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두산 ‘상대전적’으로 정규리그 우승 후 재도입…올 시즌 KT-삼성 역대급 1위 전쟁 속 성사 가능성 관심
한국 프로야구에선 아직 생소한 이 표현이 최근엔 KBO리그에서도 화제가 됐다.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치열한 정규시즌 우승 경쟁 때문이다. 두 팀은 144경기 중 142경기를 소화한 10월 28일까지 나란히 75승 9무 58패로 공동 1위를 이뤘다. 승리, 패전, 무승부가 모두 같아 승률도 0.564로 정확히 일치한다.
삼성이 시즌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면서 후반기 내내 1위였던 KT를 잠시 추월했지만, 28일 KT가 NC와 더블헤더를 1승 1무로 마치면서 다시 공동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두 팀이 각기 남은 두 경기에서 같은 성적을 거두면 같은 승률로 시즌을 마칠 수밖에 없는 운명. 타이 브레이커 성사 여부를 놓고 관심이 커진 게 당연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추가 경기 없이 동률 1위 구단 간 맞대결 다승, 다득점, 전년도 성적 순으로 우승팀을 가렸다. 그렇다면 올 시즌 KT전에서 9승 1무 6패로 우위를 점한 삼성이 막판엔 더 유리한 상황에 놓였을 터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반드시 1위 결정전을 치러 우승팀을 가리는 규정이 지난해 도입됐기 때문이다.
#초창기 1위 결정전은 3전 2선승제
초창기 프로야구에도 리그 우승팀을 가리기 위한 순위 결정전이 존재했다. 원년인 1982년부터 1988년까지 7년간 한 시즌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뉘어 우승팀을 따로 정했기 때문이다. 1985년까지는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치러 최종 우승팀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전기와 후기 중 승률이 정확히 일치하는 공동 1위 팀이 나오면 추가 경기를 편성한 뒤 해당 게임에서 승리하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게 당시 규정이었다.
이로 인해 1986년 후기리그에서 딱 한 번 타이 브레이크 시리즈가 열렸다. 후기리그에서 팀 당 54경기가 끝난 시점에 해태 타이거즈와 OB 베어스(두산의 전신)의 최종 성적이 33승 2무 19패(승률 0.635)로 정확히 같았다. 결국 3전 2선승제로 승자 결정전을 치렀고, 여기서 OB가 승리해 후기리그 1위로 확정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전기와 후기를 통합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가 사라지고 싱겁게 우승팀이 결정되는 일이 벌어지자 KBO 이사회는 198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포스트시즌 제도에 변화를 줬다. △전기 1·2위와 후기 1·2위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획득 △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직행 △한 팀이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4개 팀일 경우 전기 1위와 후기 2위, 전기 2위와 후기 1위가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 개최 등이 골자였다.
하필 바로 그 시즌에 각 팀 순위가 꼬였다. 전기리그는 1위 삼성, 2위 해태 순으로 끝났고, 후기리그는 OB와 해태가 공동 1위에 오르면서 문제가 복잡해진 거다. 후기리그 1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팀은 2승을 먼저 따낸 OB였지만, 패자가 된 해태는 '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는 새 규정에 따라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이로 인해 전기리그 1위 팀과 후기리그 1위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고 두 번 모두 2위를 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선착해 1위 팀 대결 승자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결국 우승은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해태가 차지했고, 삼성과 OB는 씁쓸히 입맛을 다셔야 했다.
#두산의 역전 우승 뒤 부활한 타이 브레이커
프로야구가 1989년부터 단일 리그로 통합되고 현재와 같은 계단식 포스트시즌 제도를 도입하면서 타이 브레이크 게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승률이 같은 팀이 나올 경우엔 따로 순위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앞서 언급한 맞대결 경기 다승, 다득점, 전년도 순위에 따라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열린 KBO 실행위원회는 단일리그 전환 후 최초로 1위 결정전을 되살리는 데 합의했다. 144경기를 치른 뒤에도 승률이 같다면, 정규시즌 종료일과 와일드카드 결정전 사이의 휴식일에 단판 승부로 순위 결정전을 열어 우승팀을 가리겠다는 의미다. 어차피 1위 결정전에서 맞붙을 팀들은 최소 플레이오프부터 가을 야구를 시작하기 때문에 와일드카드 일정을 하루 미룰 필요도 없다. 다만 두 팀 중 홈 팀을 정할 때만 이전과 같은 순서의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단두대 매치'가 KBO리그에 등장한 것이다.
