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보석 발견한 두산 이번엔 강진성…삼성은 강민호 재계약 앞두고 포수 김재성 선택
2년 전까지만 해도 이적한 FA의 나이와 경력, 재자격 여부, 몸값 등에 관계없이 직전 시즌 연봉의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과 팀 내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원 소속구단에 양도하는 게 원칙이었다. 반면 2020시즌 이후 FA를 신청한 선수들부터는 'FA 등급제'를 적용받았다. 신규 FA들은 구단 내 연봉 순위와 리그 전체 연봉 순위에 따라 A~C 등급으로 나뉘고, FA 자격을 다시 얻은 선수는 무조건 B등급 이하로 분류된다. A등급 보상선수 기준은 기존과 같지만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원 소속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를 25명까지 늘릴 수 있다. C등급 선수는 보상선수 없이 이적할 수 있다.
물론 선수 없이 '돈'으로만 보상을 받는 방법도 있다. A등급 선수가 이적했다면 그해 연봉 300%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보상금만을 선택하는 팀은 거의 없다. 주요 전력이 빠져나간 팀은 대부분 보상선수 지명을 통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이적한 보상선수가 의외의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어서다.
#박건우 보상 선수로 강진성 지명한 두산
2021년에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잭팟'의 희망을 품고 보상선수를 선택했다. 주전 외야수 박건우를 NC로 보낸 두산은 지난 22일 내야수 강진성(28)을 보상 선수로 지명했다. 강진성은 2012년 KBO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33순위로 NC에 입단한 오른손 타자다. 강광회 KBO 심판위원의 아들로도 주목받았다. 입단 후 오랜 기간 2군에 머물렀지만, 2020년 마침내 1군 붙박이 타자로 도약했다. 1군 통산 성적은 362경기 타율 0.273(995타수 272안타), 홈런 22개, 128타점, 124득점. 두산은 "내야는 물론 양쪽 코너 외야 수비가 가능한 강진성이 타석에서도 클러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산은 그동안 끊임없이 내부 FA를 다른 팀으로 유출했지만, 그들 대신 영입한 보상선수 덕을 톡톡히 본 구단이다. 실제로 두산은 2020년 내야수 최주환과 오재일을 각각 SSG 랜더스와 삼성으로 보내면서 내야수 강승호와 박계범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는데, 이들이 2021년 팀의 새로운 주전 키스톤 콤비로 도약했다.
2013년 LG가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지명했던 강승호는 SSG에서 음주사고로 구단 자체 징계를 받고 출전 정지 징계를 소화하던 중이라 지명 당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최주환의 전력 공백을 잘 메우고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면서 두산이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25세 젊은 내야수인 박계범은 유격수, 2루수, 3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삼성의 쟁쟁한 주전 내야수 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쳤는데, 보상선수로 이적 후 한 시즌 만에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아 '최고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뿐 아니다. 두산이 2019년 포수 양의지를 NC로 보내면서 보상선수로 데려온 투수 이형범도 그해 통합 우승에 큰 힘이 됐다. NC에서 세 시즌 동안 39경기에 나서 단 2승을 올리는 데 그쳤던 이형범은 두산에 오자마자 불펜의 핵심 역할을 해냈다. 기존 불펜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던 두산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고, 결국 첫 시즌 중반 이후 마무리 투수 역할까지 맡았다. 2019년 한 시즌에만 이전 세 시즌 경기 수의 2배에 가까운 67경기에 출전해 61이닝을 소화했다. 성적은 6승 3패 19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2.66. 양의지를 보내고 상실감이 컸던 두산으로서는 기대를 뛰어 넘고도 남은 소득이었다. 물론 이형범 본인에게도 두산 이적은 천금 같은 기회였다.
#보상선수 신화도, 드라마도 두산이 썼다
가장 성공한 FA 보상선수 사례로 꼽히는 이원석(삼성)도 두산에서 야구 인생을 새로 썼다.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뛴 이원석은 2008년 두산 출신 FA 홍성흔이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한 뒤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은 내야 선수층이 두터운 팀이라 당시만 해도 이원석이 금세 자리를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부터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원석은 2016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27억 원에 계약했다. 역대 보상선수 출신 FA 중 최고액 계약. 이어 2020년 말에는 다시 삼성과 2+1년 최대 20억 원에 사인해 두 번의 FA 다년계약에 성공했다.
두산은 보상선수 인연으로 기가 막힌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투수 정재훈은 2003년 입단한 뒤 마무리 투수와 불펜승리조, 선발 투수를 두루 맡으면서 12년간 마당쇠 역할을 했다. 그러나 두산이 2015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FA 투수 장원준의 보상선수로 지명돼 갑작스럽게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두산 관계자는 "롯데가 불펜 투수가 아닌 다른 보직 선수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 고민 끝에 보호선수에서 제외했는데, 예상 외로 정재훈을 뽑았다는 소식에 모두 낙심했다"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두산에 유독 애정이 많았던 정재훈 역시 좌절이 컸던 것은 물론이다. 하필이면 정재훈이 자리를 비운 그해,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기에 더 그랬다.
