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전 결승·바둑리그 연패로 커진 우려 한방에 해결…바둑계 “3년은 전성시대 지속될 것”
최종국에서 백을 든 최정은 중반까지 불리했으나 중앙 전투에서 나온 위즈잉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역전에 성공했으며, 이후 하변 결정타로 승세를 굳혔다. 이날 대국에서 최정 9단이 승리하며 두 사람의 상대 전적은 19승 19패로 타이를 이뤘다. 이번 우승으로 최정은 2019년 제2회 대회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오청원배 정상에 섰다. 오청원배는 출범 첫해인 2018년엔 김채영 6단, 작년 3회 대회에선 중국의 신예 저우홍위 6단이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위즈잉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번 우승은 다른 때보다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기쁘다.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많아 힘을 낼 수 있었다. 최근 여자국수전 결승과 바둑리그에서 리듬을 잃기도 하고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특히 위즈잉과의 결승1국은 많이 좋았었는데 마지막에 역전패를 당하면서 충격이 좀 있었다. 속으로 ‘어떻게 하지?’ 했는데 곁에서 많이들 도와주셔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실 오청원배를 앞둔 최정의 컨디션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대전적 24승 2패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던 오유진 8단을 상대로 한 여자국수전 결승에서 1-2로 패한 것이 아팠다. 7년 연속 한국 여자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정이 국내 여자기전 결승에서 진 것은 2011년 제5회 여류기성전에서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패한 후 10년 만이다. 게다가 바둑리그에선 한상훈, 김지석 9단에게 거푸 패하는 등 연패 분위기 속에 결승에 나서면서 불안한 그림자를 던졌다.
그런 이유로 결승1국에서 위즈잉에게 역전패를 당하자 일각에서는 “스물다섯을 넘긴(1996년생) 최정에게도 이제 에이징 커브가 찾아온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2, 3국 승리로 우려는 우려로 끝났지만.
실제 최정은 오유진, 조승아 등 다른 한국 기사들이 부진했던 이번 대회에서 한국 기사로는 유일하게 4강에 오른 것은 물론 우승컵까지 품어 위기설을 일축시켰다. 최정은 16강전에서 루민취안 6단을 꺾은 것을 시작으로 저우홍위 6단, 팡뤄시 4단, 위즈잉 등 중국 여자바둑의 주력들을 줄줄이 꺾어 세계 최강임을 실력으로 증명해보였다.
최정은 유투브 박지은TV와의 인터뷰에서 “개인 PT를 주 2회씩 6개월 넘게 꾸준히 받고 있고, 가까운 청계천을 자주 뛰며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엔 고기를 먹으면 부담이 느껴져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 비빔밥을 자주 먹는다”며 최상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신경 쓰고 있음을 밝혔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여자 기사들의 경우 당일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한두 판 결과로 대세를 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최정은 ‘바둑리그 유일의 여자기사’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면서 “국내는 김은지, 김민서, 정유진, 중국은 저우홍위, 팡뤄시 등 신예들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지만 앞으로도 최소 3년은 ‘최정 시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최정의 오청원배 우승은 올해 치열했던 한중대결의 성공적 마침표이기도 했다. 한국 바둑은 올 들어 2월 신민준 9단의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을 시작으로 9월 신진서 9단의 춘란배 우승, 11월 박정환 9단의 삼성화재배를 우승했다. 또 단체전인 농심신라면배도 우승컵을 되찾아왔다. 여기에 다가올 응씨배와 LG배 결승에서도 신진서 9단이 진출해 있어 2022년에도 중국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바둑협회가 주최하는 제4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의 우승상금은 50만 위안(약 9300만 원), 준우승상금은 20만 위안(약 3700만 원)이다.
[승부처 돋보기] 완력으로 역전 발판 마련
제4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3번기 최종국 ●위즈잉 6단 ○최정 9단, 244수끝, 백 불계승
장면도1(흑의 올바른 공격은?)
본격적인 중반. 실리는 비슷하지만 중앙 백이 엷은 형태여서 그만큼 백이 부담스러운 국면이다. 흑1, 백2로 중앙 백은 눈 모양이 없는 형태. 여기서 흑의 공격 방법이 문제다.
실전진행1(흑, 방향착오)
위즈잉은 흑1로 붙여 공격을 개시했는데 이것이 좋지 않았다. 흑3에 백4로 이 백은 더 이상 공격이 되지 않는 돌. 할 수 없이 5로 손을 돌렸지만 백6으로 이득을 본 후, 백8로 두텁게 막아서는 흑이 얻은 게 없는 진행이다.
참고도1(흑의 최선)
흑은 1로 갈라 중앙 백과 좌변 백의 연결을 갈라놓는 게 좋았다. 양쪽 모두 죽을 돌은 아니지만 흑은 공격의 대가로 약간의 이득만 올려도 결승점을 올릴 수 있었다.
장면도2(백, 역전의 시작)
‘소녀 장사’라 불릴 정도로 완력이 센 최정이 백1로 붙여 역전의 실마리를 구한 장면. 여기서 흑의 최선을 먼저 밝히면 2의 연결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실전진행2(흑의 패착)
백1 응수타진에 위즈잉은 흑2로 받았는데 이것이 패착이 됐다. 흑이 2·4로 이삭을 줍는 사이 백은 3·5로 하변 차단에 성공한다. 결국 이 흑이 공격당하면서 최정의 대회 두 번째 우승이 결정됐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