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기준 등 따져 발급하고 공익적 활동도 안돼…직업 예술인 인정 못 받아 국가 지원 사업 배제
이런 A 씨는 예술인일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는 A 씨에 대해 ‘직업 예술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한 번,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인복지법’에 따르면 ‘예술인’이란 예술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 기술 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현재, 국가가 지원하는 예술인 복지 정책이나 각종 사업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예술활동증명을 발급 받아 정부가 인정하는 예술인이 돼야 한다.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예술인 의료비 지원’ 등의 사업 지원 대상이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업 참여 기회가 필요한 신진 작가나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예술활동증명은 반드시 발급 받아야 하는 필수조건인 셈이다.
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예술복지재단에 예술활동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원 기준은 각 분야 별로 다른데, 예술활동과 이에 따른 수입이 주요 심사 조건이다. 미술작가는 1회 이상 개인전을 개최하거나 5회 이상 단체전 및 전시회에 참여하면 신청할 수 있다. 또 이로 인해 얻은 수입이 1년간 120만 원, 최근 3년간 36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
A 씨도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예술활동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 처음엔 누드모델 경력과 퍼포먼서로서 한 공연, 그리고 한 웹진에서 연재한 글 등을 자료로 제출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A 씨의 신청을 반려했다. 누드모델 활동은 예술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공연 포스터에 A 씨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 반려 이유로 제시됐다. 이에 작품을 올린 공연장에서 직접 증빙 자료도 받아왔지만, 재단은 A 씨를 무용수로 올리기엔 경험이 적다고 했다.
A 씨는 반려 사유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근거 자료를 다시 정리해 올 4월 미술작가로 다시 한 번 신청했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공연과 전시, 기획 활동을 해왔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중엔 최대 200만 원에 팔린 것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월 심의위원회는 또 다시 퇴짜를 놓았다. A 씨의 개인전 규모가 작고 전문 갤러리에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수백만 원에 그림을 팔았다고 해도 전문 갤러리가 아니면 수입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A 씨가 받은 반려 사유에는 “전문전시공간에서 더욱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활동의 전문성 여부와 규모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자세한 이유를 알고 싶어 유선으로 문의를 하자 “지금껏 진행해온 예술활동이 공익적이라 예술을 업으로 삼는 직업예술인인지 아닌지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A 씨의 예술활동증명 신청은 세 번이나 반려됐다. A 씨는 정말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했을까. 일요신문은 지난 9월 말 그의 작업실 겸 집을 직접 찾았다. 방 한 칸을 가득 채운 A 씨의 작품들은 실제로 공익적이거나 시민참여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에게 예술은 소통과 연대였다.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 했던 곳에서 그림을 만나고 궁극적으로 예술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올해 개인전도 갤러리가 아닌 한 작은 카페에서 열었다.
2019년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집단 예술 행동을 기획했다. 그동안 대상화되어 오던 여성의 몸을 사회적 틀에서 해방시키고, 여성의 신체를 ‘몸’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험의 장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 이 프로젝트엔 수십 명의 평범한 여성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1박 2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몸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A 씨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성들은 “서로의 몸을 공유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했던 나의 몸과 더 나아가 내 삶까지 긍정하게 됐다”는 평을 남겼다. 일종의 참여예술이자 행동예술이었다.
이후로는 신체 노동자의 몸에 남은 흔적을 조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철거를 앞둔 노량진 구 시장 상인들을 주제로 13명의 시각예술 작가들이 참가한 단체전에 작품을 올렸다. 생선을 토막 내는 무거운 칼을 수도 없이 내려친 탓에 휘어지고, 염분으로 쪼그라든 수산물 시장 노동자들의 손가락은 고스란히 A 씨의 카메라에 담겼다. 전시에 초대된 ‘시장 이모’들은 전시장에 걸린 흑백사진을 보고 눈물을 터뜨렸다.
“친구들은 차라리 노래를 하나 내자고 해요. 대형 음원 플랫폼에 음반이 등록되어 있으면 바로 예술인 등록이 가능하다면서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예술인 신청이 반려되니까 나오는 농담이지만 이런 구조엔 분명 문제가 있어요. 누군가 하루 만에 만든 노래 1곡과 음악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1곡은 질적으로 다른데, 똑같이 음원 플랫폼에서 유통된다는 이유로 동일하게 고려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일각에서는 전시회 장소와 규모, 수익금 등을 따져 예술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당초 복지 정책 취지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폐쇄적인 예술계 특성상 기성 작가 그룹에 소속돼 이름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에 작품을 올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예술활동증명 심사 기준의 모순을 지적했다. 한 독립 큐레이터의 말이다.
“미술 분야의 활동은 특히 인정받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연극을 하는 분들은 배우와 스태프 모두 소속 극단이 있다. 기본적으로 극단에 소속되어 있어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이 경우 예술활동증명이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 미술작가는 기성 그룹에 들어가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룹이 없어도 작품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도 많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작가들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정부가 예술활동의 규모와 수익을 따져 묻기 시작하면 오히려 입지가 단단한 기성 작가들만 수혜를 보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예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하게 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 수입이 아닌 근로시간을 따진다. 수입이 불규칙적인 예술인들을 위한 실업 급여 제도 ‘앵테르미탕’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인력이냐 실연 인력이냐에 따라 근로 시간 차이가 있지만 10개월 동안 최소 507시간만 일하면 된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3년 동안 예술활동증명 발급률은 각각 41.5%, 45%, 43%로 모두 50%를 넘지 못했다. 지역별 발급 편차도 컸다. 전체 발급의 60% 이상이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집중된 반면, 전시전문갤러리 수가 적고 작품을 내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강원·충북·충남·전남·경북·제주 11개 시·도의 발급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정주 의원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복지사업에 지원하고자 하는 예술인의 예술활동증명 신청이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 발급률이 50%를 넘지 못한다”며 “지원사업이 절실한 예술인들이 여러 번 신청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류의 간소화와 안내 서비스 활성화 등의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한편, A 씨는 또 다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저는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제 그림을 팔아서 버는 돈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어요. 돈보다는 예술가로서 제도권 안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기회를 받아보고 싶었어요. 덜 자극적이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면,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가 씁쓸히 웃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