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 지명’ 1991년부터 스타 산실로, ‘지역 불균형’ 한때 폐지…‘포스트 이의리’에 관심 고조
1차지명은 프로 입단을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혜택이다. 억대 계약금을 보장받고, 다른 신인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지명을 통해 입단한 선수들이 팀의 간판스타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 제도의 수혜자가 나오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 내년 시즌부터 10개 구단 전력 평준화를 위해 연고 지역 1차지명이 사라지고 전면 드래프트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 차례 폐지와 부활을 거쳤던 제도라 두 번째 폐지에는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초창기엔 '무제한'
1차지명 방식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초창기에는 인원 제한이 없었다. 프로야구가 지역 연고제에 기반을 두고 출범한 터라 신인 수급도 각 구단 연고 지역 출신을 최대한 많이 뽑는 데 의의를 뒀다.
연고 지역 고교 출신 선수라면 누구든 인원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지명할 수 있었다. 1차지명에서 제외된 선수들만 2차지명에 나와 다른 지역 팀의 선택을 받았다. 1986년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한화의 전신)가 창단하면서 처음으로 1차지명 인원 제한이 생겼지만, 최대 10명까지는 뽑을 수 있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프로야구 초창기의 각 팀 스타플레이어들은 대부분 1차지명 선수들 안에서 나왔다. 프로야구 첫 1차지명 선수들이 입단한 1983년 신인들 중에는 김시진 양일환 김동재 장효조 황병일(이상 삼성 라이온즈), 장호연 한대화 박종훈(이상 OB 베어스·두산의 전신), 최동원 심재원 한문연 박영태 우경하 유두열(이상 롯데 자이언츠), 임호균(삼미 슈퍼스타즈) 등이 포함됐다.
1984년 신인 중에도 문희수(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 김성래(삼성), 김진욱 윤석환 김광림(이상 OB), 윤학길 정인교 조성옥(이상 롯데), 최계훈(삼미) 등이 나왔다. 1985년엔 선동열 이순철(이상 해태), 이종두 김성갑 김용국(이상 삼성), 김용수 정삼흠 박흥식(이상 MBC 청룡·LG 트윈스의 전신), 양상문 한영준(이상 롯데)이 1차지명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0명 제한이 생긴 1986년 신인 중에도 인재는 많았다. 김정수 신동수 장채근 이건열 김평호(이상 해태), 성준(삼성), 김건우 김태원 서효인 민경삼(이상 MBC), 박노준(OB), 윤학길 박동희(이상 롯데), 김동기 이광근(이상 청보 핀토스), 한희민(빙그레) 등이 배출됐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손가락질'
'1차지명'이라는 타이틀에 실질적 의미가 생긴 건 1987년부터다. 지명 규모가 3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한 1990년에는 2명,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에는 1명으로 각각 줄었다. '1차지명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진정한 훈장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시기다.
처음 3명으로 축소된 1987년에는 백인호 박철우(이상 해태), 류중일 강기웅(이상 삼성), 노찬엽(MBC)이 나타났다. 1988년에는 조계현(해태), 송진우(빙그레)가 탄생했다. 1989년 1차지명 선수 가운데선 이강철(해태)이 독보적으로 성공했다. 1990년에는 김경기(태평양 돌핀스), 김동수(LG), 공필성(롯데)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단 한 명만 지명할 수 있게 된 1991년부터는 1차지명이 진정한 '스타의 산실'로 거듭났다. 그해부터 1999년까지 1차지명 선수 가운데 송구홍 이상훈 유지현 심재학 이병규(9번) 조인성 임선동(이상 LG), 박정태 손민한(이상 롯데), 조규제 이진영(이상 쌍방울 레이더스), 박재홍 이종범 정성훈(이상 해태), 김태한 양준혁 강동우(이상 삼성), 정민태 최상덕(이상 태평양), 구대성 홍원기 박정진(이상 빙그레·한화), 최원호(현대 유니콘스), 최기문 김동주 홍성흔(이상 OB) 등이 스타로 성장했다. 특히 1993년은 구대성, 양준혁, 이종범, 이상훈이 나란히 1차지명을 받고 데뷔한, 무시무시한 해였다. 이 중 신인왕은 양준혁이 가져갔다.
