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핏’ 잠재력 알아본 신한·KT와 협업도…이상수 대표 “글로벌 AI 시장의 아마존 되고파”
헬스케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분야다. 헬스·웰니스 분야는 CES 2022 혁신상에서 가장 큰 비중(12.4%)을 차지했다. 특히 디지털 피트니스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코로나19로 인해 운동까지 비대면 시대로 접어들면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헬스산업 규모는 2020년 약 170조 원에서 2027년 580조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시장조사업체 글로벌뷰리서치도 전 세계 피트니스 앱 시장 규모가 2018년 24억 달러(약 3조 원)에서 2026년 209억 달러(약 25조 원)로 9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2017년을 시작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를 통과한 디지털 치료제는 35~40개에 달한다. 치료 분야도 우울증, ADHD, 치매, 수면, 식이 조절, 혈당 관리, 암 환자의 증상 완화 등 다양하다.
전 세계서 스마트 홈트레이닝(홈트)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홈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주자는 홈트 업계의 넷플릭스라 불리는 2013년 설립된 ‘펠로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펠로톤의 홈트 서비스를 애용 중이라고 한다. 2020년 6월 북미 스포츠웨어 기업 룰루레몬은 스타트업 미러(Mirror)를 5억 달러에 인수해 홈트 시장에 입성했다. 지난해 9월 애플은 ‘홈피트니스플러스+’를 출시했다. 2020년 5월 삼성전자는 스마트 TV용 ‘삼성 헬스’ 앱을 한국,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에 출시했다. 같은 해 9월 LG유플러스는 카카오 VX와 공동으로 제공하는 ‘스마트홈트’를 모바일에 이어 IPTV 플랫폼 ‘U+tv’에서 신규 출시했다.
국내에선 아이픽셀의 AI(인공지능) 홈트레이닝 앱 ‘하우핏’ 돌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 수는 28만 명을 돌파했다. 이 같은 인기 덕분인지 구글플레이는 ‘2021 올해를 빛낸 자기계발 앱’으로 하우핏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펠로톤, 룰루레몬, 구글, 애플 등이 CES 2022에서 아이픽셀 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운동 영상 제작사나 트레이너들의 B2B 플랫폼으로도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하우핏은 업로드된 운동 영상에 AR(증강현실) 기술 중 하나인 3D 데이터 맵핑(Mapping)을 자동으로 적용해서 AI 홈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상수 아이픽셀 대표는 “트레이너들도 온라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원하지만, 고객들의 운동 상황을 즉각적으로 판단해 피드백을 주지 못해서 불편해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단순 영상 시청에 가치를 못 느끼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해준 것이 하우핏의 인기 요인이지 않나 싶다”며 “하우핏은 카메라로 뼈대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출해 실제 트레이너 동작과 일치하는지 즉시 피드백을 준다”고 말했다.
AI 핵심 분야를 자체 개발해 통합할 정도로 기술력도 갖췄다. 하우핏은 인간의 시각이 하는 일을 자동화하기 위해 디지털 이미지 또는 비디오에서 높은 수준의 정보를 추출하는 ‘컴퓨터 비전’과 인간의 뼈대를 추출해 동작을 인식하는 기술을 조합했다. 컴퓨터 비전으로부터 얻은 인간의 언어를 분석, 이해, 생성, 정보검색 등을 거쳐 질의응답으로 이어진다. 컴퓨터의 시각을 통해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 3D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이상수 대표는 “컴퓨터 비전 기술을 적용한 대표적인 제품이 테슬라의 스마트 자동차”라고 말했다. 이어 “하우핏의 AI 홈트레이닝 운동 종류만 700가지로 압도적이다. AI로 실시간 피드백이 빠르고,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영상 속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현재 국내 홈트 경쟁사들은 앱이 아닌 PC로만 구동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컴퓨터 비전 기술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동작 분석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디바이스 성능이 높은 PC에 제한된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제공할 수밖에 없다. 최근 앱을 출시한 곳도 AI 홈트가 아닌, 기존에 찍어놓은 영상을 화면으로 송출해줄 뿐이다.
