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관계·적용대상 등 따져봐야…국민의당 위반 판명될 경우 대선 악재로 작용할 수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선거유세 차량에서 2명이 가스에 질식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2월 15일 발생했다. 대선 공식 선거유세가 시작된 첫날이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한 도로에 정차해 있던 유세용 버스 안에서 50대 운전기사와 60대 국민의당 당직자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들은 발견 당시 이미 심정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버스 문을 열었을 때 냄새가 났다’는 정황 등을 토대로 자가발전기 가동 과정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차량 유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사고 당시 유세 차량 외부에는 안 후보 선거운동 영상이 담긴 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됐다. 일산화탄소 발생 우려가 있어 자가발전기는 개방된 공간에 달아야 하지만, 밀폐된 수화물 칸에 장착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2월 17일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망 소견을 경찰에 보고했다.
유세 차량은 LED 스크린을 설치하면서 차량 구조·장치 변경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차량 LED 스크린은 자동차관리법상 차량 등화장치로 구분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구조·장치 변경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지 않고 차량 구조·장치를 변경할 경우 소유자와 운전자는 1년 이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유세 차량 개조업체는 2월 18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관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다.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 책임자가 사고를 막기 위한 의무·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먼저 중대재해 유형인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 중 어디에 속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사망한 운전기사와 당원이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 했다면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반면 자원봉사자 등 임금을 받기로 한 근로자가 아니라면 중대시민재해 피해자로 분류될 수도 있다. 한 노무사는 일요신문에 “선거 일을 한 사람의 사망 사고이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사업장이 국민의당인지 아니면 국민의당과 계약을 체결한 업체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안 후보 측과 유세 차량 회사의 원·하청 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노무사는 “도급을 준 원청이 국민의당이라면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경영 책임자와 법인까지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며 “구체적인 계약 관계를 살펴봐야겠지만 당 책임자에 대한 처벌까지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국민의당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되면 대선 전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관리체계 의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의무를 다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국민의당 측은 사고 발생 직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스크린 설치) 업체가 LED를 작동할 경우에는 일산화탄소 발생 가능성이 있어 문을 열어놓고 가동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사전에 공지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대선이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어 진상 조사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사업장이 국민의당인지, 당과 계약을 맺은 업체인지에 따라 상시 근로자 수도 달라진다. 중대재해법 적용 기준마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재 조사 중에 있고, 구체적인 조사 발표 시기는 말씀 드리기가 어렵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50인 이상 사업장 등 고용 관계, 적용 대상을 따져야 해서 더 조사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은 사고 이후 선거 운동을 전면 중단했고, 안 후보는 유세차 사고로 숨진 지역선대위원장과 운전기사의 빈소를 지켰다.
안 후보는 2월 16일 “저 안철수를 도와주시던 두 분께서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셨다”며 “두 분을 잘 모시고, 제대로 된 사고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안 후보는 발인식이 모두 끝나는 19일 이후 선거운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1일 중앙선관위 주관 첫 법정 TV토론에는 참석한다는 계획이다.
'자진사퇴 없다지만…' 차량 사고가 단일화에 미칠 영향
유세버스 사고로 선거 운동을 전면 중단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향후 거취를 놓고 정치권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2월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장례식장을 찾아 위로하는 등 교감이 있었던 만큼 장례 절차가 끝나는 대로 단일화 이슈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을 아끼고 있다.
국민의당의 고심은 한층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아내 김미경 씨의 코로나 확진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당 내부에서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울러 유세차량 사고 이후 안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제안했던 단일화 이슈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단일화 사안을 얘기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며 “이후에 적절한 타이밍이 되면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2월 16일 빈소에 약 30분 머무른 후 안 후보와 20여 분간 독대했다. 윤 후보는 조문 후 “함께 대선에서 경쟁하고 있는 안 후보께 안타깝고 불행한 일에 대해서 인간적인 면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제가 힘은 못 되더라도 마음의 위로라도 드렸다”고 말했다.
단일화와 관련된 질문에 윤 후보는 “여러분들께서 추측하시는 것은 오늘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 이외에 다른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 역시 2월 17일 “이런 상황에서 야권 통합 얘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삼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내심 안 후보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기대하는 눈치다. 안 후보가 악재를 맞이하면서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관측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안 후보가 여러 악재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건 사실”이라며 “이후 윤 후보와 따로 만나 얘기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2월 18일 유세버스 사고로 숨진 당원 영결식에서 “결코 굽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진사퇴론을 일축한 발언으로 읽힌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