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첫 주연작 성공적 마무리…남궁민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 눈길
“첫 주연작이어서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 부담도 많이 가졌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함께 극복할 수 있게 됐죠. 제가 맡은 유제이를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건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평범하고 무난하게 묻힐 수 있도록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예뻐 보이지도 않고 평범하게요. 그리고 이 친구가 선역인지 악역인지 구분이 안 가도록, 의문스러워 보이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많이 뒀어요.”
10월 23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검은태양’에서 김지은은 국가정보원 범죄정보통합센터 산하 현장지원팀 요원 유제이 역을 맡았다. ‘인간 병기’ 수준의 신체와 걸맞은 액션 신을 보여 이슈의 중심에 섰던 배우 남궁민(한지혁 역)의 파트너로, 그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감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첫 주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것도 대중들의 호평에 한몫했다.
“처음엔 밝고 적극적인 캐릭터였지만 뒤로 가면서 아빠의 서사가 드러나며 어두운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있어요. 이 감정선을 설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나요. 제이는 아빠 때문에 매사에 적극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을 놓지 않으려 했죠. 그래서 나중에 볼 때 제이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였어요.”
유제이의 감정이 변화하는 시작점에 선 그의 아빠이자 메인 빌런 백모사 역의 유오성도 김지은의 연기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뚜렷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감정선의 변화를 따라가며 작품 속 부녀로서 완벽한 결말에 이를 수 있었다는 칭찬이었다. 그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은 김지은은 입을 틀어막으며 감동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배님이 왜 그렇게 칭찬을 해주셨지(웃음),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유오성 선배님을 현장에서 처음 뵀을 때 정말 존재만으로 그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웃음). 그런데 ‘온 앤 오프’가 정말 확실히 되시는 분이더라고요. 현장에서 사근사근하고 따뜻하게 저희를 잘 챙겨주시고 밝은 미소로 맞이해 주셨거든요. 저희를 잘 챙겨주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잘 따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유대감이 생겼고요. 저도 선배님처럼 온 앤 오프가 확실하고 뚜렷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파트너로서 함께한 남궁민과의 호흡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붙어 있는 동안 김지은은 그로부터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특히 이제까지 자신이 가져온 연기관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조언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았다.
“남궁민 선배님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어려워했던 연기나 상황들, 말투가 있으면 선배님이 많이 지켜봐 주시고 또 고쳐 주셨죠. 저는 연기 연습을 위해서 막연하게 녹음기에 상대 배우 대사를 녹음한 뒤에 따로 연습을 하곤 했거든요. 그걸 보시고 ‘상대 배우 대사를 녹음한 다음에 대본에 적힌 게 아닌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 봐’라는 조언을 주셨어요. 하고 싶은 말과 대본 대사를 맞춰서 하다 보면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올 거라고요. 그 말씀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대사가 아닌 감정을 외우라는 말씀에 제가 지금까지 잘못된 방법으로 연기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어요(웃음).”
김지은에게 있어 ‘검은태양’ 현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꿈만 같은 곳이었다. 주로 조연 역할로 그쳤던 그의 첫 지상파 주연 데뷔작이라는 것도 그랬지만, 그 기회를 잡기까지의 과정이 특히 극적이었다고 했다. 그런 만큼 ‘검은태양’이 주는 의미도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가 원래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1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작품을 쉬게 됐어요. 그래서 본가에 내려가야겠다,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서울에 다시 올라올 기반을 만들자, 연기를 계속 할 에너지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짐을 싸고 있었는데 오디션 일정이 잡혔단 소리를 들은 거예요. 그게 어쩌면 내게 큰 기회이자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짐 정리하던 걸 스톱하고 오디션에 집중했죠(웃음). 그러다 1월에 캐스팅이 되면서 ‘올해는 처음부터 정말 선물 같은 해를 맞이했구나, 굉장히 감사한 한 해가 됐구나’ 하면서 너무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나요.”
김지은의 본격적인 TV 데뷔는 2016년 박카스 CF를 통해서였다. 그전에도 독립영화에 짬짬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슈를 끌진 못했다. 이후 2017년 웹드라마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을 통해 드라마로 무대를 옮겨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조연이나 특별 출연에 그쳐야 했다. 배우 누구 씨가 아닌 ‘현장에 있는 1인’ 정도로 취급당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것에 좌절하지 않고 걸어 나갔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김지은은 힘주어 말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땐 현장에서 별명 같은 걸로 불렸어요. ‘거기 양 갈래 머리, 좀 옆으로 가 봐요’ ‘빨간 가방! 이쪽으로 오세요’ 하면서요. 배우 김지은이라고 아시는 분들은 없었죠. 그래서 ‘언젠간 배우 김지은 씨로 불리는 날이 오게끔 해야지’라는 목표가 생겼었어요. 지금의 목표는 대중들이 배우로서 저를 계속 보고 싶어 하게끔, 그런 저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거예요. 아직은 미숙하고 어설프고 뭔가 부족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에너지가 있어 보이네, 앞으로의 활약이 궁금하네 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