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계 멈춘 차우찬, 근막통증 이탈 이정후…“병역특혜 빼고 다 얻었다” 박세웅‧김진욱 업그레이드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한국은 본선에 진출한 6개국 중 4위에 그쳐 빈손으로 돌아왔다. 목표였던 금메달은 물론이고,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동메달조차 손에 넣지 못했다. '기회'라 여겼던 대회가 '상처'로 돌아온 셈이다.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야구대표팀은 각자 자신의 소속팀으로 돌아가 조용히 후반기를 시작했다. 소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큰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선수도 있고, 절치부심한 덕인지 올림픽 전보다 더 승승장구하는 선수도 있다. 반면 올림픽 브레이크 때 쉬지 못해 체력 저하를 호소하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다 성적이 떨어진 선수도 있다. 대표팀 선수들의 엇갈린 희비에 따라 소속팀들도 울고 웃는 나날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돌아오지 못하는 차우찬
올림픽 출전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선수는 LG 트윈스 왼손 투수 차우찬이다. 복귀 후 아직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차우찬은 지난해 7월 24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 등판했다가 어깨 힘줄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기약 없는 회복을 기다리다 지난해 11월에야 가까스로 재활을 시작했다. 그 사이 차우찬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고, 원 소속팀 LG와 2년 총액 20억 원에 계약했다.
다만 그중 70%인 14억 원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다. 보장된 금액은 매년 3억 원뿐이다. LG 입장에선 어깨 부상을 당한 투수와 계약하면서 큰돈을 선뜻 쓰기 어려웠던 거다. 그래도 차우찬은 7개월에 걸친 재활을 이겨내고 지난 6월 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317일 만에 1군 복귀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을 기록해 승리 투수가 됐다. 다음 등판인 12일 두산전에서도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자 김경문 국가대표팀 감독은 나흘 뒤 올림픽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차우찬을 투수진에 포함시켰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미국으로 떠난 뒤라 "대표팀에 경험 많은 왼손 투수가 너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된 투수라 많은 이가 걱정했지만, 차우찬은 명단 발표 직후인 18일 KIA전에서도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해 청신호를 켜는 듯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차우찬은 그 다음 두 경기에서 각각 5이닝 7실점과 1⅓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직구 구속도 점점 떨어졌다. 경기 중 단 한 개의 투구도 시속 140km를 넘기지 못했을 정도다. LG는 곧바로 차우찬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휴식을 줬다. 그러나 대표팀은 끝까지 차우찬을 엔트리에서 빼지 않았다. 차우찬은 결국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4경기에서 2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많은 공을 던진 건 아니지만, 긴장도가 높은 국제대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불펜 역할을 맡으면서 여러 차례 몸을 풀고 대기하기를 반복한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LG는 복귀한 차우찬에게 2주일 정도 컨디션 회복 시간을 준 뒤 지난 8월 23일 1군 경기에 내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차우찬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8월 17일로 예정됐던 2군 실전 점검이 무산됐고, 회복 과정도 제자리걸음을 했다. 류지현 LG 감독은 최근 "차우찬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아직 정확하게 복귀 날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캐치볼 뒤에 불펜 피칭, 2군 등판, 1군 복귀 등의 단계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가장 아쉬운 건 차우찬 자신이다. 어렵게 어깨 부상을 떨쳐내고 돌아왔는데, 다시 시계가 뒤로 돌아가 멈춰 있는 상태다. 올 시즌에 걸려 있던 옵션 7억 원은 이미 날아간 거나 다름없다. 이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내년 시즌 옵션 달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차우찬이 선발진에 복귀한 뒤 선발 요원 정찬헌을 키움 히어로즈로 보내고 베테랑 내야수 서건창을 데려온 LG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차우찬과 LG 입장에선 이래저래 아쉬움과 후회만 남긴 올림픽이다.
