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몸담은 NC 2군 감독 면접 탈락 후 LG행…“로망이던 줄무늬 유니폼 입을 줄 몰랐다”
2013년 NC 유니폼을 입고 ‘인생은 이호준처럼’을 완성시킨 그는 선수 생활 은퇴 후 1년간 일본 프로야구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돌아와 2019시즌부터 1군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이후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타선을 구축, 2020시즌 NC의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은 2020년이 처음. 그만큼 감동적이었고, 여운도 깊었다. 하지만 야구에서 영원한 건 없다. ‘호부지’로 NC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이 코치는 2021 시즌을 끝으로 NC와 작별을 고했다. 그 과정 속에서 이런저런 추측과 소문이 나돌았다. 이 코치를 직접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언제부터 잠실야구장으로 출근한 건가.
“12월 6일부터였다. 비활동 기간이지만 LG 선수들 얼굴을 빨리 보고 싶었다. 재활 훈련을 하거나 일찌감치 개인 훈련을 시작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인사도 나누고 어색한 분위기도 지울 겸 해서 출근했다. 곧 2군 선수들이 있는 이천으로 출퇴근할 계획도 갖고 있다.”
―LG 코치로 선수들을 만난 소감이 궁금하다.
“오늘까지 출근한 지 3일째인데(12월 9일 인터뷰) 선수들이 유니폼 입을 때랑 모자 벗고 사복 입을 때랑 완전 다르더라. 퇴근하면서 김대유랑 마주쳤는데 처음엔 김대유인 줄 몰라봤다. 나도 모르게 대유한테 “너 진짜 잘생겼구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울 물이 좋은가. 선수들 얼굴이 뽀얀 게 귀티가 난다(웃음).”
―창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과정에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NC가 아닌 다른 팀 코치는 처음인데 어떤 감정이 드나.
“솔직히 설레는 마음이 크다. 야구 하면서 줄무늬 유니폼과는 인연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수라면 줄무늬 유니폼에 대한 로망이 있다. 체형이 더 멋있어 보이고 다리도 길어 보이는 등 줄무늬 유니폼이 갖는 아우라가 존재한다. 평생 못 입을 줄 알았던 그 유니폼을 코치로 입게 된 게 신기하다.”
―LG와 코치 계약 후 선수 명단을 확인했을 텐데 팀을 이끌 중심 선수를 꼽는다면.
“나름 나 혼자 라인업을 구성해봤다. 분명한 건 그 라인업에서 김현수를 빠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웃음). 현재 김현수가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라 LG에 남을 수도, 또는 LG를 떠날 수도 있겠지만(12월 17일 김현수, LG와 4+2년 최대 115억 원에 계약 체결) ‘에이 설마’하는 마음으로 명단을 짰다.”
―LG는 2021시즌 타격 부문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나타냈다. NC 코치 입장에서 LG 타선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봤나.
“LG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은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이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공격적으로 나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반대였다. 초구를 치고 안 치고 여부는 선수의 몫이다. 그렇다고 타석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이기는 경기를 하기 어렵다. 타석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려면 강심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자신을 믿고 가야 한다. 타석에서의 소극적인 부분들이 선수들을 위축시킨 게 아닌가 싶다. LG 선수들의 경기력을 봤을 때 기술적인 요소나 개인 기량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3년간 타격 코치로 활약하며 타격 코치의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선수들이 타격폼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런 수정은 마무리캠프 때 수정했다가 스프링캠프에서 보완 후 시범 경기를 통해 테스트해본 다음 정규시즌에 돌입하는 게 정석이다. 거기서 자신의 타격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1년 농사는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때는 선수들이 타격폼과 싸우지 말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끄는 편이다. 폼만 바꾸다 한 시즌을 끝내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타격 코치는 대기 타석에 있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선 후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경기를 풀어가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전 상대 투수를 분석하고 미리 경기 장면을 그린 다음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준비하는 걸 돕는 게 타격 코치의 역할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역할을 잘 해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자는 투수와 싸우는 건가, 아니면 포수와 싸우는 건가.
