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 없이 단일화 땐 선거운동 제약 불가피…‘당무우선권’ 윤석열 합당 강행시 이준석과 갈등 재연 예고
대선이 실시되는 날까지 당무 우선권은 이준석 대표가 아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있다. 정가에선 이런 배경이 단일화를 둘러싼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먼저 윤석열 후보 입장에선 대선 승리 이외에 다른 것을 고려할 상황이 없다. 정치신인 윤 후보로선 패배할 경우 후일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초접전을 펼치는 양상에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정권 교체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윤 후보 측은 단일화에 성공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을 흡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캐스팅보트를 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선 완주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그 가운데 안철수 후보는 2월 13일 유튜브 기자회견을 통해 ‘100%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를 제안했다. 2월 14일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여론조사 100% 조건을 (국민의힘이) 받지 않는다면 단일화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냐’는 사회자 질문에 “개인적인 입장에서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 후보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단일화에서 활용했던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 100% 방식 국민경선’ 카드를 내밀면서 단일화 협상 마지노선을 설정해 놨다. 2월 15일 안 후보는 대구언론간담회에서 “윤 후보가 진정으로 단일화를 원한다면 제안을 수용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안 후보 제안에 국민의힘 내부에선 ‘역선택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 수석대변인은 입장문에서 “안 후보가 밝힌 야권통합 원칙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적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긍정 평가한다”면서도 “윤 후보와 안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큰 상태에서,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농간에 넘어가, 야권분열책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가에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시선이 ‘포스트 단일화’ 국면에 쏠리고 있다는 반응이 고개를 든다. 단일화 이후 양당 간 교통정리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 없을 경우 단일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핵심 변수는 그동안 설로만 나돌던 양당의 합당이다. 일각에선 윤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를 추진할 경우 양당 합당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합당이 불가피한 이유는 간단하다”면서 “합당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진 쪽에서 이긴 쪽에 대한 선거운동을 하는 데 제약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안 후보가 단일화 경선에서 이기는 경우를 가정해보면, 합당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국민의힘 쪽 조직이나 비용을 선거운동에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마나’한 단일화가 되는 셈”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적 여유가 촉박한 상황에서 여론조사 100% 방식과 더불어 합당에 대한 명확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을 때엔 단일화에 대한 양당 합의가 어려워질 것이다. 안 후보 입장에선 ‘정치적 퇴로’를 완전히 모색하지 못하면 단일화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에 대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3월 9일까지 당무 우선권을 가진다. 합당 등 중요 사안의 경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의결해야 하지만, 윤 후보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할 경우 이런 절차를 거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게 국민의힘 선대위 내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단일화에 합당이 자연스럽게 묻어오는 시나리오가 유력한 까닭이다. 합당이 될 경우 통합 전당대회를 거쳐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해야 하는 절차가 따라온다.
또 다른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포스트 대선’ 국면도 고려해야 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입장에선 단일화와 합당이 함께하는 시나리오가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면서 “합당이 단일화 조건에 포함된다면, 이준석 대표도 단일화 이해당사자에 포함된다. 이 대표가 윤 후보, 안 후보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2월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 통합절차를 거친 통합 전당대회는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합당이 단일화 수순 중 하나로 거론되는 까닭에 이준석 대표는 단일화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 자신의 당권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이 대표가 안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선대위 공보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함경우 국민의힘 경기 광주갑 당협위원장은 “단일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이준석 대표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함 위원장은 “여론조사 방식이 아닌 신뢰에 입각한 담판형 단일화가 이뤄지거나 각자의 길을 가거나 하는 시나리오만 남았다고 본다”면서 “단일화 국면에서 합당 이슈가 거론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다. 합당은 단일화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함 위원장은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공동정부는 가능하지만, 합당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라면서 “‘원 패키지 시나리오’는 현 시점에서 논의될 부분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단일화에 대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면서 “이면에서 어떤 옵션이 논의되든 향후 지방선거 정국까지 내다본다면 합당은 궁극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채 연구위원은 “일단 합당은 조금 먼 얘기인 만큼 단일화 과정에선 공동정부에 대한 이슈가 먼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후 합당이 당대당 통합이 될지, 신설 통합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