물론 실패 확률도 높아졌다. 1차지명 선수는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기대 속에 입단하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다. 각 구단 스카우트들도 더 신중하게 선수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왔다. 1차지명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세간에 더 유명한 이유다.
실제로 1인 지명이 처음 시작된 1991년 해태는 거포 유망주 김기태 대신 투수 오희주를 골랐다. 김기태는 특별 지명으로 쌍방울에 갔다. 결과는 현재 둘의 지명도가 말해준다. 김기태는 통산 홈런 249개를 친 한국 프로야구 대표 거포로 이름을 날린 뒤 KBO리그 감독(LG·KIA)까지 역임했다. 반면 오희주는 4년간 1군 통산 33경기에서 3승 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77을 남겼다.
2006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가 동산고 왼손 투수 류현진(현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대신 인천고 포수 이재원을 1차지명한 사례도 회자된다. 이재원은 희귀한 포지션인 포수에 거포 자질까지 갖춰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류현진은 고교 2학년 때 받은 팔꿈치 수술 이력 탓에 마지막 순간 2차지명으로 밀렸다.
다만, SK의 지명이 '실패'라고 보긴 어렵다. 이재원도 이후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아 충분히 제 몫을 했다. 이듬해 SK가 안산공고 왼손 투수 김광현(현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1차지명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2차지명을 통해 한화에 입단한 류현진이 워낙 범접할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류현진을 놓친' SK의 선택이 두고두고 도마 위에 오른 이유다. 당시 류현진을 선택했다면 SK는 류현진 김광현, 국내 최고 좌완투수이자 현재 메이저리거인 둘을 모두 보유할 수 있었다.
#김태균·김광현·최정·오지환도…
2000년부터는 4년간(1996~1999년) 존재했던 고졸 우선지명 제도까지 없어지면서 연고 지역 1차지명 1인과 전면 드래프트 형식의 2차지명으로 틀이 잡혔다. 2007년에만 한시적으로 1차지명 선수를 두 명 뽑았을 뿐, 지금과 같은 한 명 선발 원칙을 계속 고수했다. 단, 서울에 입성하려다 차질이 생겨 연고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현대는 2003~2008년 1차지명 선수를 뽑지 못하는 불이익을 겪었다. 2000년대 초반 최강팀이었던 현대가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린 원인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굵직굵직한 선수들이 1차지명을 통해 등장했다. 2000년 삼성 배영수, 2001년 한화 김태균, SK 정상호, LG 이동현이 그 안에 포함된다. 롯데는 2001년 연고지 대형 유망주를 1차지명했지만 계약하지 못해 지명권을 허공에 날렸다. 지금 SSG에서 뛰고 있는 부산고 출신 추신수다.
2002년에는 삼성 권혁과 KIA 김진우, 2003년에는 두산 노경은(현 롯데), 한화 안영명, LG 박경수(이상 현 KT 위즈), SK 송은범(현 LG), 2004년에는 삼성 박석민(현 NC 다이노스), 두산 김재호, 2005년에는 SK 최정이 각각 1차지명 선수로 선택받았다. 2006년에는 앞서 언급한 SK 이재원과 한화 유원상(현 KT), KIA 한기주가 주요 선수로 꼽힌다.
유일하게 두 명을 뽑을 수 있었던 2007년은 SK는 에이스 김광현을 품에 안았다. 두산은 그해 뽑은 투수 임태훈과 이용찬(현 NC)이 각각 2007년과 2009년 신인왕에 올랐다. 롯데는 경남고 원투펀치인 투수 이재곤과 이상화를 함께 데려왔다. 한화는 북일고 투수 장필준(현 삼성), KIA는 진흥고 투수 정영일(현 SSG)을 각각 지명했지만 둘 다 당시 해외로 진출해 팀에 데려오지 못했다.
