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성 검사 구속영장 기각에 수사 미진…대선 개입 의혹 피해 물증 확보 스케줄 미뤄질 가능성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당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공수처의 판단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볼 만큼 이례적이었다. 소환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상황에서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무리수를 선택했고, 법원은 체포영장에 이어 구속영장마저 기각시켰다. 특히 구속영장에 고발장을 쓰도록 지시한 사람을 ‘성명불상자’로 적어야 했을 정도로 수사가 미진했던 탓에, 비판은 상당하다.
#검찰 법원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영장청구”
손준성 검사는 2020년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며 부하 검사들에게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 및 관련 자료 수집을 지시하고, 이를 야당에 전달해 국민의힘이 여권 인사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이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시로 이행했다는 의혹을 설명할 수 있는 ‘키맨'이기도 하다.
손준성 검사가 사건에 관여했다는 판단 하에, 사건을 넘게 받게 된 공수처는 사건 당시 손 검사의 지휘를 받던 검사가 고발장 전달 당일(4월 3일) 오전 첨부 자료에 포함된 채널A 사건 제보자 지 아무개 씨의 판결문을 검색한 사실도 확보했다.
여기서부터 공수처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손 검사가 공수처의 잇따른 소환 통보에 불응하자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10월 26일 ‘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손 검사를 입건하면서 적용한 혐의 모두이기도 했다. 특히 이는 공수처가 출범한 이래 처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었다.
하지만 26일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법원은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했다”며 영장기각 사유를 밝혔다.
손 검사의 입장이 재판부를 설득한 셈이기도 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공수처 수사팀과 처음으로 대면한 손 검사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변호인 선임을 위해 출석 일자를 늦췄을 뿐, 이후 출석 일자를 확정 통보했음에도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공수처가 아닌 손 검사의 손을 들어줬다. 체포영장 기각 후 곧바로 구속영장 청구라는 이례적인 공수처의 승부수를 놓고 비판이 쏟아지는 대목이다.
부족한 수사 내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공모한 검찰 간부나 손 검사의 지시를 받은 검사 등도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공모하거나 지시한 간부 등을 ‘성명불상자’로 적었다. 또 부하 검사가 손 검사에게 ‘필라테스 건으로 연락드립니다’라며 필라테스 관련 대화를 나눈 것을 놓고도 ‘암호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필라테스 학원까지 수사를 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체포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은 신병 확보를 하기에는 증거나 상황이 급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인 셈인데, 소환조사조차 없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판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사건을 놓고 그렇게 무리한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판단’이라는 해석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했다면 더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위로 올라가야 하는 특수 사건의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진술 등의 근거 자료를 토대로 법원에 주장해야 하는데, 성명불상으로 적을 만큼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는 수사의 기초를 모르는 것”이라며 “수사 내용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을 수 있겠지만 영장이 기각된 것을 보면 정말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소환조사부터 시작
영장 기각 일주일 만인 11월 2일 공수처는 손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소환조사했다. 당초 영장실질심사 때부터 “윤석열 개인을 위해 일한 적이 없다”며 고발장 작성 및 전달 의혹을 모두 부인했던 손준성 검사다. 공수처는 영장심사 이후 진행한 보강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손 검사를 상대로 집중 추궁했다. 또,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소환해 손 검사와의 연락 과정들에 대해 물어봤다.
하지만 공수처가 잇따른 소환 조사를 통해서 수사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손 검사 측이 고발장 작성 지시와 전달 등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고, 수사팀에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김웅 의원 역시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언론에 밝히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 ‘손준성 유죄’라는 판단을 내린 공수처가 이대로 사건을 무혐의로 끝낼 것으로 보는 이는 없다. 자연스레 손 검사 및 김웅 의원을 소환 조사하거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물증을 추가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선 특수통 검사는 “진술로 빈틈을 찾아낼 수 없다면 휴대폰 속 문자나 대화, 혹은 전화 기록 등을 토대로 수사팀만의 시나리오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공수처가 수사를 더 보완한 뒤, 무조건 기소 이상의 판단을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다만 공수처가 데드라인으로 정했던 11월 5일(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확정일)은 지키기 어려워진 만큼, 수사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 정보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선 경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구속영장 청구와 같은 신병확보에 나선 부분도 있는데 무산됐으니, 대선 이후까지는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스케줄 조정’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