이 조항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건, 2019시즌 우승팀이 결정되는 과정 때문이다. 시즌 종료 한 달을 앞두고 KBO리그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큼 치열한 1위 경쟁 구도가 펼쳐졌고, 시즌 최종전에서 정규시즌 1위와 2위 팀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는 8월 초까지 2위권과 최소 7~8경기 차를 유지하며 선두를 달렸다. '우승 보증수표'라는 시즌 80승 고지도 가장 먼저 밟았다. 80승에 선착한 뒤 정규시즌 1위 등극에 실패한 팀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변이 없는 한 정규시즌 우승이 순조로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SK가 8월 중순 이후 슬럼프에 빠지고 두산이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8월 25일부터 9월 25일까지 한 달 동안 두산은 13승 1무 8패를 기록한 반면 SK는 6승 14패로 부진해 이 기간 9위에 그쳤다. SK와 두산의 게임차는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9월 19일 인천에서 열린 더블헤더 맞대결에서 두산이 SK를 상대로 2승을 모두 따내면서 두 팀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운명은 10월 1일에 갈라졌다. SK는 하루 전 88승 1무 55패(승률 0.615)로 모든 경기를 마친 뒤였고, 두산은 87승 1무 55패 상황에서 NC 다이노스와 마지막 경기를 치러야 했다. 두 팀의 상대전적은 9승 7패로 두산의 우위. 두산이 지면 SK의 우승으로 끝나지만, 이기면 승률이 같아지면서 SK전 9승을 따낸 두산이 극적으로 우승하게 되는 시나리오였다. 1위를 노리는 두산의 총력전은 당연했지만, 본의 아니게 '우승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NC 역시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실제로 엎치락뒤치락 혈전이 펼쳐졌다. NC가 4회까지 2-0으로 앞서자 두산은 5회 말과 7회 말 연이어 점수를 뽑아 2-2 동점을 만들었다. 8회 초엔 다시 승부가 NC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1사 1·3루에서 두산 투수 유희관의 폭투가 나왔고, NC 대타 권희동의 중전 적시타가 이어져 4-2가 됐다. 두산 출신 양의지가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적시타로 5-2까지 리드를 벌렸다.
그러나 두산의 기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8회 말 허경민과 대타 김인태의 활약으로 극적인 5-5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어 9회 말엔 1사 2루에서 박세혁의 극적인 끝내기 안타가 터졌다. 시즌 최종전 끝내기 승리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마무리였다. 동률 1위 팀이 상대전적으로 1·2위를 가리게 된 것도, 2위 팀이 한 달여 만에 9경기 안팎의 격차를 뒤집고 우승한 것도 처음이었다. 기세가 꺾인 SK는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3위 팀 키움 히어로즈에 졌고,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손쉽게 우승했다.
한국시리즈 종료 후 "144경기 장기 레이스에서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린 팀들의 순위를 상대전적으로 가리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또 "1위 팀 동률 시 추가로 진행될 순위 결정전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처럼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새로운 흥행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 때문에 KBO리그 10개 구단은 나머지 순위는 동률 시 예전과 같은 기준에 따라 순위를 가리되, 정규시즌 1위에 한해서는 순위 결정전을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동률 1위 팀이 3개 팀 이상일 경우에는 치러야 할 번외 경기 수가 너무 많아져 또 다른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예전처럼 상대 전적 다승, 다득점,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도입 첫 해인 지난해는 NC가 승률 0.601(83승 6무 55패), 정규시즌 2위 KT가 승률 0.566(79승 4무 61패)을 각각 기록해 순위 결정전이 화제에 오르내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막판까지 초접전을 펼친 KT와 삼성이 2년 만에 '역대급 정규시즌 우승 전쟁'을 재현하면서 규약집 속에 묻혀 있던 새 제도를 수면 위로 올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