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대회 우승 딩하오, 신진서 잡은 왕싱하오 주목…일본 대형신인 세키 고타로·후쿠오카 고타로 등장
한국의 라이벌 중국은 최근 10여 년간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 미위팅 9단을 앞세워 국제무대를 석권했지만 최근엔 힘에 부치는 분위기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의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에 밀리며 단 하나의 세계대회 우승컵도 가져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자 중국과 일본은 신진서처럼 2000년 이후 출생한 신예들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2022년 신진서를 추격하는 차세대 주자들을 분석해봤다.
중국의 차세대 넘버원 주자는 단연 딩하오(丁浩) 7단이다. 2000년생으로 신진서와 동갑인 딩하오는 중국에선 소위 ‘00후’(2000년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말) 세대의 리더로 불린다. 중국엔 셰커, 랴오위안허를 비롯해 2000년생 기사가 7명 있는데 딩하오는 그중 한 명이다. 원래는 응씨배 결승에 진출한 셰커가 맨 앞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딩하오를 좀 더 쳐주는 분위기다.
딩하오는 지난해 제17기 창기배(10월)와 제1기 국수전(12월)에 이어 신설 기전인 대기사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3개월 동안 무려 3개의 대회를 휩쓸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딩하오의 결승 상대들이다. 창기배에선 현 랭킹3위 양딩신을 꺾었고, 국수전에서는 랭킹 1위 커제를 꺾고 정상에 올랐으며 신설된 대기사전에서는 랭킹 2위 구쯔하오를 제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덕분에 딩하오의 현재 랭킹은 개인 최고인 4위까지 치솟았다.
딩하오는 최근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 “다음 목표는 당연히 세계대회 우승이다. 탕웨이싱 9단이 일전 인터뷰에서 정상급 기사들이라 해도 26세쯤 되면 피곤함을 느껴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했는데, 나도 그 전에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성적을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기사들은 바둑 외에 대학 진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칭화대에 적을 두고 있는 커제 9단과 상하이 재경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위즈잉 7단인데 딩하오 역시 지난해 상하이 재경대학에 입학했다.
딩하오는 학업과 바둑을 병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대학 생활은 아주 바쁘고 학생들도 매우 우수하다. 그렇지만 그들을 보면서 나도 힘을 얻고 있고 바둑과 공부를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알아갈 것이다. 분명 부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두 번째 히든카드는 왕싱하오(王星昊) 6단이다. 2004년생으로 상하이 출생인 왕싱하오는 신진서보다 무려 네 살이나 어리다.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 2015년 제32회 세계청소년바둑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했고 2016년 프로에 입단해 지난해 신인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현 중국랭킹은 37위.
왕싱하오가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해 일본 주최의 국제 신예기전 글로비스배에서 우승하고부터. 왕싱하오는 4강에서 전년도 우승자 문민종 4단을 꺾은 데 이어, 결승에서는 또 하나의 중국 유망주 투샤오위(屠晓宇) 5단을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왕싱하오는 연초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1월 2일부터 4일까지 비공식 인터넷 기전이긴 하지만 중국 텐센트가 주최하는 제7회 TWT바둑대회 결승3번기에서 신진서 9단에게 종합전적 2-1로 승리, 우승상금 60만 위안(한화 약 1억 1200만 원)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결승전 3국을 모두 지켜본 이현욱 9단은 “왕싱하오의 성장이 무척 놀랍다. 불과 6개월 전까지 평범한 수준이었는데 최근 박정환 9단과 인터넷을 통해 자주 대국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했다. 기사들끼리는 ‘박정환의 제자’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국을 많이 했다”면서 “왕싱하오의 기풍은 커제 9단과 굉장히 유사하다. ‘리틀 커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두루 강하다”며 중국에 만만치 않은 신예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일본도 대형 신예의 출현이 있었다. 우선 세키 고타로 8단. 2001년생인 세키 고타로는 2020년 신인왕전 우승에 이어 지난 12월 막을 내린 제47기 일본 천원전 도전기에서 타이틀 보유자 이치리키 료 9단을 3-1로 꺾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10대에 타이틀을 쟁취한 것은 일본 역사상 네 번째 기록. 일본에서는 ‘AI 소믈리에’라고 불릴 정도로 평소 인공지능 연구에 몰입한 것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세키 고타로와 함께 후쿠오카 고타로 2단(2005년생)도 각광받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홍맑은샘 프로의 제자이기도 한 후쿠오카는 얼마 전 열린 녜웨이핑배 국재바둑대회에 일본 신예기사 대표로 출전해 한국의 문민종, 중국의 투샤오위를 연파하고 일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경험 차 출전시켰던 일본에서도 후쿠오카 2단의 선전에 깜짝 놀랐다는 후문.
다만 중국과 일본은 기사층이 두터워 송곳 같은 재주를 갖췄다고 해도 세계대회에 출전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선 두터운 자국 내 기사층을 뚫어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다.
한국도 2020년 글로비스배 우승자 문민종 5단 등 촉망받는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어 2022년은 2000년 이후 세대들이 세계 바둑계의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