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대 브이글로벌 사건 운영진 4명 구속, 그나마 2400억 ‘몰수보전’…“고수익 보장 판매·투자는 사기”
사기 범죄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의 말이다. 한상준 변호사는 최근 사기 범죄 중에서도 암호화폐 관련 사건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한다. 한 변호사는 “지난해 말부터 암호화폐(가상화폐, 가상자산) 광풍이 다시 불면서 사기 사건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 말처럼 올해는 역대급 사기 사건이 여럿 등장했다. 가장 큰 사건은 역사상으로도 손에 꼽히는 2조 원 규모 사기 사건 브이글로벌이다. 브이글로벌 사건은 코인을 매개로 다단계 ‘프로’들이 붙어 판을 키운 사건이다.
브이글로벌 한 피해자는 “조희팔 사건은 규모는 컸지만 실제 피해 금액으로 따져보면 생각보다 액수가 크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희팔 사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폰지 사기 특성상 돈을 맡긴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수익이라며 돌려준 돈도 꽤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이글로벌 사건은 비교적 초반에 터지면서 수익을 받은 사람도 별로 없다”고 호소했다.
이 피해자의 말처럼 브이글로벌은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약 9개월 동안 회원 5만 2000명을 모집했고 입금 받은 돈 규모는 2조 2100억 원에 달한다. 원화 입금 외에도 암호화폐로 입금 받은 내역 등도 있어 피해액은 최대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브이글로벌에 입금액이 몰린 것은 이들이 내세운 상상하기 어려운 수익률에 있었다.
브이글로벌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하나인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브이캐시를 600만 원어치 사면 1년 안에 수익률 200%를 보장해 1800만 원을 지급한다고 보장했다. 초기 이 돈을 실제 지급 받은 사람들이 나오면서 입금액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익금을 받은 사람 가운데에는 그대로 다시 브이캐시로 입금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갑작스레 브이캐시 현금전환 지급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집단소송이 시작되면서 브이글로벌 운영진은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혐의 등으로 고소를 진행하기도 했다. 브이글로벌 측은 ‘경찰 수사로 인해 잠시 업무가 중단됐을 뿐 브이캐시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법무법인 측에서 근거 없는 소송을 걸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수사기관과 피해자 일부를 대리한 법무법인 탓을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경찰이 브이글로벌 대표 이 아무개 씨 등 운영진 4명을 구속 송치하면서, 브이글로벌 측의 변명이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
다행이라면 경찰이 브이글로벌에 대해 상대적으로 빠른 수사를 통해 역대 최대 금액을 몰수보전 받아 놓은 것이다. 몰수보전은 범죄 피의자가 확정 판결을 받기 전 불법으로 수익을 얻은 재산을 임의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지난 5월 운영진 구속이나 기소 전 브이글로벌 압수수색과 함께 회사 자금 약 2400억 원에 대한 몰수보전을 신청해 법원에서 인용 결정을 받았다. 한 변호사는 “이 돈이 고소 등을 한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여 그나마 피해보전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제는 되지 않았지만 암호화폐와 다단계 업자들이 결합한 사건은 브이글로벌뿐만 있는 건 아니었다. K 사도 브이글로벌과 흡사한 모델인 ‘200% 수익 지급’을 보장한 영업을 했고, 현재 피해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경찰이 K 사 수사에 착수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암호화폐 거래소로 꽤 알려진 비트소닉은 이용자들이 맡긴 돈을 출금해주지 않아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월 출금을 제때 받지 못한 피해자 39명은 비트소닉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횡령·배임, 사전자기록 위작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39명의 피해금액은 약 61억 원으로 알려졌다. 아직 고소까지 이르지 않은 피해자들은 추산이 되지 않고 있어 피해 규모는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출금이 되지 않아 논란이 된 코인제스트 거래소는 아직도 출금이 되지 않고 있다. 코인제스트는 거래량 국내 1위까지 달성했던 거래소로 피해자가 적지 않다. 코인제스트는 2019년 8월 ‘점검 완료 후 출금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했지만 며칠 안팎일 것이라 했던 점검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다. 약 1년 뒤인 지난해 8월 플랫폼 다운사이징을 공지하더니 거래소까지 사라져버렸다. 이 사건은 1년 전 단체 소송이 진행됐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면서 울분을 토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배당형 사기 사건도 크게 늘었다. 이더월렛은 이더리움이나 이더리움클래식을 보내면 원금을 보장해주고 최소 매월 10% 이상 배당 지급을 약속했다. 다단계 방식으로 추천인을 모아오면 일정 비율 배당을 늘려 주겠다고도 했다. 이더월렛과 비슷한 사건이 젠서 재단 사건이다.
젠서 재단도 모바일 가상자산 예치서비스인 ‘티어원’과 ‘젠서’ 등에 투자하면 매일 투자원금에 이자를 붙인 금액의 1.2~1.6%에 해당하는 코인을 100일 동안 보상하는 방법으로 총투자금의 120~160%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여기에 투자자를 추가 모집하면 모집된 투자금에 대해 일정 비율의 인센티브까지 지급하겠다는 것도 비슷했다.
올해 암호화폐 사기 사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암호화폐 불장을 맞아 피해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점이다. 지난해 사건으로 현재 재판 중인 이더월렛 사기 사건은 최초 500억에서 1000억 원 정도 사기 규모로 추산됐다. 그런데 사기행각을 벌였던 이더리움 값이 20만 원에서 300만 원을 넘어 현재 400만 원에 거래되고 있어 사기 규모도 약 20배 가까이 커지게 됐다.
올해 특히 암호화폐 사기 사건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암호화폐 관련 특별 수사기간인 점도 크게 작용했다.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암호화폐 관련 특별 수사기간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수사 진척이 늦었던 암호화폐 사건들이 이 시기를 맞아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한상준 변호사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암호화폐 시장이 혼란스러운 것 같다. 암호화폐 거래소, 재단, 투자자들 모두 향후 법 시행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법 시행 이후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해한다”면서 “법이 시행되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 어느 정도 암호화폐 관련 사업이 합법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측면이 많겠지만 반면 법 시행만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한 사기, 유사수신행위가 근본적으로 근절될지는 의문이다. 법이 있다고 사기 사건이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특금법 시행 여부를 불문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하여 고수익을 보장하는 내용의 암호화폐 판매, 투자는 사기일 가능성이 99.9%다.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를 하고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