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법 변경 후 최대 20조 원 여력…증권사 마땅한 매물 없어 보험사라도? 우리금융 측 “증권사 우선”
#매물이 없다?
우리금융지주는 최근 진행한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증권사와 보험사를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자회사와 시너지 효과가 큰 증권사 인수를 최우선 순위로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증권사 매물이 눈에 띄지 않는 만큼, 종합 금융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보험사 인수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금융지주는 비은행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수년 전부터 표명해왔다.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업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아 지난해 저금리 등 영향으로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눈에 띄게 실적이 악화했다. 계열 증권사가 없어 주식 투자 열풍으로 인한 거래 수수료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우리금융지주의 오랜 숙명인 비은행 사업 확대 계획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대규모 실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금융지주 내부등급법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승인되면서 자본 여력이 커졌다. 2019년 1월 우리금융지주가 재출범한 후 줄곧 우리금융은 표준등급법을 적용받았다. 표준등급법은 세계은행 감독기관인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표준 가중치를 적용해 위험가중자산을 평가한다.
이와 달리 내부등급법은 자체 신용평가시스템을 기반으로 신용리스크에 대한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한다. 표준등급법보다 상대적으로 덜 엄격해 적용 시 위험가중자산 비율이 줄고, 추가 출자 여력이 생긴다. 우리금융지주는 등급법 변경 후 BIS 비율이 약 1.3%포인트 오를 것으로 추산한다. 올해 3분기 기준 BIS 비율은 13.4%(9월 말 기준)이지만 내부등급법이 적용돼 약 15%가 됐다. 우리금융지주는 자본 규모는 2조 원 늘고, 위험자산 기준 20조 원 정도 여유가 생긴다고 자체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매물이 없다는 점이다. 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몰렸고, 개인들이 주식 투자로 대거 몰리는 ‘동학개미운동’도 벌어졌다. 증시 호황기에 증권사마다 위탁 매매 수수료로 큰 이익을 얻었다. ‘영끌’의 영향으로 신용공여 이자수익도 급증했다. 앞으로는 지난해과 올해처럼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기 쉽지 않겠으나, 이번에 증권사마다 신규 고객을 대규모 유치하면서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사업 전망도 좋아 누가 팔겠느냐는 의견이 많다.
물론 꼽히는 인수 후보들은 있다. 유안타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삼성증권, SK증권, 하이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 중소형 규모이거나 기업 계열사에 속하는 증권사들이다. 특히 유안타증권의 경우 과거 한 차례 우리금융지주와 대만 유안타그룹이 유안타증권 매각을 놓고 접촉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유안타증권은 최근 우리은행과 11월부터 '우리WON뱅킹'에서 유안타증권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주식거래지원금과 아이폰13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시작하는 등 제휴를 맺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실체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금융지주가 어느 증권사와 접촉하고 있는지 등 M&A 관련 소식이 없다 보니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오는 해묵은 소문이라는 것이다. 유안타증권의 경우 최근 우리은행과 제휴한 것만으로 인수를 염두에 뒀다고 판단하긴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매물이 없으니 계속 말만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 예전 소문들이 오랜 기간 진척되거나 바뀌지 않는 모습은 근거 없는 소리라는 뜻”이라며 “우리금융지주가 어떤 증권사를 인수할 것이란 기대감이나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인수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 이후 소형 자산운용사들은 수탁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힘들어 인수할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현 투자 시장 호황기에 상장지수펀드(ETF)나 공모펀드 등을 판매하며 많은 수익을 내고 있어 매각할 이유가 없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인수 의미가 있으려면 10대 운영사나 최소 20대 운영사 안에는 들어가는 몸값 10조 원 정도의 매물이어야 한다”며 “그 정도여야 공모 라이선스나 투자조합 운용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어 시장에 진출하기 용이한데 그런 매물은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 인수 메리트 '글쎄'
지금으로선 보험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금리 인상기에 은행은 이자가 올라가면서 수익성이 높아지지만 다른 자본시장 관련된 증권사나 캐피탈은 조달 금리가 올라가면서 비용 부담이 커진다. 이처럼 금융 분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신한금융지주가 최근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인수하는 등 금융그룹마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가져가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도 종합금융지주가 되려면 보험사 인수는 필수적이다.
시장 포화로 성장이 정체됐다는 점은 부담이다. 장기상품이 많으니 한번 가입한 사람은 다시 가입하지 않고 저출산으로 신규 가입자도 줄어들고 있다. 보험사는 많은데 고객 유치는 힘들다. 생명보험의 경우 종신보험 위주로 성장했지만 요즘은 생명보험에 들지 않는 추세고 가입 조건과 혜택이 까다로워 비대면 서비스가 힘들기 때문에 사업 메리트가 떨어진다. 손해보험은 다양한 영역의 상품을 취급하기에 상황이 그나마 낫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 올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동량이 줄면서 자동차보험 실적이 일시적으로 개선됐지만,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이동량이 많아지는 만큼 사고율 증가로 실적이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실손보험은 여전한 과잉진료 문제로 손해율이 높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는 잘 운영되고 있으니 매물로 나오긴 어려워 대개 중소형사 위주의 매물이 M&A 대상이 되는데, 어느 보험사가 물망에 올랐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외국계 보험사들이 우리나라 정부의 금융권 규제 기조나 사업 성장 정체 등으로 사업을 접고 있는 만큼 외국계 보험사들이나 사모펀드가 주인인 롯데손보 등은 인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우리금융그룹은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포트폴리오를 갖춰가고 있는 단계"라면서 "그룹 시너지를 크게 낼 수 있는 증권사 인수를 우선시 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벤처캐피탈, 부실채권(NPL) 전문회사 편입도 추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