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키즈 신인왕 출신 ‘닮은꼴’…장타력 늘린 ‘이’-정교함 높인 ‘강’ 치열한 타격왕 경쟁 관심
주목할 점은 초대 대회를 제외하면 7년간(2020년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소) '종범신 팀'과 '양신 팀'으로 나눠져 경기를 치러왔다는 것이다. 1993년 나란히 프로 무대를 밟은 이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KBO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구도였다. 이들은 리그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긴 라이벌이었다. 한 TV 광고에 나란히 출연해 "일본만 안 갔어도 형 기록 다 내건디", "이게 지금 돌았나, 레전드 앞에서"라는 대사로 팬들을 웃음 짓게 하기도 했다.
최근 KBO리그에는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이종범의 아들 키움 외야수 이정후와 KT 내야수 강백호다. 이들은 특히 2021시즌, 타율 부문에서 뜨거운 경쟁을 펼치며 리그를 달구고 있다.
#리그 뜨겁게 달군 영건들의 타격왕 경쟁
이정후와 강백호는 이번 시즌 유난히 치열한 타율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즌 중반부터 각축을 벌이기 시작한 이들의 기록은 10월 1일 현재 이정후가 0.363, 강백호가 0.354로 이정후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 타율 3위 홍창기(0.336)와는 격차가 다소 벌어져 둘의 경쟁이 더욱 돋보이는 상황이다.
먼저 앞서나간 쪽은 강백호다. 강백호는 개막 첫 두 달간 4할 타율을 기록했다. 5월 타율은 0.418을 기록하는가 하면 6월 타율은 0.377로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시즌 누적 타율은 4할을 넘겼다.
반면 이정후는 시즌 초반 약간의 슬럼프를 겪었다. 신인 시절부터 매해 3할 타율을 유지하며 '타격 천재'로 불리던 그였지만 이번 시즌 개막 첫 1개월 중 8경기에서 무안타 경기를 기록, 4월 타율을 2할대(0.269)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장 감을 찾은 이정후는 맹타를 휘둘렀다. 5월 타율 0.451을 기록, 강백호와 나란히 월간 타율 4할을 기록했다. 22세 이하 선수 2명이 동시에 월간 타율 4할을 넘긴 것은 KBO리그 40년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시즌 내내 강백호가 앞서가던 구도에서 역전이 일어난 것은 지난 9월이다. 8월 중순에서 9월 초까지 부상으로 빠졌던 이정후의 타격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복귀 이후 맹타를 휘두르던 이정후는 9월 한 달간 타율 0.433을 기록했다. 반면 강백호는 0.250로 이번 시즌 처음으로 3할을 밑돌았다. 결국 9월 21일, 이정후와 강백호의 타율 순위가 역전됐다. 현재 페이스가 지속된다면 연말 시상식에서 타격왕 트로피는 이정후의 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약점 보완에 MVP 등극까지?
이들의 경쟁은 타율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데뷔 시절부터 맹활약을 펼쳐온 이정후와 강백호의 타격왕 경쟁이 주목을 받으며 둘은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나쁘지 않은 팀 성적을 보이고 있다. 단 1개월이 남은 정규시즌 잔여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들은 MVP 등극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시즌 타율 부문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플레이 스타일 면에서 이들은 각기 다른 장점을 보유했다. 특히 다소 덜 다듬어진 신인시절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의 특색이 두드러진다.
2017년 신인 이정후는 552타수 179안타 2홈런 47타점 타율 0.324를 기록했다. 2018년 신인 강백호는 527타수 153안타 29홈런 84타점 타율 0.290이었다. 전형적인 교타자(이정후)와 슬러거(강백호)의 기록이었다. 장타율 면에서 강백호(0.524)가 이정후(0.417)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강백호가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함을 높이는 반면 이정후는 장타력을 늘리며 진화를 거듭했다. 강백호가 데뷔 첫해 삼진 124개를 지난해 93개로 줄이는 동안 이정후는 15홈런을 기록하며 파워를 더했다. 강백호에 비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장타를 늘리며 중장거리형 타자로 변신에 성공했다.
#닮은꼴 베이징 키즈
매시즌 야구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이들은 유사한 점도 많아 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이들은 1년 차이로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1998년생 이정후, 1999년생 강백호) '베이징 키즈'로 불린다. 이들이 10세가 될 무렵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를 지켜보며 야구를 시작한 것이다.
한국 야구에서 베이징 키즈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등장 이전까지 KBO리그는 오랜 기간 순수 신인왕이 실종된 상태였다. 퓨처스리그에서 경험을 쌓거나 상무 또는 경찰청 야구단까지 다녀온 이들이 신인왕을 가져갔다.
이 같은 흐름을 끊은 인물이 이정후와 강백호다. 이들은 KBO리그 등장과 동시에 큰 활약으로 2017, 2018 신인왕을 나란히 차지했다. 2007년 이후 최초 그 시즌 데뷔한 선수가 받는 순수 신인왕이었다.
이들의 데뷔 직후 맹활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다수의 팬들이 둘의 데뷔를 기대할 정도였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상위권에 지목됐다. 이정후는 2017년 1차 지명, 강백호는 2018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출신이다. 강백호는 전학 이력(부천중에서 이수중으로 전학)이 아니었다면 1차 지명에서 선발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음주, 약물 등 스포츠계 사건사고가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바른생활 사나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정후는 학생시절부터 '이종범 아들'로 자라며 주목을 받았기에 야구장 밖 모습도 많은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백호는 '술을 마시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체질'이라고 밝혔다. 둘은 팬서비스 역시 좋은 선수로 꼽힌다.
둘은 각자 포지션이 다르고 가진 장점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이종범-양준혁, 류현진-김광현 등에 이어 프로야구를 이끌 스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등극한 이들이 향후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 갈지, 팬들은 기대감에 찬 눈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