질심사는 짧게 끝났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차 씨는 구치소로 향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거는 없었다. 이번에도 조 씨와 이 씨 두 사람의 증언뿐이었다. A 씨를 향했던 두 사람의 증언이 이제는 차 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이 씨는 1월 2일 진술에서 “차 씨가 ‘경찰 누구를 만나 얼마를 접대했다’고 과시했다. 경찰들도 많이 안다”고 했고, 1월 10일 진술에서 “차 씨가 경찰에게 말을 잘해 놓았으니 진정서 내용대로 진술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차 씨는 무고 교사로 엮여 검찰 조사가 개시됐지만, 전혀 상관없는 얘기가 중심이 됐다. 서울북부지검 이 검사, 한 아무개 검사, 최 아무개 검사 등은 차 씨에게 경찰 비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구치소에서 차 씨와 동행한 교도관도 “검사들이 차 씨에게 경찰 비리를 털어놓으라고 한 건 맞다”고 말했다.
차 씨는 “공무원인 교도관이 굳이 없는 말을 지어낼 리 있겠나. 검사들은 내가 경찰과 친분이 있다고 알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예정되어 있어 경찰 비리가 필요하다. 네가 경찰관 10명만 제보해서 신문 1면에 낼 수 있게 경찰 비리를 제보해 달라. 윗선에서 그걸 원한다’고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차 씨는 기소 전까지 약 17일 동안 4차례 소환 조사됐다. 차 씨는 “한 번 소환조사 때마다 검사실 세 곳을 돌고 와야 했다. 무고 교사 혐의는 조사하지 않고 경찰 비리를 자백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3차 압수수색에서 이상한 모습이 포착됐다. 차 씨 명의와 사건 번호로 압수수색이 진행됐지만 압수한 휴대전화는 차 씨 것이 아니었다. 차 씨에 따르면 무고 사건과 전혀 무관한 조직폭력배 김 씨 휴대전화였다고 한다. 차 씨를 향해 또 다른 검사의 사건 수사가 준비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차 씨와 함께 검찰 조사에 입회했던, 익명을 요구한 강 아무개 변호사는 당시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며 얘기를 털어놓았다. 강 변호사는 “처음 이 검사가 차 씨에게 ‘당신 아내 직업이 뭐냐’고 물었고 차 씨가 ‘공무원’이라고 답하자, 이 검사가 ‘무슨 공무원이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차 씨가 ‘그게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었다”면서 “조사에서 이 검사는 차 씨에게 어떤 감정이나 최소한 편견이 있어 보였다. 차 씨가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수사가 진행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2017년 2월 7일은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날이었다. 이날 차 씨는 이 씨와 조 씨를 무고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차 씨에 대한 이 검사의 첫 번째 기소였다. 또한 같은 날 조 씨는 검찰에 차 씨가 2015년 1월 노 아무개 씨 사건에서 무고 교사를 했다는 새로운 진술을 했다. 굴레가 하나 더 씌어진 셈이다.
2월 7일 검찰에서 조 씨는 “2015년 1월 가게 손님으로 온 B 씨와 C 씨가 여성 종업원이었던 노 씨를 만지려고 했지만 노 씨가 방어해 만지진 못했다. 이를 차 씨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차 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노 씨와 경찰차를 타고 가면서, 차 안에서 노 씨를 위로하는 척 추행했다. 추행한 건 차 씨인데 손님들이 추행한 걸로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월 8일 노 씨도 검찰에서 조 씨 진술을 인정하면서 “차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각본을 짜줬다”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은 B 씨와 C 씨가 노 씨 성추행 사건과 차 씨 폭행 사건을 인정하며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바 있다. 하지만 조 씨와 노 씨 진술은 차 씨가 모든 것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2017년 2월 22일 이 검사는 B 씨와 C 씨가 노 씨 성추행 사건을 무고 교사한 혐의로 차 씨를 또 다시 기소했다. 차 씨를 향한 수사는 계속됐다. 1월 20일 구속된 이후 첫 기소된 2월 7일 전까지 4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이후 3월 15일까지 3차례 더 조사를 받았다.
3월 15일 소환 조사는 차 씨 변호사인 강 변호사에게도 황당한 날로 기억됐다. 당시 차 씨 사건을 수임한 로펌에서 새롭게 정 아무개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고 이 소식이 이 검사에게 전해진다. 사건 조서에 보면 이 검사는 정 변호사 선임 소식에 분노해 전화를 그대로 끊었다. 이 검사는 차 씨와 강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정 변호사는 내 동기면서 내 결혼식에도 안 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선임한 이유가 뭐냐”며 서류를 뿌리고 화를 냈다.
차 씨와 강 변호사는 당황해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차 씨는 “나는 구치소 안에 있어 정 변호사가 선임된 사실도 몰랐고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 이 검사가 그런 말을 안 했다면 정 변호사가 이 검사 결혼식에 안 갔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잠시 후 이 검사가 화를 삭이더니 그 장면을 피의자 신문조서에 담아뒀다. 차 씨 설명에 따르면 신문조서 속에 남은 다소 어색한 이 검사의 분노 장면은 그렇게 발생한 것이었다.

강 변호사는 “나중에 그 일이 이 검사가 ‘당신 신변을 걱정하라’는 의미로 사임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 변호사도 차 씨의 변호사였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받으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차 씨를 향해 경찰 비리를 제보하라는 압박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당시 차 씨와 동행한 교도관도 “한 번 소환되면 여러 검사실을 돌았다. 경찰 비리를 말하라는 압박도 거세졌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치소 측에도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