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상환 우선” “일 그만두지 말라” 등 현실적 조언…57쪽 책자 중고사이트서 30만원에 거래되기도
당첨금 100억 원,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숫자다. 예컨대 연수입 2억 5000만 원의 생활을 40년간 할 수 있으며, 호화스러운 유람선 퀸엘리자베스호를 타고 세계 일주도 120회 이상 가능하다. 100억 원이 당첨되면 ‘아무 불편함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운 듯하다.
최근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는 “고액의 복권 당첨자만 읽을 수 있는 책자가 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제목은 ‘그날부터 읽는 책, 갑작스러운 행운에 당황하지 않기 위하여’로, 1000만 엔(약 1억 원) 이상의 당첨자에게 당첨금 지급 시 함께 전달된다. 무료로 제공되는 책자이지만, 희소성 때문에 인터넷 중고품 사이트에서는 3만~4만 엔에 거래되기도 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날부터 읽는 책은 복권 당첨금이 크게 오른 2001년부터 배포됐다. 고액 당첨금으로 인해 사기를 당한다든지, 불행한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예방 차원에서 마련한 조치다. “변호사와 임상심리사, 재무설계사 등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주간포스트는 “이런 책까지 건넬 정도이니, 고액 당첨자 중에는 평탄치 않은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요 내용은 갑자기 큰돈이 생긴 사람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분량은 총 57페이지에 달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 평정심을 찾은 뒤 조심해야 할 것들, 당첨금 용도가 정해진 후 고려사항 등등 이른바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알아둬야 할 주의점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정리한 소책자다.
우선 책자는 “당첨 직후 (본인이) 흥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지금 당신은 이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행동을 해버릴 가능성이 크다”며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도 늦지 않다”라는 충고다.
요행에는 질투와 시샘이 뒤따르기 마련이므로, 인간관계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책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타인에게 당첨 사실을 누설하면 소문날 각오를 하라”고 전했다. 가령, 생면부지의 사람이나 단체로부터 기부를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다.
“당신이 알아둬야 할 것은 인간에게 비밀이란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인간을 불신, 혐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첨 직후 그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단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돈에 인생이 휘둘리고, 결국 심각한 정신부담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고액 복권 당첨자 가운데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책자에 따르면, 당첨자 대부분은 흥분 상태 이후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책자는 “당첨 후 느끼는 불안감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라면서 “냉정해지고 침착해지라”고 계속 타이른다.
실무적인 조언도 실려 있다. 일본에서는 복권 당첨금에 소득세, 주민세가 붙지 않는다. 당첨금이 10억 엔이라면 전액을 통째로 받을 수 있는 것. 다만 세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당첨금 자체에는 세금이 붙지 않지만, 이를 친지와 지인 등에게 선심성으로 나눠주면 증여세가 부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자는 “주택취득자금이나 교육자금, 결혼·육아자금 등 소정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증여에 대해서는 각종 세제 특례가 마련돼 있으니 당첨금을 증여하게 될 경우 현명하게 활용하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파산하지 않기 위한 조언도 눈에 띈다. “당첨에 대해 알릴 사람을 신중하게 골라라” “대출이나 빚 상환을 우선시하라” “그리고 남은 돈으로 당신의 미래를 설계하라” “일은 그만두지 않도록 하라” “재무설계사와 세무사, 때로는 심리상담사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부를 슬기롭게 다스려라” 등이다.
끝으로 책자는 “인생에 있어 복권 당첨은 ‘멋진 행운’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고 강조한다. “복권 당첨으로 경제 상태와 인생 설계가 이전과 달라졌을지 모르나 알아야 할 것은 당신 자신, 당신의 성격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자는 “당첨되더라도 나는 나. 분수를 잃지 않고 ‘목적이 있는 지출’을 하면 충실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모쪼록 “당첨금을 낭비해 파산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일이 없이 손에 쥐어진 행운을 잘 지키라”는 당부다.
수십억 원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큰 행운을 거머쥔 것 같지만, 오히려 당첨 전보다 훨씬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에서는 고액의 복권 당첨금 때문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 오죽하면 ‘복권의 저주’라는 표현마저 생겼다.
1988년 윌리엄 포스트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1620만 달러(약 190억 원) 로또에 당첨됐다. 통장 잔금이 2달러 46센트에 불과하던 빈곤생활에서 단숨에 벗어났다. 그는 당장 집과 비행기부터 샀다. 동생에게는 레스토랑도 차려줬다. 그러나 동생은 유산을 받기 위해 청부업자를 사서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더욱이 여자친구는 “복권 일부 금액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주지 않았다”며 소송까지 걸었다. 갖은 소송에 휘말리고, 투자에도 연속으로 실패한 윌리엄은 당첨 3개월 만에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1993년 인터뷰에서 “다들 복권에 당첨됐을 때의 꿈만 생각할 뿐, 그 뒤 시작될 악몽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파산하고 나서가 더 행복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96년 일리노이 주의 로또 당첨금 2000만 달러(약 237억 원)을 손에 쥔 제프리 댐피어는 정부에게 살해됐다. 애인은 “애초 공범과 함께 현금만 강탈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격양된 제프리가 “나를 쏘든지, 내가 너를 쏘겠다”고 양자택일을 강요했고, 애인은 전자를 택했다는 것. 결국 제프리는 끔찍한 살인의 희생자로 발견됐다.
이러한 비극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2016년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복권 당첨자들에게 조언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우선 주(州)법에서 성명 공표가 의무화되지 않은 경우 익명을 관철하라는 것. 다음은 세무 전문가에게 수령방법에 대해 상담할 것, 직장을 그만두는 등 생활방식을 갑자기 바꾸지 말 것, 마지막으로 쇼핑을 시작하기 전에 빚부터 갚으라고 매체는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