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랜드 칼리지, 영국 왕실 비롯해 전 세계 부호들 ‘러브콜’…옥스퍼드보다 학비 비싸지만 취업 걱정 ‘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육 훈련 기관이기도 한 노를랜드 칼리지 출신의 유모들이 특별한 이유는 이들이 어디에서나 흔하게 고용할 수 있는 평범한 유모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 발달 전문가인 것은 물론이요, 위험 상황에 대비해 호신술도 연마했으며, 파파라치나 극성팬들을 피해 재빠르게 이동하는 운전 기술과 심지어 대테러 훈련까지도 받았다. 노를랜드 칼리지 출신의 유모들을 가리켜 ‘메리 포핀스와 제임스 본드를 합쳐 놓은 존재’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를랜드 칼리지는 1892년 교사였던 에밀리 워드가 설립한 전문학교다. 당시만 해도 상류층 자녀들을 돌보는 유모 역할은 평범한 가정부가 맡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가정부들이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만큼 전문적이지도 않았으며, 일부는 월급을 받는 만큼만 혹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만 돌볼 뿐 그 이상으로 정성껏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보육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던 워드는 독일의 교육학자인 프뢰벨의 원칙에 입각한 전문학교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해서 문을 연 노를랜드 칼리지는 현재 100년 넘게 오로지 전문 유모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입학 절차는 까다롭고 신중하게 진행된다. 해가 갈수록 지원자가 증가하자 5년 전 100명이었던 정원을 250명으로 늘렸지만 그럼에도 매년 3 대 1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원자는 중산층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생)가 주를 이룬다. 문신 혹은 피어싱을 했거나 술이나 마약을 하는 경우에는 지원할 수 없다. 학비는 1년에 1만 3000~1만 4000파운드(약 2000만 원)가량이며, 이는 옥스퍼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대학보다 높은 수준이다.
노를랜드 칼리지에 입학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인성 조건도 있다. 무엇보다 다정다감한 성격이어야 하며, 여기에 친절함, 정직성, 창의성, 책임감, 조직력 등 여러 자질을 갖추었는지도 테스트 받는다. 과거 보육 경험이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했거나 개인 가정에서 보모로 일해 본 경험이 있을 경우 가산점을 부여 받는다. 몇 년 전부터는 남학생도 하나둘 입학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10여 명이 전문 보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
복장 규정도 까다로운 편이다. 화려한 보석류를 착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손목시계도 착용해선 안 된다. 또한 머리는 길게 늘어뜨려선 안 되며, 뒤로 묶거나 짧게 잘라야 한다. 화장은 옅게 해야 하고, 매니큐어는 금지돼 있으며, 껌을 씹거나 패스트푸드 취식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유모란 직업이 어린 아이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돌봐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를랜드 칼리지 학생들을 다른 일반 유모들과 차별화시키는 것은 유니폼, 즉 교복이다. 연한 갈색이 특징인 이 교복은 1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디자인에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한 것으로, 노를랜드 칼리지의 역사와 품격을 상징한다. 이렇게 교복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 과거 워드는 “졸업생들이 평범한 가정부로 오해받지 않고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노를랜드 칼리지 학생들이 교복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복에는 갈색 원피스 외에도 갈색 신발, 타이즈, 모자, 그리고 겨울에 착용하는 갈색 장갑과 여름에 착용하는 흰색 장갑 등도 포함된다. 전체 교복의 비용은 약 800파운드(약 130만 원) 정도다.
교복을 입은 채 껌을 씹거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보행 중에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으며 술도 구입할 수 없다. 다만 교복을 벗은 사복인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다. 졸업 후에는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아도 돼지만 고용인이 원할 경우에는 교복을 입고 출근해야 한다.
노를랜드 칼리지만의 독특한 교과 과정은 최신 연구에 맞춰 시대와 함께 발전해 왔다.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되 핵심 가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모든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3년간의 기본적인 교과 과정을 이수한 후 마지막 1년 동안 진행되는 실습을 완료할 경우 학사학위와 함께 ‘노를랜드 유모’ 혹은 ‘노를랜더’라는 정식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인턴과도 같은 실습 기간 동안에는 보육원이나 병원 또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기본 교과 과정인 3년 동안 학생들은 아동 심리학, 건강, 아동 교육 철학, 안전 및 보호, 건강 및 웰빙 증진, 행동발달, 영양학, 보안학, 사회 복지학 분야 등 관련 분야에 대해 두루 배운다. 또한 요리, 바느질, 메이크업, 연극 강좌, 수면 강좌 등도 기본적으로 터득하며, 모유 및 젖병으로 우유 먹이기, 수면 습관, 배변 습관, 기저귀 교체, 질병의 징후 발견, 레크리에이션 등 아이를 보육하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배운다.