정재훈은 이적 후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두산이 2015시즌 종료 후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정재훈을 지명해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롯데에서 주로 2군에 머물렀던 정재훈은 정든 친정팀 유니폼을 입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6년 셋업맨으로 활약하면서 46경기에서 23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해 든든한 허리 역할을 했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8월 LG와 경기 도중 팔에 타구를 맞아 불의의 부상을 당했고, 끝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은 게 아쉬움이다. 두산 선수들은 모두 모자에 정재훈의 등번호 '41'을 새기고 경기에 나섰다. 두산은 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정재훈에게 우승 반지를 추가 제작해 선물했다. 정재훈은 이후 마운드에 복귀하지 못하고 은퇴했지만, 투수 코치로 여전히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NC 명단에서 발견한 뜻밖의 수확
이렇게 꾸준히 보상선수 덕을 본 두산이지만, 이번만큼은 선택지가 많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군 보류 전략을 쓴 NC가 유망주 선수를 대거 '자동으로' 보호했기 때문이다. 20인 보호선수와 보상선수에는 군 보류선수, 당해 연도 FA, 외국인선수, 당해 연도 FA 보상 이적선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NC는 내야수 최정원과 투수 배민서가 상무에 입대한 뒤 박건우와 계약을 마무리했고, 지난 9월 군 복무를 마친 내야수 서호철과 오영수를 지난 시즌 막바지에 활용하지 않고 여전히 군 보류 선수로 묶어놨다. 또 2020년 입대한 투수 배재환, 최성영과 외야수 김성욱, 포수 김형준도 군 보류 선수로 묶여 있다.
하지만 팀 타선에서 쏠쏠한 활약을 했던 오른손 타자 강진성은 미처 보호하지 못했다. 두산에 양석환이라는 확실한 1루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강진성을 보호선수로 묶지 않았는데, 정작 두산은 NC가 보낸 지명 가능 선수 명단에서 강진성의 이름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두산은 박계범을 지명할 때부터 "보강해야 할 포지션을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최고 기량을 가진 '21번째 선수'를 뽑는다"는 전략을 썼고, 강진성이 바로 그런 카드였다. 강진성은 2021년 잠실구장에서 타율 0.326을 기록하면서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두산 관계자는 "박건우의 공백을 곧바로 메울 수는 없겠지만, 강진성은 1군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며 "최근 2년간 1루수로만 뛰었지만, 코너 외야수도 맡을 수 있다. 앞으로 주전 우익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1루수 양석환의 백업 선수로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팀 타선의 무게가 왼손 타자에 쏠려 있다. 장타력을 갖춘 오른손 타자가 필요했는데 강진성이 그런 유형"이라며 "선발 출전하지 않더라도 오른손 대타 요원으로 충분히 내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선택은 또 '포수' 김재성
삼성은 LG로 떠난 외야수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우투좌타 포수 김재성(25)을 지명했다. 김재성은 2015년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특급 유망주였지만 가능성을 펼쳐보지 못하고 LG를 떠나게 됐다. 1군 성적은 70경기 타율 0.132(76타수 10안타), 홈런 1개, 4타점. 올해 퓨처스(2군)리그에 9경기에 출전해 19타수 8안타(타율 0.421)를 기록했다. 기량을 충분히 점치기 어려운 성적이지만, 삼성은 김재성의 잠재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삼성 관계자는 "김재성은 수비가 뛰어난 포수다. 경험을 쌓으면 1군에서 활약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며 "배트 스피드가 빨라 타격에서도 장타 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의 김재성 지명이 더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진 이유는 또 한 명의 '포수'를 충원해서다. 삼성은 2021년 골든글러브를 받은 내부 FA 포수 강민호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NC와 트레이드를 통해 투수 심창민과 포수 김응민을 보내고 1군 주전급 포수 김태군을 영입했다. 이로 인해 "삼성이 강민호와 잔류 계약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구단은 "강민호 협상과는 별개다. 2022년 시즌에도 함께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FA 보상선수마저 다시 포수를 선택하자 "강민호와 협상에 이상 기류가 생겨 작별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삼성은 이와 관련해서도 "우리 팀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능 있는 포수들을 모으고 있다. 현재 전력은 물론이고, 미래를 위해서라도 젊고 재능 있는 포수가 필요하다"며 "좋은 선수가 보여서 선수층 강화 차원에서 영입했을 뿐, (이번 영입 역시) 강민호 협상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