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두 번은 안 진다” 통합우승 정조준…두산 천군만마 미란다 합류 “1등 해야 의미”
#이강철의 KT, 통합 우승을 조준한다
이강철 감독은 1990년대 최강팀 해태 타이거즈에서 10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에이스였다. 역대 잠수함 투수 최다승(통산 152승)과 타이거즈 프랜차이즈(해태·KIA)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다.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고 당대를 호령했다. 다만 은퇴 후 프로 감독에 오르기까지는 경력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 KIA,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두산을 거치며 13년간 코치를 맡았다. 선수 시절 자신의 후배였던 감독들을 보좌하며 묵묵히 일했다. 그런 그에게 처음 프로 지휘봉을 맡긴 팀이 '막내' KT다.
KT는 2015년 1군에 진입한 이래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2018년에도 9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9년 이 감독이 KT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팀 창단 최초로 승률 5할(71승 2무 71패)에 도달하면서 6위까지 올라섰다.
취임 2년째인 지난 시즌엔 정규시즌을 2위(승률 0.566·81승 1무 62패)로 마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PO)에서 두산에 1승 3패로 져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첫 시련을 맛본 이 감독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여러 고비를 이겨내면서 꾸준히 강한 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감독의 바람은 실제로 이뤄졌다. KT는 올 시즌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까지 치른 끝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감독은 수시로 '팀 KT'를 강조하면서 선수단을 하나로 묶었고, 투수 출신답게 빈틈없는 마운드를 구축해 위기를 돌파했다. 1년 전 문턱까지 갔다가 아쉽게 돌아섰던 한국시리즈에 올해는 가장 먼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KT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하나씩 새겼다.
이강철 감독은 정규시즌 우승 뒤 "프런트, 팬, 선수가 '팀 KT'로 하나가 돼 이룬 성과다. 최고참 유한준을 포함해 박경수 황재균 등 베테랑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줬고, 후배 선수들도 자기 역할을 잘해줬다"며 "창단 첫 한국시리즈를 잘 준비해서 새로운 구단의 역사를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시리즈 상대가 두산으로 결정된 뒤엔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두산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면서도 "선수들 모두 지난해 PO에서 두산을 상대해봤으니 올해는 멋진 승부가 기대된다. 정규시즌 1위의 자부심을 갖고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팀에 두 번은 지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다.
#김태형의 두산, '기적'이 전문이다
두산은 '가을 전문가'다.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쳐 가을 무대 첫 시리즈인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했지만, 기적 같은 행보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동시에 KBO리그 역대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도 썼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2007~2012년), 삼성(2010~2015년)과 나란히 최장 기간 타이기록을 갖고 있다가 올해 단독으로 최장 기록을 보유한 팀이 됐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과 PO 1차전에서는 리그 최초로 단일팀 포스트시즌 통산 100승 고지를 밟았다. 올해 PO까지 두산의 가을야구 성적은 통산 185경기 101승 1무 83패.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 함께 출발한 삼성 라이온즈(179경기 77승 7무 95패), KIA 타이거즈(97경기 57승 2무 3패)와 격차가 크다. 두산이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면, KBO리그 최초로 단일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PO, PO,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승리하는 대기록까지 만든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이 같은 '왕조'를 앞장서 이끈 사령탑이다. 두산이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서는 동안 상대 팀과 감독은 매년 바뀌었지만, 김 감독은 7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두산 더그아웃을 지켰다. 2015년 준PO부터 올해 PO까지 포스트시즌 56경기를 지휘해 36승 20패(승률 0.643)의 놀라운 승률을 올렸다.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포스트시즌 모든 시리즈에서 한 번도 탈락하지 않는 진기록도 남겼다. 1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2021년), 3번의 준PO(2015·2020·2021년), 4번의 PO(2015·2017·2020·2021년)를 모두 이겨내고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앞선 한국시리즈 6번 중 3번(2015·2016·2019년)은 우승도 차지했다.
선수 시절 평범한 포수였던 김 감독은 프로 사령탑이 된 2015년부터 숨은 재능을 터트렸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승부사 기질로 선수단을 장악했다. 베테랑 주전 선수가 대거 빠져나가고 부상 선수가 속출했던 올해도 그랬다. 부임 후 가장 낮은 승률로 정규시즌을 마쳤지만, 빠른 두뇌 회전에 지난 6년의 경험까지 쌓이니 단기전에선 적수가 없었다. 외국인 원투펀치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이 모두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도 '가을야구 초보'인 홍원기(키움) 류지현(LG 트윈스) 허삼영(삼성) 감독을 차례로 꺾고 다시 이강철 감독과 만났다.
우승을 욕심내지 않은 시즌이지만, 한국시리즈까지 왔으니 두산도 물러설 수 없다. 김태영 감독은 "KT는 투수진이 좋다. 단기전에선 마운드가 좋은 팀이 유리하다"고 경계하면서도 "7년 연속 KS 진출은 기록에 불과하다. 2등은 늘 서글프고, 1등을 해야 의미가 있다"며 우승에 대한 열의를 숨기지 않았다.
#유리한 KT, 선수들 사기도 최고조
유리한 쪽은 역시 KT다. 정규시즌 종료 후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베스트 멤버도 그대로다. 1위 결정전에서 투혼의 역투를 보여준 윌리엄 쿠에바스와 국가대표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가 건재해 선발 투수 운용에도 여유가 있다. 다만 코로나19 상황과 날씨 문제로 한국시리즈 준비에 애를 먹었다. 시리즈 초반 타자들의 경기 감각도 걱정거리다. 한국시리즈 선착 팀이라면 모두 겪는 애로사항이다.