이 밖에도 두루마리 휴지 심을 악기로 바꾸는 법, 테디 베어와 함께 완벽한 피크닉을 즐기는 법, 색다른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법, 주제가 있는 생일 파티를 여는 법 등 다양한 기술도 배운다. 체벌이 필요할 때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하는 대신 노를랜드 칼리지의 교훈이기도 한 ‘사랑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를 기본으로 훈육한다.
컴퓨터칩이 장착된 갓난아기 인형을 통해 실습 훈련을 하기도 한다. 실제 갓난아기와 거의 흡사하게 제작된 이 인형은 울거나 보채기도 하며, 오줌을 싸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틀 밤 동안 이 인형을 돌보면서 새벽에 깨서 보채는 갓난아기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실감나게 배우게 된다. 기본적인 응급처치 훈련은 물론 휴가 기간 동안 바다에서 생명을 구출해야 할 경우에 대비한 인명구조 기술도 배운다.
노를랜드 유모들이 다른 유모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통 왕실이나 고위층, 혹은 유명인사들의 유모로 채용되는 까닭에 노를랜드 유모들은 뜻밖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특수 훈련을 받는다. 가령 전 영국군 정보장교에게서 배우는 보안 및 대테러 훈련 과정은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머물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훈련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호신술 가운데는 태권도 과정도 포함돼 있다. 검은띠 전문가가 가르치며, 납치와 같은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모들은 발차기와 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심지어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모차를 손에서 놓지 않은 상태로 가해자에게 헤드록을 걸 수도 있다.
극한의 운전 기술도 습득한다. 비나 눈이 내리는 등 어떤 악천후에서도 고속으로 안전하게 운전하는 법을 배우며, 그 결과 빙판길이나 급커브에서도 납치범이나 파파라치를 따돌릴 수 있을 만큼 능숙한 운전 솜씨를 자랑한다. 이런 고도의 운전 기술은 레이싱 서킷에서 스턴트 드라이버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다. 하지만 예방이 우선일 터. 졸업생인 리암 윌렛은 “나는 자주 방문하는 장소를 갈 때는 일부러 다른 노선을 택해서 운전한다. 새로운 행선지로 향할 때는 출발하기 전에 그 장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아본다”고 설명했다.
워낙 수요가 많으니 졸업 후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모임에도 불구하고 노를랜드 유모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크게 앞지르고 있으며,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학생들은 한 명당 최소 여섯 군데의 일자리 의뢰를 받고 있다. 해가 갈수록 호황을 누리고 있는 영국을 비롯해 점차 중동,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도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노를랜드 유모의 초봉은 평균 4만 파운드(약 6400만 원) 정도. 어느 정도 경력을 인정으면 적게는 연간 7만 5000파운드(약 1억 2000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달러(약 1억 6000만 원) 넘게 받기도 한다. 이는 평범한 유모들이 받는 평균 연봉의 네 배가 넘는 금액이다.
조지 왕자 샬럿 공주도…노를랜드 칼리지의 주고객은 영국 왕실
노를랜드 유모의 단골 고객들은 영국 왕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많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세 자녀인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 왕자의 유모로 노를랜드 칼리지 출신 마리아 보랄로(43)가 낙점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딸인 앤 공주도 노를랜드 유모의 손에서 자랐으며, 이밖에 영국 록스타 믹 재거와 제리 홀 부부의 두 자녀도 노를랜드 유모의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단, 노를랜드 출신이라고 모두 왕실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왕실에 채용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비밀스런 과거가 있어서도 안 된다. 현재 켄싱턴궁에서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유모로 근무하고 있는 보랄로의 경우에는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베테랑 유모다. 왕실 행사와 이벤트가 있을 경우 뒤에서 모든 준비를 돕고 있으며, 왕자와 공주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무엇을 보게 될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노를랜드 칼리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루이스 헤렌에 따르면, 왕실에서 근무하는 유모들은 절대 ‘키드(Kid·꼬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도록 배운다. 헤렌은 “키드라는 단어는 금지되어 있다. 이는 아이들을 각각의 개인으로 존중하고자 하는 의미에서다”라고 설명했다. 헤렌은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 루이 왕자가 비교적 평범하게 자라고 있다고 말하면서 “가령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하고, 학교에 간다. 좋든 싫든 교복도 입어야 한다”면서 “보통의 영국 어린이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