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특허 강펀치로 양딩신 9단 완파해 중국 기사 상대 21연승…농심배도 정조준
지난 2월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제2국에서 신진서 9단이 양딩신 9단을 상대로 6시간 30분이 넘는 격전을 벌인 끝에 247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7일 열린 결승1국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LG배 우승에 1승만을 남겨뒀던 신진서는 2국에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난타전 끝에 어렵게 결승선에 골인했다.
#박정환에게 패한 것이 전화위복
신진서의 전매특허인 강펀치가 돋보였던 한판이었다. 중반 한때 인공지능(AI) 승부예측 그래프에서 90%에 육박하는 승률을 기록했던 신진서는 평범하게 마무리하면 우승이 확정적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강공 일변도로 밀어붙여 끝내 양딩신의 대마를 몰살시키는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는 “LG배 준비를 많이 했고 욕심이 많이 났는데 우승할 수 있어 기쁘다. 결승2국은 초반부터 편하다고 봤고 상대의 착각까지 나와서 좋다고 봤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완벽하게 마무리할 자신이 없어 좌변 쪽에서 무리하게 싸움을 걸어가 어려워졌던 것 같다. 무난하게 뒀어야 했다”고 2국을 돌아봤다. 계속해서 그는 “상대인 양딩신 9단이 기술적인 면에서는 초일류가 분명하지만 뒤로 갈수록, 초읽기에 몰릴수록 초조해져서인지 실수가 나오는 걸 느꼈다. 앞서 열린 삼성화재배 결승전 패배로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상대가 같은 한국 기사인 박정환 9단이라 충격이 덜했던 게 LG배에서 살아난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LG배 결승3번기 직전까지 5승 5패로 팽팽했던 상대 전적은 신진서의 연승으로 7승 5패로 벌어졌다. 한때 2승 5패까지 밀리기도 했으나 지난해부터는 5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기사 상대 21연승 ‘중국 킬러’
우승을 차지한 신진서는 지난해 6월 중국 갑조리그에서 양딩신 9단에게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21연승을 기록하고 있어 새로운 ‘중국 킬러’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결승에서 신진서에게 패한 양딩신은 현지 인터뷰에서 “크게 유리했던 첫 판을 지키지 못한 것이 참 유감스럽다. 신진서 9단을 상대로 초반에 그렇게 큰 우세를 잡기란 정말 쉽지 않은데 나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것이 두 번째 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반 이미 틀린 바둑이 됐는데 막판에 최대한 판을 흔들어서 기회가 찾아왔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또 그르쳤다. 초읽기 대처 능력과 마무리를 많이 다듬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중국 바둑의 대부 녜웨이핑 9단은 “양딩신은 비록 패하긴 했지만 잘 싸웠다. 여기서 실망하지 말고 더 정진해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중국 현지 언론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중국 매체 시나바둑은 최근 중국 바둑의 부진을 세 가지 이유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시나바둑이 꼽은 첫째 이유는 신진서의 성장이다. 한국은 그전까지 박정환 9단 혼자 이끌다시피 했는데 신진서가 작년 농심배 5연승으로 확실히 자신감이 붙으면서 세계 최강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확실한 두 개의 카드를 가지면서 상호보완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 하지만 중국은 커제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중국 기사들의 자신감 결여를 들었다. 시나바둑은 신진서가 최근 세계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중국에도 신진서에 필적할 만한 기사들이 최소 5명은 되는데도 21연패를 당하고 있는 것은 신진서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둑계에서 흔히 ‘일인자 프리미엄’이라는 말로 연결되는데 과거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의 전성기 시절 상대들이 싸워보기도 전에 지레 꼬리를 내리는 현상이 신진서를 상대로도 나타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왜 중국 기사들은 초읽기에만 들어가면 실수가 등장하는가라는 지적인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바둑대회가 침체된 것이 기사들의 실전경험 부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신진서, 농심배 우승도 도전
한편 이번 LG배 결승전은 같은 시기에 치러진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의 편파판정과 맞물려 더욱 화제를 모았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등장시켜 국민적 분노를 산 중국은 쇼트트랙 경기에서 어이없는 편파판정으로 기름을 부었다. 거기에 여자축구 아시안컵의 대역전패로 답답해하던 국민들의 가슴을 바둑이 속 시원하게 뻥 뚫어준 것이다.
LG배 우승컵을 손에 넣은 신진서는 오는 2월 21일부터 한중일 바둑삼국지 농심신라면배 3차전에 출전한다. 2차전까지를 마친 각국의 성적표는 한국 2승 4패, 중국 2승 3패, 일본 5승 2패. 남아있는 선수는 한국은 신진서 9단뿐이며 중국 2명(미위팅, 커제), 일본 3명(이야마 유타, 위정치, 이치리키 료)이다. 한국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신진서의 4연승이 필요하다. 과연 지난 대회 5연승에 이어 또다시 신진서가 우승청부사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