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시즌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레그킥서 토탭으로 타격폼 바꾼 게 잘 맞아떨어져”
2021년 12월은 홍창기한테 선물 같은 시간들이었다. KBO 시상식에서 출루율 부문 1위(0.456)에 따른 트로피를 받았고 이후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키움 이정후, 삼성 구자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스타플레이어로 인정받았다. 2022시즌 연봉의 수직 상승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건국대 졸업 후 2016년 LG의 2차 3라운드 지명 신인으로 프로에 데뷔한 홍창기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경찰청 입단 제외)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다 2020년 LG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급부상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12월 시상식 마치고 다시 개인 훈련을 시작하면서 2022시즌을 준비하고 있다는 홍창기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2021시즌은 어떤 시즌으로 기억될 것 같나.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한 해였다. 2020시즌 신인왕을 받을 때만 해도 이듬해 골든글러브를 받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골든글러브 후보로 선정되고 시상식에서 수상하기 까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태어나서 레드카펫을 처음 밟았다. 기분이 묘하더라. 올겨울 양복을 두 벌 맞췄는데 그 두 벌을 잘 입고 다닌 것 같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 부문이 가장 치열했다. 이정후, 구자욱(수상자들) 외에 홍창기, 전준우 등 쟁쟁한 선수들이 경쟁을 벌였는데 수상을 예상했었나.
“솔직히 반반이었다. 상은 욕심이 났지만 다들 타이틀 홀더들이라 발표하기 전까진 50 대 50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수상도 미리 귀띔해주지 않아 발표하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2021시즌에 좋은 성적을 올린 터라 2022시즌 앞두고 연봉이 대폭 오를 것 같은데.
“기대하고 있다. 2019년 마칠 때만 해도 목표가 연봉 5000만 원이었다. 그때 3800만 원을 받은 터라 5000만 원의 연봉을 목표로 삼았다. 2020년 출전 기회가 늘어나면서 연봉 1억 원을 받았다. 그때는 모든 걸 이룬 기분이 들었고 더 이상 욕심이 안 생길 줄 알았는데 지난 시즌 성적이 좋으니까 또 다른 기대를 하게 된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내 직업은 부모님이 만나 결혼하면서부터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야구를 좋아하신 아버지가 아들이 태어나면 야구 선수로 키우겠다고 다짐하셨는데 마침 내가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캐치볼하면서 야구를 보러 다녔다. 야구가 정말 자연스럽게 내 인생 안으로 들어왔다.”
―고3 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
“원래 공 던지는 걸 좋아했고, 잘 던질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고 3때 갑자기 입스(YIPS란 시합 등의 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돼 운동선수들이 평소에 잘 하던 동작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현상)가 왔다. 마운드에서 공이 제대로 가지 않았다. 감독님과 상의 끝에 타자로 전향했지만 투수를 하다 고3 때 타자로 보직을 바꾸다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랐다. 가장 힘든 부분이 파워였다. 아무리 세게 쳐도 2루수 키를 넘어가지 않더라.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어 많은 훈련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고교 졸업 앞두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신인 드래프트 발표가 있던 날 학교(안산공고)에서 훈련 마치고 집이 있는 성남으로 버스 타고 가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괜찮다고, 대학 갔다가 4년 후 다시 도전해보자고 위로하시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 야구 시작하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부모님한테 굉장히 미안했다. 같이 야구를 했던 친구들은 다 프로에 갔는데 나만 외딴 섬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건국대 입학 후 야수로 재정비를 했다고 들었다. 돌이켜 보면 고3 때 지명 받지 못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 아닌가.
“대학 입학이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대학에서 체중을 늘려 힘을 키웠다. 동기들을 잘 만났고 운동 환경이 좋아 4년 동안 재미있게 야구할 수 있었다. 고교 졸업 후 곧장 프로에 갔더라면 일찍 방출됐거나 은퇴했을 것이다. 대학 3학년 때부터 타격에 힘이 붙었고 4학년 때 타율 4할을 기록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홍창기는 건국대 진학 후 통산 타율 3할3푼9리를 기록했고, 대학 4학년 때는 타율 4할2리로 프로팀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26순위로 LG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꿈에 그리던 프로 선수가 됐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는 법. 경쟁이 치열한 프로의 세계는 홍창기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다.
