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원 후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 머물기로 해…대선 전 어떤 메시지 낼지 촉각 ‘노메시지’ 가능성도
윤 후보로서는 이제 한 명 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 터를 잡게 된 박 전 대통령 마음을 얻고 보수 세력의 확실한 계승자로 올라서는 것이 윤 후보의 마지막 필승 전략이다.
#대구에 터 잡는 박근혜
지난해 말 특별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살기로 결정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현재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퇴원 후 통원 치료가 편한 서울이나 경기 남부권이 새 거처로 유력했지만, 예상을 깨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가 출생지이며, 달성은 정치적 고향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50년 대구 계산성당에서 육영수 여사와 결혼식을 올렸고, 195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구에서 낳았다.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오랜 기간 은둔 생활을 했던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봄 보궐선거를 통해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16·17·18대까지 대구 달성에서 내리 4선을 하며 거물 정치인이 됐고, 마침내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섰다.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 달성으로 돌아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이미 사라졌지만 보수 정치권에서 그의 무게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새 자택 소식이 알려지자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일대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이에 대구 달성군은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에 승용차 100대, 대형버스 10대 주차규모의 임시주차장과 간이화장실 2곳을 급하게 설치하는 등 몰려드는 방문객들에 대한 대비 조치에 나섰다.
TK의 한 국회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어떻게 보면 서울이 더 편할 수 있지만 대구로 오는 예상 밖 선택을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지금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상황인데 대구로 오는 결정을 했다면 이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로 봐야 한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차원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를 발신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전직 의원 말처럼 퇴원 시점에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내겠다는 예고가 박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로부터 이미 나온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구에서 만약 메시지를 날린다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2월 18일 새 자택을 찾은 유영하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퇴원 시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택 매입 절차를 완료하고 내부 집기 도입을 위한 움직임까지 관측된 상황이라 대선 직전인 3월 초에는 박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대구로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예상이 맞다면 메시지 발신 시기가 임박한 셈이다.
#덕담일까? 악담일까?
보수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사람이 바로 윤 후보 아니냐”라는 말을 꺼내지만, 두 사람의 ‘악연’은 이보다 훨씬 더 길다. 박 전 대통령 임기 초반이던 2013년 윤 후보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댓글 등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둘러싼 수사였다.
수사를 담당했던 당시 윤 후보는 대놓고 검찰 수뇌부와 박근혜 정부를 향해 덤벼들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정권 차원의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결국 윤 후보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수사팀장에서 물러난 뒤, 검찰에서 한직으로 불리는 지방 고검 검사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던 중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윤 후보와 박 전 대통령의 악연은 다시 시작됐다. 윤 후보가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면서 검찰 수뇌부 핵심으로 일약 재부상한 것. 윤 후보가 실무 수사를 지휘했던 특검은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가 확전일로에 놓이면서 국민여론은 완전히 돌아섰고,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서울중앙지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해 수감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4년 9개월 동안 영어의 몸이 돼야 했다. 긴 악연을 갖고 있는 윤 후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도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최근 낸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 답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이 수감 기간 받은 편지 8만여 통 가운데 129통을 추리고 각 편지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답신을 엮은 것이다.
“기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고 엉킨 실타래도 한 올 한 올 풀려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재직 중에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아쉬운 점도 있고, 한편 조금 부족했던 점도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심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이권을 챙겨주는 그런 추한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탄핵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동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생명이 길지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어둠은 여명이 밝아오면 자리를 내주면서 사라질 것이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책의 문장으로만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억울한 심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에 대해 ‘악감정’이 많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여러 경로로 타진해봤지만 박 전 대통령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덕담을 해줄지, 아니면 비판을 할지, 솔직히 백지상태다. 그러나 단 하나의 변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대선 막판인지라 박 전 대통령 영향을 윤 후보에게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에 다가서는 윤석열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월 15일 TK를 찾았던 윤 후보는 사흘 만인 18일 또다시 TK를 방문했다. 보수 표심 다지기에 나선 것인데,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일정도 잡혀 주목을 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로 풀이됐다.
사실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수사 책임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8월 윤 후보가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수사팀장을 맡아 주도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다”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윤 후보를 비롯해 박영수 특검 등은 박 전 대통령을 비공개 조사한 뒤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쌓고 있었는데, 소환조사 일정 조율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돼 조사가 무산됐고 수사기간 연장도 불허돼 사건이 결국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본인이 주도한 것으로 비치는 데 대해 적극 해명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참말이다’ ‘거짓말이다’로 나뉘어 떠들썩해졌다.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 특검 수사팀은 2017년 2월 말 활동이 끝나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돼 구속수감됐다. 윤 후보와 박 전 대통령의 사이를 갈라치기하려는 세력들이 있는데 국민들이 당시 정황을 정확히 알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오랜 수감생활로 박 전 대통령의 판단력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 전 대통령이 ‘절묘한 선택’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오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통해 정보를 획득해왔고, 어떤 판단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한때 이끌었던 제1야당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지 잘 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 대해 ‘덕담’도 ‘악담’도 하지 않은 채 대선 이후로 퇴원을 늦추는 방법으로 대선 전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이 대선 전에 메시지를 내 자칫 보수 분열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쓸 가능성도 있는 만큼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음으로써 구체적 행동 없이 사실상 윤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