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직장 폐쇄, 1년 후 리턴 도모, 어머니 직접 봉양 위해 ‘100만 달러’ 키움행 결심
키움은 이번 겨울 푸이그를 1순위 영입 후보로 점찍고 계약에 공을 들였다. 지난 11월 고형욱 단장과 허승필 운영팀장이 도미니카로 출국해 윈터리그에서 뛰고 있던 푸이그를 직접 만났다. 출국 전 충분한 교감을 나눴고, 현지에서 몸 상태에 이상에 없음을 확인한 뒤 일사천리로 계약했다. 그 결과 역대 외국인 타자 중 최정상급 경력과 이름값을 자랑하는 푸이그가 KBO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악동 푸이그는 어떻게 한국에 왔나
푸이그는 2013년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그해 타율 0.319, 홈런 19개, 42타점을 올려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2위에 올랐다. 그해 처음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에게 더그아웃에서 유독 친근함을 표현해 한국 팬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빅리그 7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77, 홈런 132개, 415타점. 다혈질적인 성격과 돌발행동 등 경기 외적인 변수가 단점으로 꼽히지만, 키움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쉬운 협상은 아니었다. KBO리그 규약은 새로 영입하는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연봉과 인센티브, 이적료, 계약금을 포함해 총액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넘을 수 없다. 2019년 연봉 970만 달러(약 115억 원)를 받았던 푸이그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금액이다. 실제로 키움은 지난해 테일러 모터를 방출한 뒤 푸이그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선수 의지가 강해 영입하지 못했다.
이번 겨울에는 달랐다. 상황이 키움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메이저리그 시절 동료와 갈등이 잦고 온갖 기행으로 유명했던 푸이그는 2019년을 끝으로 빅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경기력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했고, 키움도 이런 장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최근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한 뒤 빅리그 유턴에 성공한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 크리스 플렉센(시애틀 매리너스), 브룩스 레일리(탬파베이 레이스) 등의 사례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푸이그가 한국에서 1년간 모범적인 모습으로 풀타임을 소화한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그를 향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메이저리그 30개 구단과 선수노동조합이 새로운 노사단체협약(CBA) 개정 조건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전 구단 행정 업무가 마비되는 직장 폐쇄에 돌입했다. 빅리그 구단과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고, 스프링캠프는 물론 내년 시즌 개막마저 불투명해지자 푸이그는 마음을 돌려 키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거포 코너 외야수가 절실했던 키움은 실력이 검증된 외야수 푸이그의 합류에 잔뜩 고무됐다.
#푸이그는 어떤 선수인가
1990년 아마추어 야구 강국 쿠바에서 태어난 푸이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위해 2012년 조국을 탈출했다. 미국과 쿠바가 팽팽한 정치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시절이라 당시 쿠바의 야구 천재들은 대부분 제3국 망명을 거쳐 빅리그 진출을 노려야 했다. 푸이그 역시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 목숨을 건 네 번의 시도를 거쳤다. 결국 마약 밀반입에 사용되는 보트를 타고 멕시코에 상륙한 뒤 2012년 6월 다저스와 7년 4200만 달러에 계약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신세를 진 멕시코 밀수조직 로스 세타스의 협박을 받아 연봉 일부를 상납하고 살해 위협을 받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데뷔 첫 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푸이그는 근육질의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야생마 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다만 독단적인 행동으로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다저스 시절 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와 계속 마찰을 빚었다. 당시 다저스 감독이 "푸이그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 시간이 팀의 나머지 선수에게 할애한 시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푸이그가 경쟁력을 갖추고도 2019년을 끝으로 빅리그 무대에 서지 못한 이유다.
지난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외면받은 푸이그는 올해 멕시칸리그에서 뛰면서 타율 0.312, 홈런 10개, OPS(출루율+장타율) 0.926을 기록해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푸이그의 에이전트는 경기 외적인 방해 요소와 관련해 "정신적 문제를 약물치료로 해결했다"고 어필했다. 고형욱 단장 역시 "몇 차례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인격적으로도 많이 성숙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선수가 큰 무대에 대한 도전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기량 외적으로도 우리 선수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푸이그 자신도 KBO리그 생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키움 구단을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로부터 수천 개의 메시지를 받았다.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며 "다저스 시절 류현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많이 웃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류현진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들이 무척 좋다는 걸 알고 있다. 야구에 관한 열정을 한국 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푸이그는 또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KBO리그행을 확정한 배경의 일부라고도 털어놨다. 그는 "내 결정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지난해 예상보다 더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심각해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며 "내년 한국에 들어갈 때는 어머니와 함께 갈 예정이다. 어머니를 직접 돌보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키움의 경기를 봤다. 앞으로 함께할 동료들의 플레이를 보고 좋은 팀이라고 느꼈다"며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역할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팀 우승을 위해 내가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