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법무부 관할 다툼 17년째 법제화 제자리…탐정 늘어나는데 법적근거도 주무기관도 부재
#하청의 하청의 하청
서울동부지검 사이버범죄형사부 수사 결과, 피해자의 개인정보는 수원 권선구청 공무원 A 씨와 흥신소 업자들을 거치고 거쳐 단 2시간 만에 이석준에게 전달됐다.
주소를 얻는 과정에 가담한 흥신소는 총 3개 업체였다. 이석준에게 50만 원을 받은 최초의 흥신소가 두 번째 흥신소에 13만 원을 건넸고, 두 번째 흥신소는 다시 세 번째 흥신소에 10만 원을 지불했다. 마지막 흥신소는 단돈 2만 원을 주고 공무원 A 씨로부터 피해자 주소를 샀다. 검찰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중첩한 중개 형태를 통해 흥신소 업자들이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해왔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A 씨는 도로점용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사용되는 차적조회 권한을 악용해 범행에 가담했다. A 씨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2020년 1월쯤부터 약 2년 동안 주소 등 개인정보 1101건을 불법 조회해 흥신소 업자들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매월 200만~300만 원을 받아 지금까지 총 3954만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그동안 수많은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는 뜻이다.
현행법상 흥신소와 탐정사무소 운영은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사업자 등록만 거치면 누구나 탐정업을 할 수 있다. 2020년 8월 탐정 명칭을 영리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문제는 이석준 사건처럼 신용정보법을 넘나들며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다. 탐정이라는 명칭은 누구든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을 규제할 법망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눈앞의 이익에 타인의 안전을 파는 업자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일부 흥신소의 만행에 탐정의 이미지가 땅으로 떨어지자 업계 안팎으로도 탐정업을 법제화해 제대로 관리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탐정은 넘쳐나는데…
음성적인 일을 한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지만, 탐정이 실제 업무에서 맡는 일은 다양하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에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렵거나 놓치는 영역을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사실 관계 확인 및 제공을 한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 힘든 실종자 찾기나 온라인 거래 사기, 계약서 진위 여부 판별 등은 물론이고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를 도와 민·형사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다만, 사생활 조사 등 개인정보보호법·위치정보법을 침해하는 활동은 금지된다.
대한공인탐정협회에 따르면 2021년까지 탐정자격증인 민간조사사(PIA)를 취득한 인원은 7200명이 넘는다. 2020년 8월 기준 4300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자격증과 별개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인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탐정은 매년 늘어나는데 이들을 품을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고, 실제로 누구나 탐정이 되고 있지만 탐정업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주무기관도 부재한 상황이다. 당연히 상시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다 보니 도청이나 위치추적 등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손님을 꿰차도 업계 내 자정작용을 기대하기 힘들다.
탐정이 새로운 직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법제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데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합법 영역에서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는 종사자들 역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탐정업이 제도권에 편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불법행위 처벌 등 관련 사항을 명문화하고 탐정 자격제도를 운용할 주무기관도 정해야 한다.
한 현직 탐정은 “탐정 법제화 이후에도 불법행위를 하는 곳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을 업계로 나오게 한다면 주무기관의 관리‧감독과 자정작용을 통해 무분별하게 영업을 하는 곳은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탐정업법은 2005년 17대 국회부터 2022년 21대 국회까지 벌써 17년째 묶여있다. 법제화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 정작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이 이름만 달리한 개정안은 11명의 의원에 의해 총 13번 발의되며 십수 년째 재활용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과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이 탐정업을 현행 자유업에서 등록 영업으로 변경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발의했지만 현재 계류 상태다.
탐정업법이 국회를 표류하는 이유는 경찰청과 법무부의 날선 신경전에 있다. 두 기관이 관할권을 두고 서로 “탐정업은 우리 소관”이라며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조사 및 경비업 등 실질적으로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18대 국회에서는 경비업법의 개정안이 사실상 탐정업에 대한 내용으로 발의되기도 했다.
반면 법무부는 경찰관 출신이 퇴직한 뒤 탐정업계에 일할 가능성이 높아 유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법무부 관할을 주장한다. 그 사이 일부 업체의 불법행위는 계속되고 선량한 시민과 양심적인 탐정사무소의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탐정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인 한 퇴직 경찰관은 “두 고래의 알력 다툼에 국민 등만 터지는 꼴”이라며 “자격증 시험이나 교육은 경찰청에서 주관하고 모니터링은 법무부에서 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찰청·법무부 간 이견 조정을 거쳐 조만간 탐정법 제정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