―2017년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시작했다. 프로 1년 만에 군 입대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고졸 선수보다는 나이가 있는 터라 빨리 군 복무를 마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16년 프로 입문 후 8월 9일 인천 SK전을 통해 프로 데뷔를 했다. 1군에서 3경기 5타석 출전했지만 무안타를 기록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때 군 입대를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경찰 야구단에서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다. 2017시즌 타율 4할1리를 기록하며 퓨처스리그 타격왕을 차지하지 않았나.
“지금 KT에 계시는 조중근 코치님이 타격폼 수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코치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믿고 따랐다. 어느 순간 연습 경기하는데 내가 친 공이 중앙 펜스를 맞추는 게 아닌가. 프로에서 펜스 근처까지 공을 날린 적이 없던 내가 펜스 중앙을 맞추니 얼마나 신기했겠나. 이대형, 박용택 선배처럼 공을 들어 올려 치는 방법을 익히면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9년 기록을 보면 9월까지 계속 1, 2군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정말 처참한 성적을 냈다. 7월까지 무안타에 삼진 7개, 병살타 1개를 기록했다. 성적이 안 나니까 자꾸 조급해졌고, 조급해지다 보니 계속 타격폼을 수정했다. 병살타 1개도 1사 만루 상황에서 내가 타격만 하면 득점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8타석 만에 처음으로 맞춘 공이 병살이 된 것이다. 그때는 야구 선수도 아니었다.”
―2019년 9월 26일 수원 KT전은 잊지 못할 경기일 것 같다. 시즌 첫 선발 출전인 데다 그 경기에서 5타수 4안타 3도루를 기록하지 않았나.
“이전에는 출루에 중점을 두고 공을 지켜봤다면 그때는 초구부터 자신 있게 방망이를 돌렸다. 9월 확장 엔트리에 포함돼 1군에 복귀해선 SK전 하재훈 선수를 상대로 시즌 첫 안타를 만들어냈던 게 KT전에서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KT전은 말 그대로 ‘인생 경기’였다. 선발 출전은 최소한 두 타석 이상의 출전 기회는 보장받는 것 아닌가. 부담없이 경기에 임하게 되면서 힘차게 스윙할 수 있었다. 나도 2안타, 3안타를 칠 수도 있구나 하며 스스로 신기해했다.”
2019시즌을 마친 홍창기는 비시즌 동안 호주 질롱코리아에 입단해 팀 내 최다 타석, 최다 안타, 홈런 3위, 타점 2위, OPS 1위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했다. 질롱코리아에서의 활약은 2020년 홍창기가 LG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부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20시즌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가장 큰 변화가 레그킥 대신 찍고 치는 토탭(toe tap)으로 타격의 안정감을 취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스프링캠프 때 이병규, 임훈 코치님이 타격폼 수정에 도움을 주셨다. 레그킥으로 타격할 때 타이밍이 맞지 않아 토탭으로 해보자고 방향을 바꾼 게 잘 맞아 떨어졌다. 토탭은 빠른 공에 유효한 타격폼이다. 덕분에 6월 30일 KT전서 김재윤 선수를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끝내기로 장식할 수 있었다. 2016년 프로 입단한 선수가 2020년 처음으로 홈런을 터트린 것이다.”
2020시즌을 통해 ‘눈 야구=홍창기’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타율 2할7푼9리로 리그 39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출루율에선 내로라하는 타자들을 제치고 리그 6위(0.411)에 올랐다. 볼넷은 83개로 리그 4위였다. 차명석 단장은 홍창기를 그해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꼽았다. 2021시즌에도 홍창기는 진화를 거듭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44경기에 출장했고 172안타 4홈런 52타점 타율 3할2푼8리를 기록했다. 볼넷은 109개로 리그 전체 1위였고 출루율도 1위(0.456)를 차지했다. 완벽한 톱타자로 진화한 것이다.
홍창기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2019시즌 때로 돌아가서 안타가 되든 안 되든 자신 있게 스윙해보고 싶다. 그때는 미리 결과를 생각해 타석에서 소극적으로 임했다. 지금 같았다면 3구 삼진이 돼도 적극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을 것이다.”
2021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홍창기는 여전히 자신의 야구 인생에 물음표를 갖고 있다. 앞으로 더 채우고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창기 트윈스’ 홍창기가 2022시즌에도 톱타자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까? 홍창기의 2022시즌이 기다려진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