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압감 느낀 듯 호투와 최악투 오가며 기복…정근우 “순간 대처 아쉬워” 송재우 “장고 끝에 악수”
류현진은 지난 8월 4일 클리블랜드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다음 9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3⅔이닝 10피안타 7실점으로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이후 22일 디트로이트전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시즌 12승을 수확했는데, 다시 27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선 3⅔이닝 동안 7피안타 1볼넷 4탈삼진 7실점을 기록한다. 특히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한 경기 3피홈런을 허용했는데 이는 지난해 9월 8일 양키스전 이후 처음이다. 7실점 경기는 9일 보스턴전에 이어 두 번째다. 올 시즌 25경기에 등판한 류현진이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후)를 기록한 건 12번으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류현진이 올 시즌 들어 유독 기복 있는 피칭을 하는 이유가 뭘까. 잘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잘하다가도 무너질 때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기들이 반복되고 있다. 27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패전 투수가 된 류현진은 경기 후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한 경기, 한 이닝에 많은 실점을 해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며 자신의 투구를 돌아봤다. 류현진도 8월에만 두 차례 7실점 경기가 나왔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류현진은 화이트삭스전 패전으로 평균자책점이 3.88까지 치솟았다. 한때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그가 지금은 4점대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현재 12승인 류현진은 게릿 콜(뉴욕 양키스), 크리스 바싯(오클랜드 애슬레틱스)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이날 승리를 챙겼다면 단독 1위를 찍었겠지만 평균자책점만 올린 결과를 만들었다.
류현진을 KBO리그 시절부터 상대했고, 후배의 메이저리그 진출 후 응원하는 입장이 된 정근우는 27일 기자와 통화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22일 디트로이트전에 비해 이날 화이트삭스전은 공을 던지는 팔 스윙에 힘을 싣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투구 밸런스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 대처 능력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류현진의 주무기가 체인지업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불리한 순간에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 타자들은 그 부분을 노리고 들어온다. 화이트삭스전에서도 3회 2사 후 팀 앤더슨한테 안타를 내준 것도 체인지업이었고, 호세 아브레유로 7구째 체인지업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지 않았나. 타순이 한 바퀴 돌았을 때 타자들이 노리는 공이 어떤 것인지 파악된다면 그에 따른 대처를 보다 빨리 했어야 한다.”
민훈기 스포티비 해설위원도 화이트삭스전은 토론토와 류현진보다 상대팀이 훨씬 더 세밀한 준비를 하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류현진이 공이 몰린다 싶으면 상대 타자들이 어김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류현진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공을 던질지 다 읽고 나온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공 끝의 정교함이 떨어지면 바로 홈런을 맞게 되더라. 구속이 느린 공에 정교함마저 떨어진다면 상대 타자한테는 치기 좋은 공이 될 수밖에 없다.”
민훈기 위원은 경기 초반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잡히느냐 차이가 결과를 결정짓는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초반에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스타일이다. 강속구 투수가 아니기 때문에 초반에 밀리면 4회 이후 힘든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4회 이후 투구 내용이 중요하다. 화이트삭스전도 마찬가지였다. 1, 2회 잘 던지다 3회부터 흔들린 건 주도권을 상대 타자들한테 빼앗겼기 때문이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았을 때 류현진이 어떤 패턴으로 투구할지를 상대가 정확히 꿰뚫어 본 듯했고, 그로 인해 류현진이 공을 던지면서도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로비 레이 합류 후 에이스 대우와 중심축이 류현진에서 로비 레이 쪽으로 기울어진 분위기를 보인다. 민훈기 위원은 그런 상황과 맞물려 몬토요 감독이 이전 시애틀과 원정 경기에서 류현진을 예상보다 일찍 교체했던 부분 등 일련의 상황들이 류현진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방송 중계 전 훈련 장면을 미리 보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류현진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경기 앞둔 선발 투수의 비장함이라고 이해했지만 중압감을 많이 느낀 듯했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앞두고 매 경기 결과의 비중이 커지면서 류현진도 심적 부담이 클 것이다. 로비 레이가 호투를 하고 있는 부분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때일수록 하루 정도는 더 쉬고 등판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류현진 공의 정교함을 살리는 건 테크닉이 아니라 휴식과 심리적인 부분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 본다.”
송재우 해설위원도 류현진의 표정을 언급했다. 오랫동안 류현진 경기를 중계하다 보면 무표정의 대명사인 류현진의 얼굴에서 미세한 감정 표현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선수가 잘할 때는 자신감 있는 표정이 보인다.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디트로이트전(8월 22일)도 전체적으로 류현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자신이 잘 던진 공인데 왜 안타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항변하는 듯했다. 구속이 빠르지 않은 선수는 상대 타자한테 자신의 투구 패턴을 읽히는 걸 매우 꺼린다. 자신이 싫어하는 포인트가 경기 중에 나올 때 류현진의 표정이 변하는 걸 알 수 있다.”
27일 화이트삭스전 이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류현진에게 “보스턴 레드삭스를 비롯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상위권 팀들한테 고전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류현진은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이 잘하진 못했지만 매 경기 중요한 상황이라 다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송재우 위원은 이와 관련해 “투수들은 하던 대로 하는 게 제일 어렵다”면서 “하던 대로 하면 서너 경기 연속 좋은 투구가 나오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퐁당퐁당’의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흔히 타자들도 타석에서 생각이 많아지면 투수의 타이밍에 늦게 방망이가 나오면서 쫓기는 입장이 된다. 반대로 투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리드하지 못한 채 타자한테 끌려가면 좋은 공을 던질 수 없다. 류현진은 자신의 투구 패턴이 읽힐 때마다 더 정교하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식을 갖고 피칭하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정교한 투구에 발목이 잡혀 다른 걸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류현진 등판 시 토론토 타선 지원이 좋은 편이다. 로비 레이는 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다. 류현진으로선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송재우 위원은 아무리 데이터가 발달돼 있고, 좋은 분석 자료가 있다고 해도 선수의 감각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류현진처럼 감을 중요시하는 선수가 정교함을 의식하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류현진은 보더라인에 걸치는 칼제구의 공을 던졌다 갑자기 타자의 허를 찌르는 몸쪽 깊은 곳에 피칭하는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넣었다 뺏다 하는 걸 중요시하는 선수인데 빠져야 할 곳이 존 안으로 들어가 맞으면 큰 데미지를 입는다. 그러다 보면 공 던지기 전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타자한테 수를 읽히고 실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9월의 류현진한테선 조금 더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제 시즌이 40일 가까이 남았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린 마지막 한 달이기에 류현진이 좀 더 자신감 있는 투구를 하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