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추락 속 최대주주 MBK 매장 폐점·매각해 투자금 회수…노조 “인원 절감 불가피” 회사 “인위적 구조조정 없다”
홈플러스가 내년까지 전국 매장 7개를 닫기로 결정하면서 노사 간 갈등이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전국 매출 5위권인 안산점도 폐점한다. 이 밖에도 대구점, 부산 가야점, 동대전점이 폐점을 앞두고 있다. 노조 측은 홈플러스 최대 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매장 매각을 통해 투자금 회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이은 폐점 소식에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쪼그라든 영업이익…부진한 M&A 실적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의 아픈 손가락이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 2000억 원에 인수했지만 약 6년이 흐른 현재 상품으로서 홈플러스의 가치는 떨어진 상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가장 최근 회계연도(2020년 3월~2021년 2월) 매출액은 전년 대비 4.6% 줄어든 6조 9662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41.7% 줄어든 933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당기순이익은 전년 적자 대비 833억 원 흑자 전환했다.
이전 실적과 비교하면 홈플러스의 추락은 명실상부하게 드러난다. 최근 5년 동안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2016년 7조 9334억 원, 2017년 7조 9456억 원, 2018년 7조 6598억 원, 2019년 7조 3002억 원으로 2016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016년 3209억 원을 달성한 이후 2017년에는 25.1% 감소해 2787억 원, 2018년에는 2600억 원, 2019년에는 직전 해보다 38.4% 감소한 1602억 원을 기록했다.
피인수기업의 실적이 쪼그라든 가운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홈플러스를 수렁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온라인 플랫폼 발굴에 힘쓰는 듯했으나 올해 M&A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 했다. MBK파트너스는 대형 사모펀드들이 각축을 벌였던 이베이코리아와 잡코리아, 요기요 등 ‘대어’ 인수전에서 참여했지만 막판에 인수 의사를 철회하거나 경쟁사의 통 큰 베팅에 인수를 포기해야 했다.
한편 최근에는 국내 1세대 이커머스 다나와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IMM 프라이빗에쿼티(PE),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등 복수의 사모펀드들이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이번 인수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올해는 별다른 M&A 성과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MBK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당기말 매각 예정 자산은 1174억 7445만 원으로 직전 회계연도(7억 원)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홈플러스 가야점 매각이 결정되면서 토지와 건물이 처분자산집단으로 분류된 까닭이다. 사측은 부채 감소와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측은 기자회견에서 “MBK파트너스가 진행 중인 폐점매각은 홈플러스야 어찌 되든 말든, 노동자들이야 죽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려는 가장 악질적인 기업약탈”이라며 “국내 2위 유통기업을 지속 성장시킬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전국 매출 톱레벨의 매장을 허물어 수십 층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벌고 튀겠다는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라고 비판했다. 노조 주장에 따르면 2015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의 홈플러스 부동산과 매장의 매각 대금이 4조 원에 달한다.
#까르푸부터 홈플러스까지…매각의 역사
홈플러스의 노사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장기 근속 노동자들에겐 이미 큰 트라우마가 있다. 회사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어 매번 고용불안에 시달린 탓이다. 본격적인 마찰은 1996년 국내 처음 입점한 홈플러스의 전신 까르푸부터 시작한다. 까르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인건비 절감을 위해 노동자 80% 이상을 파견직이나 비정규직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까르푸의 일방적인 비정규직 전환과 파견 배치는 노사 갈등의 씨앗이 됐다.
2006년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한 뒤부터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이어 2007년 이랜드가 까르푸의 이름을 홈에버로 바꾸고 기존 계약 직원들을 해고하거나 외주용역으로 돌리려 하자 대규모 노사 분쟁이 일어났다. 파업은 무려 512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2007년 6월 30일 이랜드홈에버 월드컵점에선 20일 동안 점거농성이 이어지기도 했다. 앞서의 A 씨가 상암 월드컵경기장 앞에서 목격한 장면이 바로 이 농성이다. 당시 버스 안에서 농성 장면을 지켜봤던 대학생 A 씨는 15년 뒤 잇단 폐점에 고용안정을 걱정하는 홈플러스 노동자가 됐다.
A 씨는 “15년 전엔 몰랐다. 단순히 버스 노선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만 했다. ‘다들 왜 저렇게 필사적일까’ ‘그냥 다른 곳에 다시 취업하면 되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직장은 나의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만큼 많은 것을 공유하는 동료들이 있는 곳”이라며 “현재 근무하는 지점에는 아직 매각 소식이 없지만, 전국 각지에서 폐점 소식이 들릴 때마다 ‘다음은 어디일까’ 불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회사에선 폐점되면 전환배치를 해준다고 하지만 이렇게 매각과 폐점이 반복되면 인원 절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80여 개 매장에서 파업을 진행하고 △최저임금 보장과 근속년수에 따른 보상안 마련 △통합운영과 강제 전환배치 개선 △차별적인 인사평가제 개선 △주6일 근무하는 익스프레스 직원의 주5일제 (단계적) 전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홈플러스 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측에 따르면 현재 폐점된 매장의 직원들은 다른 점포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전환 배치했다. 또, 폐점 직원 전원에게는 300만 원의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