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추위로 무너진 밸런스 최종전에야 잡혀…4점대 자책점과 가을야구 불발 아쉬움 남는 시즌”
류현진한테 2021시즌은 희비쌍곡선의 정점을 찍은 시간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캐나다의 외국인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소속팀은 미국 플로리다 더니든, 뉴욕 버펄로를 전전하다 7월 말이 돼서야 토론토 홈구장인 로저스센터에 입성했다. 시즌 중반에는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투구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흔들렸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 적도 있지만 류현진 스스로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많은 걸 경험했던 시간들이었다.
올 시즌 류현진은 31경기 등판해 14승 10패 평균자책점 4.37을 기록했다.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이자 아메리칸리그 다승 2위인 14승을 올렸음에도 4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시즌을 마무리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인 10월 8일(한국시각), LA 집에서 류현진을 만났다.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보며 어느 팀을 응원했나. 한 팀은 이전 소속팀(LA 다저스)이고, 다른 한 팀은 친한 후배가 있는 팀(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인데.
“우리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팀이 이기든 상관없었다. 단 (김)광현이가 나와서 던지길 바랐는데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와일드카드 결정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끝까지 선수들하고 함께한 부분들이 보람되지 않을까 싶다.”
―거의 해마다 ‘가을야구’를 경험한 선수로서 이렇게 일찍 시즌을 매듭지은 부분이 어색하진 않나.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었다. 나 역시 좋은 일도 있었고, 안 좋은 시기도 있었다. 평균자책점도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안 좋게 나왔다. 선발 투수가 한 시즌을 치르며 30경기 이상 등판하는 걸 목표로 하는데 이닝 수는 조금 부족했지만 31경기 등판했다는 점은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4일 토론토 홈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정규시즌 최종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무조건 승리를 거둬야지만 와일드카드 진출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최종전 등판을 준비했나.
“그날은 이닝과 투구 수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타자와 상대에 집중했다. 경기 시작하기 전 투수코치랑 미팅할 때도 오늘은 중요한 경기이고 무조건 팀이 이긴 상태에서 경쟁 팀들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터라 공 한 개, 한 타자 상대에 집중하면서 경기에 임했던 것 같다.”
―팀의 운명이 걸린 경기에 등판한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
“경험상 그런 큰 게임이나 한 경기에 많은 게 걸려 있는 상황에선 경기 초반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투수들은 1이닝부터 3이닝까지를 매우 신중히 접근한다. 그 시기를 넘기면 경기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부담은 갖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부담을 느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타자에 대해 공부하고 분석한 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즌 최종전인 볼티모어전에서 보인 투구를 좀 더 일찍 해보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걸로 보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회와 3회 초반이 중요한데 초반에 대량 실점한 경기들이 많아 몹시 아쉬웠다. 만약 좋지 않았을 때 경기 전체를 보고 가기보단 한 이닝, 한 타자 상대하는 데 더 집중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선발 투수는 긴 이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걸 신경 쓰지 못했다. 내년부터는 이런 부분에 변화를 줘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
―시즌 최종전을 마치고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한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아쉬움이 컸다. 올 시즌 홈구장을 더니든, 버펄로, 토론토, 이렇게 세 군데로 옮겨 다니며 힘든 일이 많았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이 91승이란 좋은 성적을 거뒀고, 그런 성적임에도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는 게 몹시 아쉬웠다. 올해 야수들이나 투수들 중에서 나이 어린 선수들이 큰 역할을 해준 부분도 칭찬해주고 싶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한 해였기 때문에 다들 그런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것 같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는 류현진이란 공식이 성립했다. 그러나 올 시즌 토론토 에이스로 로비 레이를 꼽는 팬들이 많다. 이런 점이 신경 쓰이진 않았나.
