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잘나가는 이유? 신진서 성숙·기전 유지·중국 불안정”…“양신+박정환 외에 2년간 급성장한 변상일 주목해야”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2020년대에 들어 상황은 다시 변했다. 한국이 신진서·신민준이라는 양신(兩申)과 박정환을 앞세워 중국에 반격을 선언한 것. 특히 올해는 LG배 세계기왕전, 삼성화재배, 춘란배, 농심신라면배 등 한국이 우승컵을 휩쓸어 몽백합배 우승 하나에 머문 중국을 압도했다.
한국바둑의 상승세는 2017년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목진석 9단이 이끌고 있다. 목진석 감독을 만나 최근 세계 바둑계의 흐름을 들어봤다.
—올해 한국 기사들의 성적이 좋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봤다. 첫째는 가장 성적이 좋은 신진서 9단이 이젠 성숙해져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전(棋戰)이 위축되지 않고 최상위권 기사들의 대국수가 보장됐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기사들이 꾸준한 경기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마지막 세 번째는 라이벌 중국이 우리와는 반대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 주최 세계기전이 열리지 않았고 자국 내 기전도 불안정해 선수들이 바둑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합쳐진 결과라 본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지는 얼마나 됐는가.
“2015년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감독은 2016년 12월초였으니까 만 5년 됐다.”
—2015년 GS칼텍스배 우승자이고 방송해설로도 잘나가고 있었는데 돌연 지도자로 변신했다. 아쉬움은 없었나.
“작년 4월부터는 시합에 아예 안 나가고 있다. 방송해설도 마찬가지고. 처음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서 시합과 감독직을 병행했지만 얼마 안 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부에 대한 욕심은 많이 내려놓았다.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맡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2014년 중국 시안에서 열렸던 삼성화재배 결승에 김지석 9단과 동행했는데 사실 이때 우리가 중국에 연전연패할 때라 부담이 컸던 시기였다. 당시 결승 상대가 탕웨이싱 9단이었는데 김지석 9단이 2-0으로 승리한 순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걸 느꼈다. 내가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뻤고 찡했다. 그래서 이런 길이라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기뻤던 적은.
“2018년 제19회 농심신라면배에서 우승했을 때다. 단체전이고 중국에 4년 연속 우승컵을 빼앗기고 있을 때여서 더 기뻤다.”
—국가대표 상비군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한국기원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식적인 훈련 스케줄을 갖고 있다. 현재 국가대표는 남자 18명, 여자 8명, 청소년 대표 8명이다. 남자의 경우 6개월에 한 번 18명 중 4명을 승강급 리그를 통해 새로 선발한다. 남자 국가대표는 1조가 8명, 2조가 10명인데 내부 리그전을 통해 1조 승격, 2조 강등이 결정된다. 6개월 성적 합산으로 2조 10명 중 하위 4명이 탈락하는 시스템이다. 여자 국가대표는 6개월마다 8명 중 2명이 탈락하고 새로 선발된다. 모든 기사에게 개방하는 전체 선발전을 거친다. 보통 남자 국가대표는 저와 홍민표 코치가 맡고 있고, 여자 대표는 박정상 코치가, 청소년 대표는 조인선 코치가 담당을 하고 있다. 담당은 있지만 서로 어울려 훈련을 하기도 한다.”
—향후 세계 바둑계의 판도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최상위권 기사들의 층은 아무래도 중국이 두텁다. 하지만 투톱 대결이라면 한국이 우세할 것이고, 랭킹 5위까지 붙어도 우리가 앞선다고 본다. 그 이상이라면 중국이 유리할 것이다. 중국의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 미위팅 9단 등은 아무리 신진서가 랭킹 1위라고 해도 방심할 수 없는 기사들이다. 전체적으론 5 대 5 균형이 지속될 거라 본다.”
—중국팬들은 한국에서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외에 다른 기사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상황을 가장 꺼린다고 한다. 한국바둑의 층이 엷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이외에 기대되는 기사가 있다면.
“변상일 9단이다. 지난 2년간 기량이 가장 많이 발전한 기사다. 변상일의 실력은 신진서 9단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과 함께 국내 빅4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세계대회 우승컵이 아직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문제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지금보다 한꺼풀 벗어나는 것인데 이는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돕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책도 선물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
—신진서 9단의 경우 작년 커제와의 삼성화재배 결승, 올해 박정환 9단과의 결승에서 중요한 고비 때마다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래도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웃음). 과거엔 실수를 하면 얼굴에 바로 나타나고, 대국 중 제어가 안 돼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았나.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부분이고 연륜이 쌓일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신진서 9단은 아직도 발전하는 중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10개월 남았다. 이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이번 아시안게임에 걸린 금메달은 3개다. 5인 남자단체전, 3인 여자단체전,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와 달리 혼성 페어전 대신 남자개인전이 추가됐다.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은 남자대표 6명, 여자대표 4명을 선발한다. 병역 문제도 걸려 있어 기사들의 관심도 많다. 철저한 선발전을 거쳐 내년 5월쯤 엔트리가 확정될 것이다. 목표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처럼 전 종목 석권이다.”
목진석 감독은 90년대 중반 혜성처럼 나타나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국의 ‘철(鐵)의 수문장’ 녜웨이핑 9단을 꺾으며 괴동(怪童)이란 별칭을 얻었다. 2000년에는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꺾어 ‘포스트 이창호’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후 30대 중반에 GS칼텍스배 프로기전에서 우승,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국가대표 감독의 임기는 아시안게임 때까지다. 그 후에는 해외 바둑보급 활동을 해보고 싶다. 외국어에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현재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세우지 않았지만 바둑 환경이 예전과는 다른 만큼 보급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