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남친이 물뽕 타 성폭행에 촬영까지” 경찰 “영상서 서로 대화, 약물·도촬 확인 안돼”
하지만 최근 경찰이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판단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20대 한 여성이 소위 말하는 ‘물뽕’ 몰래 투여가 의심된 상태에서 강간 및 불법 촬영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 경찰이 사건을 무혐의로 판단한 핵심 근거는 불법 촬영 영상물이었다. 해당 영상에서 여성이 남성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있었는데, 경찰은 이를 근거로 “강간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 여성은 데이트 중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촬영한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그 후에도 일관되게 “동의 없이 촬영됐다. 성관계 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피해자 측에게 한 차례만 해당 불법 촬영물을 보여줬고, ‘전문가에게 영상을 맡겨 약물 가능성 판단을 받게 해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년여의 경찰 수사 기간 피해 여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고 학업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사건은 경찰의 무혐의 처분에 따른 불송치 결정으로 수사 종결 수순을 밟았는데 피해자 측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현재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됐다. 피해자 측은 검찰에 “해당 영상물에 대한 전문가 판단을 받게 해달라”며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어찌된 사연인지 일요신문이 단독 보도한다.
#신고 접수 11개월 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여름인 7월 31일로 20대 여성 A 씨는 카페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서 본인의 나체 사진이 찍힌 것을 발견했다. 놀란 A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단순히 사진 몇 장 정도만 찍힌 줄 알고 있었던 A 씨와 A 씨의 아버지. 하지만 남자친구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A 씨와의 성관계 동영상이 발견된 것이다.
A 씨의 생일인 7월의 어느 날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촬영된 영상이었다. 2분 30초 정도씩 촬영된 영상이 5개가량 있었는데, 이를 직접 본 A 씨 아버지에 따르면 A 씨는 힘없이 누워 있었는데 가해자의 얼굴은 영상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A 씨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술을 마셨는데 이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A 씨. 주량이 소주 1병 반 이상이었던 A 씨가 그날 마신 것은 와인 2잔과 맥주 1잔 정도다.
자연스레 A 씨 측은 남자친구가 술에 물뽕을 탔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그가 대마 등 마약을 하자고 A 씨에게 제안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서 A 씨의 나체가 나오게끔 그가 손가락으로 '일베' 표식을 한 뒤 찍은 사진 등도 발견돼 A 씨 아버지는 불법 촬영뿐 아니라 이를 유포하려 했을 가능성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사를 담당한 서초경찰서는 피해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인지 직후 피해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하면 기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A 씨 사건은 오히려 성관계 영상이 발목을 잡았다. A 씨가 아니라 남자친구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당일 등산을 하고 와 피곤해서 금방 취한 것 같다. 성관계도 촬영도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을 근거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경찰도 근거는 있었다. 동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보내 받은 감정 결과를 무혐의 처분의 근거로 삼았다. △국과수가 “(해당 영상 속) 피해자의 행동과 목소리(음성) 등이 약물에 취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불가하다”며 판단을 유보한 점 △피해자가 기운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B 씨와 대화를 나눈 점 △피해자로부터 (물뽕)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준강간 및 해당 영상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신고 접수 11개월여 만에 나온 결과였다.
#“전문가 조사 요청했지만 묵살”
1년 가까이 진행된 수사였지만 A 씨 측은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A 씨의 아버지는 일요신문에 “피의자 노트북을 압수수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교통사고로 노트북이 파손됐다고 해 확보하지 못했다”며 “경찰이 대학교수의 아들인 피의자를 봐주기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는 데 핵심 증거가 된 동영상 수사에 대해서도 울분을 터트렸다. A 씨 아버지는 “처음 영상이 발견됐을 때 한 번밖에 보지 못했고, 이에 대한 감정을 받으려고 몇 차례나 전문가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경찰에 얘기를 했지만 보여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졸피뎀이나 GHB(일명 물뽕)는 투약 후 24~72시간이 지나면 소변으로 배출이 돼, 곧바로 수사를 하지 않으면 확인이 어렵다. A 씨의 경우 불법 촬영을 당한 날부터 10여 일이 훌쩍 지난 7월 31일 경찰에 신고를 했고 약물 검사도 그 후에 이뤄졌다. 유일한 증거물인 동영상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미국의 경우 ‘데이트강간 약물 금지법(Date-Rape Drug Prohibition Act of 2000)’을 연방법으로 도입해 관련 성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GHB와 같은 물질을 데이트강간 약물로 규정했고, 이를 이용하다 붙잡히면 최대 20년까지 징역형, 단순소지에 대해서도 3년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 A 씨를 변호하고 있는 권순철 변호사는 “GHB가 투여돼도 대화가 가능하고 지시에 맹목적으로 순종한다는 보도도 있다. ‘대화를 나눴으니 약물 투여는 없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며 “경찰은 ‘약물 여부’로 국한해서 국과수에 동영상 감정을 요청했지만, 사건의 핵심은 성관계 영상이 촬영된 날 피해자 A 씨가 심신상실, 항거불능의 상태였는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가 당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범죄 심리학자나 마취과 전문의 등 의료인에게 동영상 감정을 맡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물뽕 등 약물을 활용한 범죄가 많아지고 있다. 관련 사건 중 촬영된 영상물까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몰래 촬영한 영상물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맡기고 이를 판단에 반영하는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데이트강간 약물에 대한 엄격한 처벌 기준 마련도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