하지만 KT 선수들의 우승 의지와 팀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유한준 박경수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 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각오와 지난해 아쉬움을 설욕하겠다는 투지로 팀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유한준은 "선수 생활에서 첫 정규시즌 우승이다. KT 구단의 역사를 함께한 이 순간에 모두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고 영광스러웠다"며 "이 모든 걸 이룬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프런트께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통합 우승을 해야 진짜 끝난 거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고삐를 조였다.
박경수도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지만, 야구 인생에 있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며 "내가 후배들한테 딱히 잘해준 건 없지만, 항상 너무 잘 따라와 주고 믿어주면서 잘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이 나이에 개인 성적까지 좋으면 더 좋겠지만, 나에겐 팀 성적이 정말로 우선이다. 1위로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재정비한 만큼, 꼭 통합 우승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주장 황재균의 뜻도 다르지 않다. 시즌 막바지 부진했던 게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그는 "주장으로서 감독님, 코치님, 스태프, 프런트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 순위 싸움 때 팀에 도움이 못돼 마음이 안 좋았는데 모두 힘내준 덕분에 나도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는 것 같다"며 "4년 전 KT에 처음 입단했을 때는 9위로 시작했는데, 한 단계씩 팀이 성장하는 걸 보니 정말 이 팀에 오길 잘했다. 가장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KT 강백호도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올해 전반기에 리그 최고 타자로 펄펄 날다가 도쿄올림픽과 후반기 부진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7월까지만 해도 떼어놓은 당상인 듯했던 타격왕 자리도 1년 선배 이정후(키움)에게 넘겨야 했다. 통합 우승은 혼란스러운 한 해를 보낸 강백호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강백호는 "(시즌 막바지 삼성의 거센 추격으로) 팀 전체가 모두 고생한 것 같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즌이었는데, 시행착오를 잘 이겨내고 한국시리즈에 우승팀 자격으로 올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며 "팬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모두 하나가 돼 최고의 결과를 낸 시즌"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올해 가을야구만큼이나 긴장되는 경기를 많이 해서 익숙하다. 1위 결정전 승리로 자신감도 회복했다"며 "한국시리즈의 압박감은 우리 팀이 하나로 뭉쳐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시리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KT 창단 후 첫 100세이브 투수가 된 김재윤도 올해 우승을 확정하는 '헹가래 투수' 역할을 꼭 해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는 "아직 '우승했다'고 좋아하기엔 이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잘 던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우리 팀은 응집력이 강하다. 지금 아주 단단하게 뭉쳐 있고, 그 마음으로 경기를 치르니 결과도 좋을 거다. 꼭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불리한 두산, 그래도 미란다가 있다
반면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올라온 두산은 마운드 피로도가 크다. 미란다는 출전이 불가능했고 로켓은 이미 팀을 떠난 상황이라 국내 선발 최원준, 김민규, 곽빈과 불펜 홍건희, 이영하, 이현승을 '돌려쓰면서' 한국시리즈까지 왔다. 2승만 올리면 충분했던 앞선 시리즈들과 달리 4승을 채워야 하는 장기 일정도 부담이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천군만마를 얻었다. 어깨 통증 문제로 가을야구에서 사라졌던 에이스 미란다가 한국시리즈에 출격하기로 했다. 김태형 감독은 12일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이 끝난 뒤 "100%는 아니지만 공을 던질 만한 상태인 것 같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넣기로 했다. (미란다에게) 쓰러져도 마운드에서 쓰러지라고 했다"며 웃었다.
미란다는 올 시즌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한 리그 최고 외국인 투수다. 173과 3분의 2이닝 동안 삼진 225개를 잡아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37년 만에 갈아치웠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시속 120km대 포크볼의 조합에 수많은 타자가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헛방망이질을 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막판 어깨 통증을 호소해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다행히 두산이 앞선 여정을 소화하는 동안 어깨 상태에 차도가 있었다.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오를 경우를 대비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실에서 훈련을 이어갔고, 실제로 그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시리즈는 야외구장이 아닌 고척돔에서 진행되기에 추운 날씨로 인한 부담도 덜하다.
미란다는 지난 11월 9일 30m, 10일 45m, 11일 60m 캐치볼을 차례로 진행한 뒤 12일 처음으로 불펜피칭 33개를 소화했다. 구속은 따로 측정하지 않고 직구, 포크볼,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4개 구종을 골고루 던져보면서 어깨 상태를 체크하는 데 집중했다. 정재훈 투수코치와 불펜 포수가 연신 "나이스 볼"을 연발할 정도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미란다 스스로도 피칭 도중 "공을 너무 오랜만에 던져서 (제구가) 많이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또 피칭을 마친 뒤엔 "그동안 재활 과정을 착실히 소화해서인지 몸 상태가 좋다. 불펜 피칭에서는 구종을 점검하고 감을 찾는 데 주력했다. 한국시리즈에 등판한다면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태형 감독도 미란다의 의지를 칭찬했다. 김 감독은 "사실 거의 포기 상태였는데, 준PO가 끝난 뒤 트레이닝 파트에서 '미란다의 상태가 좋아져서 하프 피칭을 시작한다'고 하더라. 선수 의지도 강해 꺾을 수 없었다"며 "미란다의 보직은 선발이 아닐 수도 있다. 한 차례 피칭을 더 해보고 선발일지, 불펜일지 결정할 생각이다. 상태를 보고 적절한 시점에 기용할 생각인데, 아마도 3차전 정도부터 나설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란다는 정규시즌 KT전 5경기에 나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했다. 9개 구단 중 가장 자주 상대한 팀이고, 평균자책점은 가장 나빴다. 그렇지만 두산 마운드에 미란다가 가세하는 것만으로도 KT 타선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란다가 한국시리즈에서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할지, 그리고 김태형 감독이 그를 어떻게 활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