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사업 분할 주가 악재, 선진국에선 드문 일…주주 피해 반복 “분할 요건 강화하고 매수청구권 부여를”
물적분할 또한 분할의 한 방식일 뿐이다. 다만 문제는 대부분 기업이 유망한 사업부문을 분할한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기존 주주는 전도유망한 신설회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어 물적분할은 통상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 만도모빌리티솔루션즈 등이 물적분할 결정을 내리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삼성SDI는 회사 측이 극구 부인했으나 분할설이 계속 제기되면서 주가가 하락세를 탔다.
#미국은 유망사업 물적분할 불가능
CJ ENM은 분할 발표 전인 11월 19일만 해도 주가가 18만 400원이었으나 발표 이후 연일 흘러내려 같은 달 30일 13만 5800원을 기록했다. 7거래일 만에 25%나 떨어진 것이다. 첨단소재 부문 물적분할 가능성이 제기된 한화솔루션도 주가 흐름도 신통치 못하다.
물적분할과 관련해서 CJ ENM 관계자는 "'멀티 스튜디오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글로벌 타깃의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와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K-콘텐츠 수요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장기 전략에 따른 선택"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기존 주주들이 지분을 그대로 가져가는 인적분할을 실시할 경우 신설회사에 대한 낮은 지분율 때문에 대규모 투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분할할 당시 LG화학 관계자는 “지주회사 LG의 LG화학 지분율은 30%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인적분할을 실시하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율도 30%밖에 되지 않고, 이렇게 되면 LG에너지솔루션이 10조 원 이상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할 경우 지주회사의 지분율이 10~20%밖에 남지 않게 된다. 지배력 유지 차원에서 인적분할은 고려할 수조차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물적분할을 너무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유사한 사례가 전혀 없다. 기본적으로 인적분할을 실시하고, 물적분할을 할 때는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물적분할을 하더라도 유망 사업 부문을 떼어내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업부문을 매각하려고 분할하거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굿컴퍼니(우량 사업 부문)와 배드컴퍼니(부실 사업 부문)를 나누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은 심지어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모·자회사 동시 상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우주 개발 업체 스페이스X를 상장할 것이란 설이 나오고 있지만, 기존 상장사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지분 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 스페이스X 상장이 테슬라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망 사업을 물적분할한 뒤 상장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내년 1월 상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LG화학에 대해 사실상의 매도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주요 자회사들의 핵심사업부 물적분할에 따른 상장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서 “지주회사 목표주가에 프리미엄을 적용하기 어려운 구간”이라고 분석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 우리나라처럼 기업 분할·재상장을 추진한다면 천문학적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지배구조 하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논한다는 것이 기가 차다”고 꼬집었다.
#반복되는 주주 피해 막아야
주요 기업의 물적분할 및 상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한국 기업계에도 주주들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요 계열사 상장을 위해 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현상이 반복되는 만큼, 규제를 통해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경영 능력에 물음표가 붙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지주회사나 주요 상장사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오너 일가 입장에서 유리하면 하락을 방치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며 “승계가 끝났더라도 다음 승계를 위해 주요 상장사 시가총액이 적은 것이 (오너 입장에서) 낫다.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물적분할을 통해 핵심사업을 떼어내는 풍토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오너 일가가 수십억 원대 급여를 받아 가려면, 주가가 몇 퍼센트 올라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제한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물적분할 요건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반대 의견을 표명한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도 물적분할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이나 우리나라 환경상 특별결의라고 해도 딱히 어렵지 않다. 주총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만 찬성하면 된다.
이와 함께 상장사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현재는 자금 조달이 수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적분할 및 재상장을 제외하면 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뿐이다. 그러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면 주가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11월 29일에도 두산중공업이 1조 원대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13.67% 폭락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 벤처캐피탈 시장은 정부 지원 덕에 꽤 성장했는데, 상장 이후의 자금 조달은 아무 지원책이 없어 오히려 더 까다롭다”면서 “기업가치 1조 원의 스타트업을 만들기는 쉬운데, 시가총액 5000억 원의 상장사는 만들기 어렵다는 핀잔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와 달리 대기업도 계속 추가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상장사 유동성을 지원하는 금융기관 설립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