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단 개발 제안 A 대표, 명동 노른자땅 ‘하이해리엇’ 분양대금 먹튀범…성남시 시정능력 의구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개발 특혜 논란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업을 언급하며 “부동산 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질지 여부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며 “사후적으로 리스크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반박했다. 대장동 사업 개발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즉, 높은 위험을 감수했기에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남시의 대장동 개발 사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장동은 최소 2003년부터 소위 ‘투기꾼’들에겐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 대장동에서 차를 타고 단대오거리 방향으로 약 30분, 거리로는 약 10km 떨어진 곳은 1990년대 성남의 ‘제1산업공단’(제1공단)이 있던 땅이다. 지금은 공장들이 모두 철거된 빈 땅으로 남은 이 부지는 원래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대장동 땅과 함께 2009년 ‘결합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추진되던 사업지였다.
성남시에 제1공단 개발 사업을 제안한 회사는 주식회사 ‘새로운성남’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복수의 행정소송 판결문을 종합하면, 성남시는 2009년 5월 15일 주식회사 새로운성남의 제안에 따라 시행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2458 일대 13필지 면적 8만 4235㎡를 ‘성남신흥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도시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해 이를 고시했다. 이 부지에는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앞서 새로운성남은 2003년부터 제1공단 부지를 조금씩 매입해오고 있었다. 이는 대장동 일대가 업계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기회의 땅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대장동 개발 사업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었다는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주장은 다소 맞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대장동 인근 판교 신도시의 집값은 나날이 올랐다.
2005년에는 군인공제회를 공동시행사로 참여시키는 것 등을 조건으로 새로운성남은 공제회로부터 약 2400억 원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새로운성남이 이 돈으로 제1산업공단 부지를 매수해 대한토지신탁에 신탁한다는 것이 대출 약정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렇게 군인공제회가 2005년부터 제1공단 주택 사업에 투자한 돈은 무려 3791억 원이다.
문제는 새로운성남이 군인공제회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이 사건과 관련된 복수의 판결문에 따르면 새로운성남이 군인공제회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3407억 원. 그러나 새로운성남은 2년 동안 대금상환기한 연기에도 대출 원리금을 거의 상환하지 못 했다고 법원은 판시했다. 결국 새로운성남은 1000억 원의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제1공단 개발 사업권을 B 개발업체 양도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군인공제회가 회수하지 못한 금액은 2300억 원이 넘는다.
어쩌면 예견된 사태이기도 했다. 취재 결과, 새로운성남의 대표 A 씨는 명동의 유니클로 건물로 유명한 하이해리엇의 2500억 원대 부동산 사기범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해리엇은 2004년부터 18년째 전국 공시지가 1위인 네이처리퍼블릭과 마주 보는 소위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건물이다. 2003년 2월 하이해리엇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A 씨는 “분양가의 45%까지 무이자대출을 해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수분양자 720명으로부터 받은 상가 분양대금 2500억 원의 일부를 빼돌려 잠적했다.
제1공단 사건 이후 A 씨의 행적은 지금까지 묘연하다. 피해자들은 “A 씨가 앞선 결심 공판에서 15년을 구형받은 이후 선고 공판 당일 도주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남 제1공단 토지 매입금에도 하이해리엇 수분양자들의 분양금 일부가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A 씨 회사의 전 관계자는 '뉴데일리 경제' 인터뷰에서 “백화점 입점 등을 추진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며 “마음먹고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문제는 성남시 개발 사업에 발을 들이는 데 A 씨의 전적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A 씨가 성남시에 제1공단 개발 사업을 제안했던 시기는 2009년이다. 당시 그는 하이해리엇 사건으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상’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부동산 매매업과 임대업을 하던 A 씨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회사 이름을 바꿨다. 새로운성남을 포함해 바뀐 사명만 4개로 소위 말하는 업계의 ‘꾼’이었다. 새로운성남 역시 하이해리엇 허위 분양 과정에서 바꾼 이름이었다.
이처럼 성남의뜰과 새로운성남 등 대장동 개발 사업에 관련된 회사들의 수상한 전적이 드러나면서 성남시의 시정능력과 사업자 선정 신뢰도는 하락한 상태다.
한편 제1공단 부지는 현재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성남의뜰이 공원화를 진행 중이다. 성남시가 2010년 7월 제1공단 부지를 주택 개발이 아닌 공원으로 만들겠다며 돌연 개발 관련 인허가를 중단한 까닭이다. 제1공단 공원화는 이재명 지사의 성남시장 당선 때 공약이기도 했다. 성남시는 2014년 대장동과 제1공단을 묶어 ‘성남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2015년 2월 성남의뜰을 시행사로 선정했다.
갑자기 제1공단 개발 계획이 바뀌면서 피해를 입은 쪽은 군인공제회와 새로운성남으로부터 사업권을 이전 받은 B 개발업체다. 이에 B 개발업체가 성남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했지만 2016년 대법원은 “성남시 처분이 위법했다 하더라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해 처분의 취소를 구할 이익이 없다”며 성남시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2019년 2월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는 “성남시가 B 사의 사업자 지정신청을 거부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B 사에 325억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 선고는 오는 11월 18일 수원고법에서 열린다. 한편, 성남시는 제1공단의 공원화를 시의 공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