“최근의 경향을 보면 포수 사인에 고개를 흔드는 투수가 많지 않다. 특히 베테랑 포수가 앉아 있을수록 투수는 포수의 사인에 맡긴다. 그렇다면 타자는 포수를 연구해야 한다. 그 포수가 뭘 선호하는지, 승부가 빠른지 아닌지, 투 스리 볼 카운트에서 마지막 공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결국 투수보단 포수와 싸우는 셈이다. 선수 시절의 나는 특히 포수 양의지한테 약했다. 나보다 한 수가 아닌 두 수 위의 볼배합을 선보인다. 양의지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면 서로 치열하게 머리싸움 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많은 야구팬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NC에서 나오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3년간 타격 코치를 하면서 내 자신한테 물음표를 가졌다. 내가 이 팀에, 선수들한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언론에서는 ‘호준 매직’이라며 칭찬을 보내지만 나로선 해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지?’ 싶더라. 환경의 변화를 주고 싶어 타격 코치에서 물러나 2군에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구단에 2군 쪽 보직을 요청했는데 단장님이 2군 감독 후보에 내가 포함돼 있다며 면접을 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면접을 봤다. 2군 감독 면접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지도 철학을 자세히 설명했다.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육성해나갈지에 대한 계획들이었다. 나름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다. 2군을 맡게 된다면 잘할 자신도 있었다. 면접 이후 발표 나기까지 3주를 기다렸는데 그 사이에 '이호준이 NC를 떠난다', '마무리 캠프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팀으로 옮긴다' 등등의 기사들이 나왔다. 내년을 준비하는 마무리 캠프에 내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 3군 선수들을 지도하고 싶었는데 구단에서 만류해 그냥 집에서 발표나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다른 팀과도 접촉을 했었나.
“그렇지 않았다. 집에 있는 동안 LG 측 연락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 NC를 그만두지 않았고, 팀의 결정을 기다리는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결정 나면 알려 달라고 말씀하시더라. LG 외에 SSG 랜더스, KIA 타이거즈 등 다른 팀의 러브콜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수도권에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 참고로 가족들이 사는 집은 인천이 아닌 서울이다.”
―그럼 3주 후 NC 구단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가.
“임선남 단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같이 갈 수 없게 돼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담담하게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30분가량 ‘멘붕’이 왔다. 솔직히 내가 안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충격이 더 컸다. 선수 생활, 코치 생활 포함해 8년이나 있던 팀인데 내가 이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게 무엇인지,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어떤 건지, 내가 왜 2군 감독으로 선택받지 못한 건지 등등 궁금했다. 나중에 단장님께 다시 물어봤다. 내가 뽑히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때 단장님이 팀 방향성에 맞는 지도자를 찾았는데 나보단 다른 분이 그에 적합했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이후 NC에서 2군 감독으로 공필성 전 두산 코치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지도자로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로선 그 자리에 누가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왜 내가 안 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직도 마산의 집을 정리하지 못했다. 겨울에 가서 선수들 훈련 도우려고 식자재를 집으로 배달시켜 놓았을 정도인데….”
―그렇다면 이후 LG랑은 어떻게 접촉한 건가.
“처음 전화해주셨던 LG 구단 관계자 분이 NC로부터 결과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하신 터라 전화를 드려야만 했다. NC랑 잘 안 됐다고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으니까 바로 차명석 단장님이 전화를 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 차 단장님 만나 계약서에 사인한 것이다.”
―1군 타격 코치보다는 2군에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다시 타격 코치로 돌아온 셈이다.
“같은 팀이 아닌 새로운 팀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예 현장을 떠나 방송 해설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내가 만류했다. 이렇게 현장을 떠나면 도망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부딪쳐 이겨내라고 조언했다. 아내의 말이 공감되더라. 새로운 팀, 새로운 코칭스태프, 선수들 틈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동욱 감독과 의견 충돌을 빚은 적이 있었나.
“감독과 코치의 야구관이 항상 맞아 떨어질 수는 없다. 코치는 감독과 다른 의견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강하게 내 의견을 피력하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감독님이 하신다. 타격 코치를 그만두려 할 때 감독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어떤 기사에 이호준은 일본 야구, 감독님은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그 기사 보고 감독님이 오해하실 것 같아 먼저 말씀 드렸다. 그 기사와 나는 관계가 없고 인터뷰한 적이 없으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감독님도 잘 받아주셨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LG와 코치 계약을 맺고 제일 먼저 전화 드린 분이 이동욱 감독님이다. 이후 임선남 단장님한테도 전화 드렸다. 지나고 보니 결국엔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김경문 감독님, 이동욱 감독님 밑에서 지도자 수업 잘 받았고, NC를 통해 야구의 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NC 다이노스는 2021시즌 종료 후 유영준 2군 감독을 비롯해 이호준 타격 코치, 김민호 타격 코치, 한문연 배터리 코치, 지연규 투수 코치, 전준호 작전 코치, 이대환 불펜 코치 등과 이별을 결정했다. 코치들뿐만 아니다. 창단 멤버들인 임창민과 김진성, 내야수 지석훈이 방출 칼바람을 맞았고, 은퇴 후 NC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던 모창민은 이호준 코치와 함께 LG로 팀을 옮겼다.
이호준 코치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좋은 코치란 어떤 코치를 의미하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 코치는 “선수들 돈 많이 벌게 해주는 코치가 좋은 코치”라고 답했다. 그는 “그 답 안에 많은 의미가 포함됐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