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호 빙상연맹’ 올림픽 앞두고 시험대…빙상계 고질적 병폐 뿌리뽑을지 주목
10월 13일 빙상계 유력 관계자는 “빙상연맹이 심석희 진상조사위원회를 빠른 시일 내에 꾸릴 예정”이라면서 “진상조사위원장은 양부남 빙상연맹 부회장이 맡는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어딘가 낯이 익은 빙상연맹 부회장은 ‘강골 검사’로 통했던 양부남 전 부산 고검장이다.
빙상연맹 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다 ‘BBQ호 빙상연맹 부회장단’에 합류한 김홍식 부회장도 10월 15일 통화에서 “양부남 부회장에게 심석희 논란 관련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현재 반승낙한 상태”라고 했다.
특수통으로 알려진 양 부회장이 체육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심석희 파문 조사를 맡을 것으로 알려지자 체육계 인사들은 ‘빙상계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원칙적 조사가 이뤄질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빙상 지도자는 “지금까지 빙상연맹이 자체적으로 시행했던 내부 논란과 관련 조사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조사를 한다면, 심석희 논란 사실관계뿐 아니라 무엇이 심석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빙상계 전반에 걸친 내부 병폐를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 15일 기준 심석희 논란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동료 비난 논란, ‘브래드버리 만들자’라는 말로 설명되는 승부조작 의혹, 그리고 라커룸 내 불법도청 의혹이다. 이번 파문은 심석희에 대한 폭행 및 성폭행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조재범 전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재판 자료 및 자필 진정서를 통해 불거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심석희와 조 전 코치가 법적으론 피해자와 피의자 관계인 까닭에 진상조사는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빙상연맹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게 된다면 체육단체가 직접 하기엔 상당히 높은 난이도”라고 했다. 그는 “자체 조사 과정에 조금이라도 문제될 소지가 있다면, 논란의 논란을 낳을 수 있는 구조”라고 이번 논란의 본질을 설명했다.
빙상연맹이 법조계 거물급 인사를 진상조사위원장으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은 전남 담양 출신으로 전남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합격 이후엔 연수원을 거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뒤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형사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엔 ‘원전비리 수사단장’을 역임하며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및 납품업체 임직원 98명을 기소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강원랜드 채용비리 특별수사단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수사에 앞서 양 부회장은 “사즉생의 각오로 사안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양 부회장은 자신의 각오 그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춘천지검 검사, 검사장급 인사, 검사 출신 국회의원뿐 아니라 대검찰청 반부패수사부까지 압수수색하며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권력 심장부를 오려내듯 수사한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다. 검사 출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 부회장에 대해 “법조인 중 유일하게 전차중대장으로 병역을 필하고 자신의 능력만으로 현 위치까지 올라온 강골 검사”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임한 뒤 양 부회장은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2020년 7월 부산 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양 부회장은 2021년 2월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초빙됐다. 빙상연맹 부회장 부임엔 회장사 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은 전남 순천 출신, 양 부회장은 전남 담양 출신으로 ‘호남’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양 부회장을 비롯한 신임 집행부를 선임한 뒤 윤 회장은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연맹 운영과 더 나아가 빙상의 세대교체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라며 “관리단체 해제 이후 연맹의 정상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하자”고 외쳤다.
BBQ는 2020년 11월 빙상연맹 구원투수로 등판한 기업이다. 빙상연맹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불거진 각종 논란으로 인해 2018년 9월 20일 관리단체로 지정된 바 있다. BBQ는 빙상연맹 정상화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연맹 회장사 지위를 얻었다. 윤홍근 BBQ 회장은 2020년 11월 빙상연맹 회장으로 선임됐다.
BBQ가 빙상연맹 회장사로 들어올 당시 기업계에선 의문의 시선이 존재했다. 빙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되기 전 회장사가 삼성이었던 까닭이다. 삼성은 빙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되기 전 각종 논란에 두손을 들고 빙판을 떠났다. 업계에선 ‘삼성도 손들고 나갔는데 BBQ가 연맹을 정상화시킬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BBQ의 빙상연맹 정상화 첫 시험대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심석희의 개인적인 모바일 메신저 내용이 공개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효자 종목인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내부 병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수술 칼을 들이밀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빙상연맹은 ‘히든카드’로 특수통 검사 출신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익명을 요구한 빙상계 관계자는 “심석희를 비롯해 이번 논란에 거론된 모든 선수들은 선배들이 오랫동안 방치했던 잘못된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한 선수들”이라면서 “논란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빙상계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심석희와 양부남이라는 인물이 동시에 거론되는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면서 “빙상연맹 조사위원회가 그동안 체육계의 허술한 조사와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