이상수 대표는 “국내 홈트 앱 경쟁사 대부분은 AI와 각종 언어 및 운영체제(OS) 환경을 이해해 경량화에 성공한 곳이 없다. 대부분은 자체 개발이 아니라 오픈소스를 활용해 개발됐기 때문에 PC에서만 구동된다. 오픈소스를 변경할 수도 없어 문제 발생 시 대처하기 어렵다. 안드로이드, IOS 등 모바일 구동을 위해서는 경량화와 자체 개발이 필수”라며 “주요 경쟁사인 카카오 홈트는 서버에 영상을 보내서 판단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소모량이 높고, 지연 이슈가 생길 수 있지만, 아이픽셀 제품은 개인 스마트폰 등 '엣지 디바이스'에서 모든 부분이 처리돼 월등히 높은 성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우핏의 진가를 처음으로 알아본 곳은 신한금융그룹이다. 아이픽셀은 2018년 말 하우핏 사업 아이디어를 냈고, 2019년 ‘퍼스널트레이닝 제공방법 및 시스템’을 기반으로 특허 출원했다. 아이픽셀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든 개발을 원천기술로 진행해 성공했다. 이후 신한라이프와 일정 기간 하우핏의 상표권과 배포권을 갖는 공동사업 계약을 맺었다. 2020년 12월 하우핏은 베타 버전 서비스를 게시했고 2021년 2월 공식 출시됐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KT의 IPTV 서비스 ‘올레 tv플랫폼’을 통해 하우핏이 제공되고 있다.
이상수 대표는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이 대표는 “신한, KT와 일을 진행하는 것은 하나의 레퍼런스로서 좋지만, 사실 작은 투자로 많은 실익을 꾀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각종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스타트업이 생존하려면 자체 기술력을 지녀야 하고, 대기업에 매달려선 안 된다. 서비스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AI 스타트업 대부분이 연구에만 몰두할 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AI 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8년생인 이상수 대표는 게임회사에서 급격한 성장과 쇠퇴를 목격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의 경험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이 대표는 “네오위즈 근무할 때 PC·온라인 시장 성장에 따라 4년 만에 회사의 매출이 5배 증가하는 폭발적인 증가를 경험했지만, 2012년부터 과거 플랫폼에 집착하고 모바일로의 패러다임 전환 시점을 놓치면서 회사가 급속하게 쇠퇴했다”며 “당시 플랫폼의 변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피부로 느꼈다.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 메타버스 관련 신기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2016년 포켓몬고의 돌풍을 보면서 차세대 플랫폼이 AR, AI라고 확신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픽셀은 2~3년 내 대중화될 AI 콘텐츠의 B2B2C(기업과 기업과의 거래, 기업과 소비자와의 거래를 결합시킨 형태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동작 인식을 통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 기술을 보유 중이다. 이를 활용해 대표적으로 K-팝 시장에서 유행 중인 커버댄스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AI 기반으로 인스타그램, 틱톡 등과 비슷한 커버댄스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글로벌 AI 플랫폼 개발 솔루션 B2B 시장도 겨누고 있다. 클라우드 시장을 개척해 대중화에 성공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성공 모델을 꿈꾸고 있다. 아이픽셀은 이미 국내 빅5 대형병원 중 한 곳과 업무제휴를 진행 중이다. 해당 병원 재활의학과는 아이픽셀의 동작 인식 기술을 활용해 운동진단 및 처방을 할 예정이다. 다만 미국 FDA와 달리 한국에선 디지털 치료제가 정부로부터 승인이 안 된 분야다.
국내 시장의 보이지 않는 허들은 이상수 대표에게도 넘어야 할 부분이다. 이 대표는 “정부 지원사업, 보증기관 등의 기준이 소프트웨어와 딥테크 생태계 중심이 아닌 유통업을 통해 단순 매출액을 높이는 이커머스 등 기준으로 형성돼 있다. 미국처럼 원천기술을 보유한 딥테크 스타트업 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원 기준 등이 기술 평가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특히 디지털치료제 등의 보수적인 인허가 과정은 체력이 약한 스타트업이 접근하기 어렵게 많이 막혀있고, 늦는 느낌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유연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부처나 체육 관련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많이 오지만, 의사결정이 너무 늦다”고 덧붙였다.
이상수 대표는 후배들에게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할 것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공대 출신이다 보니까 회사 비전을 설정하고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통 부족은 위기로 이어졌다”며 “현재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기업문화, 인사, 채용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