#3년 만에 부상으로 이탈한 이정후
키움 이정후도 부상으로 이탈한 상태다. 이정후는 후반기 시작 후 4경기에서 타율 0.429(14타수 6안타) 5타점 맹타를 휘둘렀지만, 지난 8월 17일 오른쪽 옆구리 통증을 느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뒤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피로 누적으로 인한 단순 근육통으로 여겼지만 통증이 잦아들지 않아 재검진을 받은 결과 '근막통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 프로 구단 트레이너는 "똑같은 부위를 반복해 사용하면 근막통증 증후군이 생긴다. 통증 부위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하면 근육이 멀쩡하고 뼈에도 문제가 없어 보여서 처음엔 부상 원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근막통증 증후군은 빠르게 호전되기도 하지만, 가끔 통증이 오래 가기도 한다.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답"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후의 이탈은 키움에 큰 악재다. 이정후는 부상 전까지 시즌 타율 0.348로 팀 내 1위였다. 출루율(0.441)과 장타율(0.503)을 합한 OPS도 0.944로 높아 팀 공격의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정후가 빠진 뒤 첫 10경기에서 키움의 팀 타율은 0.215로 리그 최하위였다. 이 기간 키움은 3승 1무 6패로 부진했다. 4번 타자 박병호의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이뿐 아니다. 이정후는 수비와 주루에서도 비중이 크다.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던 2018년(109경기)을 제외하면 매년 140경기 이상을 뛰었다. 키움 야수들 중 이정후를 대체할 만한 선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휴식 없이 이어진 강행군이 이정후의 몸에 악영향을 미쳤다. 전반기 마지막 10경기를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던 그는 후반기가 시작된 후에도 3경기 만에 다시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다. 그러다 탈이 나면서 호미로 막을 통증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된 거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정후는 정신력과 투지가 강한 선수다. 좀처럼 '아프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 선수인데, 아파서 빠진 게 처음이라 여러 모로 조심스럽다. 급하게 복귀시키려다 상황을 악화하는 것보다 선수가 건강하게 시즌을 마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행히 최근 빠르게 통증이 호전되고 있다. 키움 관계자는 "기술훈련을 시작했다. 재발하지 않는다면, 9월 15~16일 정도에 2군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르면 17~19일 주말 3연전 중 복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장기 개점휴업 뒤 돌아온 조상우
키움 마무리 투수 조상우도 후반기 개막 후 오랫동안 개점휴업이 불가피했다. 팀 복귀 후 곧바로 공을 던지기엔 도쿄올림픽에서 너무 많은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한 뼘 더 성장했다.
조상우는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고생한 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한국이 치른 7경기 중 6경기에 구원 등판해 도합 8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수는 146개. 대표팀 선발 요원들보다 더 많은 숫자다. 다른 불펜 투수들이 들쑥날쑥한 피칭을 이어가는 가운데서도 매 경기 흔들림 없는 역투로 믿음을 심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홍원기 감독은 후반기 시작 직후 "조상우에게는 무조건 사흘 휴식을 줄 생각이다. 이후에도 세이브 상황이 왔을 때만 내보낼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문제는 조상우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회복한 뒤에도 좀처럼 세이브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는 거다. 홍 감독은 후반기 개막 후 일주일 넘게 시간이 흐르자 "이제 세이브를 해야 할 상황에는 조상우가 나갈 거고, 연장전이 사라졌으니 9회 동점 상황에서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더 쉬었다가 실전 공백이 너무 길어지는 것도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그 후에도 조상우가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시점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결국 팀 복귀 후 17일이 지난 8월 27일 고척 한화 이글스전에서야 3-3으로 맞선 9회 초 동점 상황에서 후반기 첫 공을 던졌다. 그리고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복귀와 건재를 동시에 알렸다. 키움은 조상우의 역투 이후 이어진 9회 말 공격에서 결승점을 뽑아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조상우는 "오랜만에 경기를 해서 재미있었다. 그동안 경기장에 출근해 밥만 먹고 갔는데, 이번엔 밥값을 한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또 "올림픽을 다녀온 뒤 주위에서 '고생했다', '아쉽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난 고생했다기보다 내가 던져야 할 상황에서 잘 던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는 지금도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구위는 원래 KBO리그 정상급이었지만, 올림픽을 통해 마인드도 진짜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한 단계 도약한 박세웅과 김진욱
롯데 자이언츠 박세웅과 김진욱은 "올림픽에서 병역특혜 빼고 다 얻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있다. 그 정도로 올림픽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피칭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세웅은 도쿄올림픽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승부가 기운 뒤 등판하는 '추격조'를 맡았다. 그러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참가한 경험만으로도 자신감과 확신을 얻고 돌아왔다. 그가 후반기 출전한 3경기에서 모두 안정적인 투구로 승리 투수가 된 비결이다.
