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하주석에 1위표 누가 왜?…‘후보 기준 높여 사표 양산 막자’ 목소리
올해 KBO리그 MVP와 신인왕 투표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결과가 나왔다. 야구계 안팎에서 "MVP와 신인왕 후보 기준을 다시 예전처럼 높여야 한다", "비공개 투표를 공개 투표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정도다.
MVP 미란다와 신인왕 이의리는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각각 2위에 오른 이정후와 최준용도 많은 득표를 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가 공개된 뒤 그 내용을 놓고 본격적으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득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부 선수가 MVP 혹은 신인왕에 오르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 취재기자 11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MVP는 1위부터 5위(1위 8점, 2위 4점, 3위 3점, 4위 2점, 5위 1점)까지, 신인상은 1위부터 3위(1위 5점, 2위 3점, 3위 1점)까지 투표인단 자율로 순위를 정해 표를 던졌다. 후보는 광범위하다. MVP는 규정이닝 또는 규정타석을 채우거나 개인 타이틀 부문별 10위 안에 든 선수가 모두 투표 대상이다. 신인상은 최근 5년 이내 입단한 선수 중 프로에서 30이닝 혹은 60타석을 넘기지 않은 선수 모두가 자동으로 후보에 올랐다.
그 결과 총 33명의 선수가 1~5위 표 가운데 한 표 이상을 받았다. 1위 표를 획득한 선수는 총 14명. 이 중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한 불펜 투수 김태훈(SSG)과 타율 0.272로 평범한 성적을 올린 하주석(한화)이 1위 표를 한 장씩 받았다. 공동 다승왕 에릭 요키시(키움)과 타점왕 양의지(NC)도 받지 못한 1위 표를 얻은 거다. 또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정우람(한화), 규정타석에 오른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낮은 박병호(키움) 등도 표를 얻었다. 오랜 기간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해온 이들이지만, 올해 성적이 MVP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누가 어떤 의도로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득표는 선수들 자신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후보가 적을 수밖에 없는 신인상 투표 결과는 더 심했다. 올 시즌 1군 14타석을 소화한 박지훈(두산)이 1위 표 2장을 받아 1군 96경기를 소화한 팀 동료 안재석(3위 표 7장)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올 시즌 1경기에서 2이닝을 던져 5실점한 구준범(삼성)도 1위 표를 한 장 챙겼다. 이뿐만 아니다. 1군에서 딱 1타석에 선 내야수 고명성(KT), 5경기에 출전한 포수 권혁경(KIA)도 각각 2위 표를 한 장씩 받았다. 투표에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게 당연하다 해도, 프로야구는 기본적으로 성적과 팀 공헌도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분야다. "상식선을 넘어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일부에선 "MLB처럼 개개인의 투표 결과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MLB에서는 명예의 전당 헌액과 사이영상 선정 등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진행하는 주요 투표 결과를 모두 공개하는 게 관례다. 그렉 매덕스가 2014년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 단 한 표가 모자라 만장일치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때, 유일하게 다른 선택을 한 기자의 이름과 그 이유가 세상에 공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투표의 익명성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 역시 "최소한 투표인단을 축소하거나 후보 기준을 강화해 지나친 '사표' 양산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수년째 반복되는 '장난 투표'에 야구 관계자 대부분이 혀를 차는 상황이다. KBO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조만간 야구기자회 총회 때 의견을 수렴하려고 한다. 투표 자격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투표 방식은 기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