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내내 이어진 불운과 사고…강등 위기에 시즌 3경기 앞두고 감독 교체 승부수
#'행정가'로 변신한 이영표
2020년 12월 이영표 대표의 강원 구단 부임은 팬들에게 신선한 뉴스였다. 이영표 대표는 현역 시절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한 인물이다. 국가대표로 127경기에 출전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 잉글랜드, 독일, 사우디, 캐나다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했다. 선수생활 이후에는 해설위원, 선수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선수 시절 말년, 한때 K리그 복귀설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팀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 소속된 캐나다의 벤쿠버 화이트캡스였다. 그는 당시 자신의 진로가 '행정가'임을 밝혔다. 스포츠 비즈니스의 본고장인 미국 현지에서 경험을 쌓고 행정가로서 국내 무대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영표 대표는 월드컵,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 해설위원으로서의 활동 외에 대외적 활동은 자제했다. 이따금 '여전히 해설을 하며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뿐이었다.
그러다 이영표 대표는 2021년부터 강원 구단 대표이사로 부임, 행정가로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다양한 팀과 인연이 있는 이 대표지만 고향 팀과 손을 잡으며 기대감을 높였다. 부임 직후부터 전용구장 건립, B팀 신설, 핵심선수 재계약 등 현안을 처리했다. 3월에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올라 행정가로서 보폭을 넓혔다.
강원 구단 대표 취임 이후에도 이영표 대표는 종종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비쳤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현역 시절 동료들과 함께 출연했다. 본업 외 '외도'였지만 그는 프로그램 내에서도 강원 구단 배지를 정장에 착용하고 구단 상징색인 주황색 넥타이를 매는 등 대표로서 정체성을 이어갔다. 프로그램 내에서 이 대표가 감독을 맡은 팀의 유니폼 색깔 역시 강원 구단과 같은 주황색이었다. 한 축구인은 "대형 구단에 비해 관심을 적게 받는 도민구단 강원으로선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누렸다"고 말했다.
#팀 내 사건사고로 골머리
대표로서 이영표의 행보에 순풍만 불었던 것은 아니다. 2021시즌 중 강원 구단에서는 크고 작은 내부 문제가 불거졌다. 구단의 수장인 이영표 대표에게 화살표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시즌이 진행 중이던 7월, 코칭스태프 간 폭행 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신체 접촉까지 이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강원 구단은 김병수 감독에게 제재금 4000만 원을 부과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사건은 중징계로 일단락됐지만 감독과 대표 간 불화설에 대한 루머가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이 대표가 이끄는 프런트 내에서도 잡음이 일어났다. 전력강화부장이 비위를 일삼았다는 한 에이전트의 폭로가 나온 것이다. 이전부터 강원은 프런트 내 사건사고가 잦았던 팀이다. 구단주와 단장이 갈등을 벌이는가 하면 또 다른 단장은 비위 의혹에 시달렸다. 이영표 대표 체제 아래 전력강화팀에서 잡음이 일었던 사건 전후로 한 축구계 관계자는 "이 대표가 프런트 인원을 대거 교체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교통사고·부상…이어진 불운
선수단 내 불운도 이어졌다. 시즌 초반에는 선수 2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상대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일어난 사고였기에 선수들은 책임에서는 다소 자유로웠지만 부상을 입었다. 팀 내 비중이 큰 주축 선수였기에 팀으로선 뼈아픈 사고였다.
팀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선수단이 자가격리 기간을 가지기도 했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었기에 규정에 따라 강원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일정을 소화했다. 강원은 순연 경기를 빡빡한 일정 속에서 치러야만 했다.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시즌 내내 선수단이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인원을 포함해 한국영, 김대원, 임창우 등 주요 전력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기간이 있었다. 개막 전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강원의 성적은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돌았다. 나쁘지 않은 전력을 갖췄지만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도민구단의 한계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구단 운영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이영표 대표도 부임 이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위기를 맞았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부리그 생존 싸움, 절체절명의 위기
시즌 초반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하위권에 머문 강원이었지만 축구계 관계자들의 평가는 낙관적이었다. 구단이 중위권 이상의 전력을 갖췄고 실제 지난 2년간 6위와 7위라는 성적을 기록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즌은 막바지로 흘렀고 성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승리에 어려움을 겪으며 순위는 떨어져만 갔다. 10월 말부터 다섯 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을 보냈지만 승리한 경기가 없었다. 그 사이 기대를 모았던 FA컵에서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리그에서 부진을 만회할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다.
강등권 윤곽이 잡혀가는 지난 35라운드(11월 3일), 팀이 0-4 대패를 당하자 결국 강원 구단은 감독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상 경질임에도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해지'라고 발표하는 기존 K리그 분위기와 달리 강원 구단은 '해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해임이 결정된 직후 김병수 감독은 “부재중 전화만 찍혀 있고 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며 이영표 대표를 향해 서운함을 표현했다.
리그 종료까지 3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감독을 해임했고 4일 만에 이어진 36라운드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강원의 순위는 11일 현재 11위,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성적이다. 최악의 경우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이렉트 강등을 당할 수도 있다. 한 축구인은 "구단이 큰 도박을 한 것과 다름없다"며 "시즌을 3경기만 남겨두고 감독을 잘라냈다. 경질을 할 것이었으면 시점이 더 빨랐어야 한다고 본다. 아쉬운 선택이다. 큰 위기에 빠진 상황에 누가 감독으로 오려고 하겠는가. 이 대표가 머리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이영표 대표는 은퇴 이후 행보에 기대를 많이 받았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단장도 아닌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팀의 성적에 발목이 잡히며 시험대에 올랐다. 이영표 대표는 행정가 커리어 1년차에 맞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