박세웅은 지난 8월 13일 LG전에서 8이닝 무실점, 23일 KT 위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 29일 두산전에서 7이닝 2실점을 각각 기록했다. 전반기 15경기 성적은 3승 6패 평균자책점 4.29로 평범에 가까웠는데, 후반기 3경기에선 평균자책점 0.86으로 단숨에 리그 톱클래스급 피칭을 보여줬다. 특히 전반기 고질적인 단점으로 꼽혔던 '널뛰기 피칭'이 후반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선발 투수의 최고 미덕인 '안정감'을 장착한 모습이다.
박세웅은 이와 관련해 "대표팀에서 선발 경험이 풍부한 차우찬 형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 우찬이 형이 '선발은 무조건 버티는 게 미덕'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많은 이닝을 던지는 걸 최우선으로 삼으라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귀띔했다.
신인 김진욱도 부쩍 성장했다. 올림픽 후 7경기에서 무실점 행진 중이다. 김진욱은 올 시즌 입단한 신인 투수 '톱3'로 꼽혔지만, 시즌 초반 제구 기복이 심해 1군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위력적인 구위를 갖고 있으면서도 장타를 맞을까봐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 볼넷으로 주자를 쌓아두기 일쑤였다.
그런 김진욱이 올림픽 이후로 고교 시절의 공격성을 되찾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7경기에서 5이닝을 책임지는 동안 안타를 4개밖에 맞지 않았고(피안타율 0.211), 삼진 7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2개밖에 주지 않았다. 전반기 17경기에서 2승 1홀드를 올렸는데, 후반기 7경기에선 벌써 1승 3홀드다. 롯데가 외국인 원투펀치의 부진 속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는 비결이다.
#차세대 에이스 이의리를 보호하라
KIA 이의리는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차세대 에이스로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프로 데뷔 첫해부터 신인 중 가장 먼저 국가대표팀에 발탁(김진욱은 대체선수로 추후 합류)되는 영광을 안았고, 김경문 감독이 직접 "앞으로 한국 야구의 왼손 에이스로 키워야 할 선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의리는 도쿄에서 두 차례 선발 등판해 모두 5이닝씩 소화했다. 이번 대표팀 한국 선발 중 5회 이상 버틴 투수는 이의리가 유일하다. 총 10이닝 동안 6개 참가국 투수 중 가장 많은 삼진 18개를 잡아내는 위력도 보여줬다. 당연히 올해 가장 유력한 KBO리그 신인왕 후보다. 입단하자마자 선발 한 자리를 꿰차면서 17경기에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팀에서 돌아온 뒤에도 페이스가 나쁘지 않다. 복귀 후 첫 경기인 8월 14일 SSG 랜더스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고, 20일 키움전에서도 5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했다. 아직 후반기 4경기에서 승리는 없지만, 평균자책점은 3.15로 전반기보다 나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렇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시기는 아니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도 이 점을 고려해 최근 "이의리의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윌리엄스 감독은 "워낙 미래가 밝은 어린 투수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잘 던지는 게 중요하다"며 "다행히 올림픽에서 (불펜으로 던지지 않고)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기에 복귀 후 추가로 관리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팀이 생각한 최다 이닝 제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이의리가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줄 마음은 있지만, 무리시키지는 않으려고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에 감염돼 자가격리 중인 2군 선수들이 9월 4일 이후 올라올 수 있는데, 그때 이의리가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건너뛰거나 휴식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이의리의 왼팔은 KIA가 정성 들여 관리하고 지켜야 할 재산이 된 것 같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