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바둑계의 희망, 덕영배 아마대왕전 들여다보니…

39년간 현 이재윤 대한바둑협회장이 개인 후원 ‘유일무이’…올해 최강부 임지혁, 시니어·여성부 최호철 우승

[일요신문] 지난 2년 동안 아마추어 바둑계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전국적으로 300여 개를 헤아리던 바둑대회가 올스톱됐고 많은 바둑인들이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11월 즈음에는 ‘위드 코로나’에 대한 기대로 잠시 설렌 적도 있었지만, 최근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예정됐던 대회들이 줄줄이 축소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11일과 12일 대구에서는 제39회 덕영배 아마대왕전이 예정대로 열렸다. 아마바둑 대회로는 가장 긴 연조를 자랑하는 아마대왕전은 국내 유일의 개인 후원 대회이기도 하다. 40년 가까이 후원하고 있는 이재윤 덕영치과 원장은 작년 아예 대한바둑협회 회장을 맡아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봉사에 나섰다.

이틀간 제39회 덕영배 아마대왕전을 치른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같은 날 예정돼 있던 전남지사배 전국바둑대회가 연기된 가운데 아마대왕전은 괜찮을까 싶었지만 예정대로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 백신접종 2회 대상자와 48시간 내 PCR 검사를 받은 자에 한하며 또 코로나19 방역 관계로 선발전을 치르지 않고 초청 인원도 64명에서 32명으로 축소했다.

개막식에서 심판 양상국 9단은 “39년을 맞는 대회라는 것은 프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통인데 아마추어 바둑대회에서 보게 돼 놀랍다”면서 “근 40년을 한결같이 후원해준 주최 측에 후배들을 대신해서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형 스위스리그 4라운드로 진행되는 아마대왕전의 전국 최강부 연구지원비는 1000만 원. 성적에 따라 본선 참가자 전원에게 연구지원비를 준다. 1억 원 가까운 대회 운영비에서 연구지원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말 이틀 동안 열리는 대회치고는 상당히 큰 금액이다.

전국 최강부 결승전에서 임지혁 선수(왼쪽)가 우승했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올해 전국 최강부에서는 임지혁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임지혁은 올해 내셔널리그 서울 에코 소속으로 활약했고 현재 아마랭킹 6위다. 임지혁은 “전국대회 마지막 우승이 2년 전이다. 올해도 그냥 흘려보내는가 싶었는데 마지막에 가장 권위 있는 대회에서 우승해 정말 기쁘다. 1000만 원의 연구지원비를 발판 삼아 프로에 입단해 어릴 때부터 키워 온 꿈을 이루고 싶다”고 우승소감을 말했다.

8명의 40세 이상 시니어 선수들과 국내 여자바둑 상위 랭커 8명이 겨룬 시니어·여성부에서는 시니어 랭킹1위 최호철 선수가 노장 박성균 선수를 2집반 차이로 따돌리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시니어·여성부 우승을 차지한 시니어 랭킹1위 최호철 선수.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4라운드 변형 스위스리그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최호철은 이루비, 김이슬, 이철주 선수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었다.

최호철은 “먼저 내년이 덕영배 40회째인데 40년 동안 꾸준히 후원해주신 이재윤 협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덕영배 아마대왕전 첫 우승이다. 꼭 한번 우승해보고 싶은 대회였지만 그동안 인연이 없었는데 그래서 다른 대회에서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아마추어 바둑계는 프로 입단의 산실 역할을 한다. 매년 상위 몇 명을 프로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한국바둑의 동량들을 배출해 프로바둑의 근간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바둑 관계자는 “최근 막을 내린 제14회 노사초배 오픈 최강전에서 아마추어 홍세영 선수와 홍근영 선수가 무수한 프로들의 틈을 비집고 각각 준우승과 4강에 올라 화제를 모았는데 그 근원에는 덕영배 아마대왕전 같은 대회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아마바둑대회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