“나는 정말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투수라면 ‘에이스’라고 불릴 때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런 타이틀에 신경 쓰다 보면 경기하는 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로비 레이의 슬라이더를 보고 슬라이더 던지는 연습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로비 레이도 스프링캠프 때 캐치볼 파트너가 되면서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배웠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올 시즌 스프링캠프 때 캐치볼 파트너가 로비 레이였다. 로비 레이가 클레이튼 커쇼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다. 슬라이더랑 직구, 커브가 좋은 선수들 입장에선 체인지업이 완전 반대 손의 구종이 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려워한다. 로비 레이가 시즌 중에도 체인지업을 많이 던졌는데 좋은 공들을 많이 봤다. 조금 더 (체인지업 비중을) 늘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로비 레이의 슬라이더를 보고 슬라이더를 경기 중 던졌다는 내용은 어떻게 이해하면 되나.
“로비 레이는 직구와 슬라이더를 가장 많이 던지는 선수다. 슬라이더를 통해 많은 삼진을 잡고 헛스윙을 유도해내는 걸 보고 ‘아, 나도 저걸 던져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시즌 초반에 보이지 않았던 슬라이더를 후반에 던지면 상대 타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예상해서 경기 때 던진 거다.”
―다저스에서는 커쇼가, 블루제이스에선 레이 같은 베테랑 투수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자신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나.
“많은 도움이 되는 선수들이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 나한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정말 많고 인정해줘야 하는 투수들이다. 그런 부분이 나한테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 같다.”
―토론토에서 만난 여러 투수들 중 알렉 마노아는 친형제처럼 살갑게 지내는 것 같더라.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진 건가.
“알렉 마노아가 빅리그 콜업된 후 뉴욕 양키스 원정에서 잘 던지고 홈(뉴욕 버펄로)으로 돌아왔는데 휴식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갑자기 마노아 생각이 났다. 내 방으로 음식을 시킨 후 마노아를 불렀는데 그때부터 친분이 시작됐다.”
―두 사람 성격이 비슷해 보인다.
“나보다 더 좋은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인데 마노아는 처음 본 사람하고도 금세 친해진다.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 본 터라 거의 한국 사람 입맛이 됐다.”
―알렉 마노아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선정하는 ‘9월의 루키’로 뽑혔다.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신인으로 선정된 건데 같은 투수로서 그의 장점을 꼽는다면?
“어려운 상황일 때 마운드에 올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해낸다. 마노아는 제구가 좋다. 모든 변화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던질 수 있다. 특히 슬라이더는 예술이다. 로비 레이처럼 빠른 슬라이더를 던지는 건 아니지만 헛스윙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나도 마노아의 슬라이더를 던지고 싶을 정도다.”
―시즌 중반 이후 체인지업이 흔들리고 투구폼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된 배경을 알고 싶다.
“5월 (28일)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 등판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공을 던졌다. 그런 추위에 공을 던진 건 야구하면서 처음이었다. 매서운 비바람 탓에 손에 감각이 없는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그 경기 이후부터 내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던 것 같다. 안 쓰던 힘과 근육을 사용하면서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 경기 이후로 밸런스를 잡는 게 어려웠다. 중심 이동이 너무 빨라진 바람에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던질 때 어깨의 오른쪽 축이 받쳐줘야 하는데 중심 이동이 빨라지면서 모든 게 흔들린 것이다. 정말 신기했던 게 밸런스를 잡고 원래의 투구폼으로 던지는 데 굉장히 불편함을 느꼈다. 그 정도로 몸의 밸런스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탓에 체인지업은 물론 직구, 커터 등 여러 구종의 제구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시즌 최종전인 볼티모어전에서 밸런스가 잡힌 걸 느낀 것이다.”
올 시즌 우여곡절을 겪은 야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전한 류현진에게 2021시즌 자신의 야구를 한마디로 정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살짝 미소를 지은 그는 “몸은 건강했지만 성적은 그에 비해 아쉬웠다”는 말로 간단히 정리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미국 LA=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