다시 1인 지명으로 돌아간 2008년에는 롯데 장성우(현 KT)와 LG 이형종, 2009년에는 삼성 김상수, LG 오지환, SK 김태훈이 각각 1차지명으로 데뷔했다.
#4년간 폐지됐다 부활
1차지명은 한때 폐지되기도 했다. 지역마다 고교 유망주의 불균형이 심해 특정 팀이 계속 이득을 본다는 불만이 높아진 탓이다. 결국 전력 평준화를 위해 2010~2013년 4년간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됐다. 이 시기에 연고 지역과 관계 없이 신인 지명 1라운드로 뽑힌 선수들이 바로 문승원 서진용(이상 SK), 한현희 조상우(이상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김원중(롯데), 박민우(NC), 하주석(한화), 임찬규(LG), 심창민(삼성) 등이다.
그러나 전면 드래프트는 4년 만에 폐지됐다. 프로야구의 근간인 지역 연고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반발이 심했다. 프로 구단들이 연고 지역 아마 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이유가 없어졌고, 대형 유망주들은 1차지명으로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이 줄어들자 줄줄이 해외 진출을 택했다. 결국 5년 만에 연고지 1차지명이 부활했다.
다시 시작된 2014년 신인 1차지명에는 최초로 막내 KT까지 10개 구단이 참여했다. 이후 2020년까지 7년간 1차지명을 받은 선수 중엔 최원태 이정후 안우진(넥센·키움) 이영하 최원준(두산) 주권 소형준(KT) 김범수(한화) 최충연 최채흥 원태인(삼성) 김대현 고우석 이정용 이민호(LG) 한동희(롯데) 오원석(SSG) 정해영(KIA) 등이 프로에서 주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가운데 이정후와 정해영은 특별한 역사도 썼다. 이정후는 아버지인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와 함께 최초의 부자(父子) 1차지명 영광을 안았다. 이 코치는 1993년 해태, 이정후는 2017년 넥센의 1차지명을 받아 프로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정해영은 아버지(정회열 전 KIA 코치)가 몸담았던 팀에 입단하면서 사상 첫 부자 동일구단 1차지명 사례를 남겼다. 명 포수였던 정회열 전 코치는 1990년 해태 1차지명으로 데뷔했고, 정해영은 2020년 KIA에 1차지명 됐다.
다만 과거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데뷔 직후 즉시 전력으로 활약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입단한 1차지명 선수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거나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일부 신인왕급 유망주를 제외하면, 최소한 3~4년, 더 나아가 5~6년은 걸려야 1차지명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 신화 쓸 주인공은?
올해 1차지명으로 입단한 신인 중 가장 성공한 선수는 단연 이의리(KIA)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KIA 유니폼을 입은 그는 양현종(현 MLB 텍사스 레인저스)이 떠난 왼손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은 데 이어 도쿄올림픽에서도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로 눈도장을 받았다.
올해 역시 많은 팀이 '포스트 이의리'를 찾기 위해 눈을 불을 켰다. 연고지 유망주를 우선적으로 데려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더 그렇다. 일단 지난 시즌 1~7위 팀은 23일 2022년 신인 1차지명 선수를 공식 발표한다. 서울 3팀은 매년 로테이션에 따라 지명 순서를 정하는데, 올해는 두산-LG-키움 순으로 결정할 수 있다.
지난해 최하위 한화, 9위 SSG, 8위 삼성은 다른 7개 구단의 결정이 끝난 뒤 30일까지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전국에서 원하는 유망주를 1차지명할 수 있다. 전력 불균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에 한해 도입된 규정이다. 물론 구단 연고 지역에 좋은 유망주가 있다면, 1차지명을 결정하고 23일 함께 발표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실제로 2019년 8위 삼성은 지난해 전국 지명권을 포기하고 연고 지역 최고 유망주인 대구상원고 이승현을 1차지명했다. 반면 2019년 최하위 롯데와 9위 한화는 각각 연고지 밖에서 장안고 포수 손성빈과 부산고 내야수 정민규를 뽑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