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3만~4만 원, 제조사 소분 제품은 지정가 미적용…키트 품귀에 불법 해외직구 주의보
정부의 유통개선조치 발표에 따라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의 온라인판매가 금지되고 약국과 편의점에서의 구매가 시작된 첫 주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월 15일부터 오는 3월 5일까지 7개 편의점(미니스톱·세븐일레븐·스토리웨이·이마트24·씨스페이스·CU·GS25)과 약국 등에서 자가진단키트를 구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인당 구매 가능한 수량은 5개로, 가격은 개당 6000원이다.
유통개선조치가 적용되는 기간 동안 지정된 판매 가격을 준수하지 않는 판매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공중보건 위기대응법 제19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유통개선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 이후에도 “약국마다 자가진단키트 가격이 다르다”는 불만이 나왔다. 17일 경기도 한 지역의 온라인 카페에는 ‘자가진단키트를 샀는데 약국마다 가격이 다르다’며 ‘5개 들어있는 제품을 3만 5000원에 샀는데 오는 길에 집하고 가까운 약국을 가보니 똑같은 걸 4만 원에 팔더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또 다른 회원은 ‘나도 지난주에 5개 4만 원에 샀고, 이번 주 월요일에는 3만 원에 샀다. 바로 옆 약국에서는 3만 5000원에 팔더라. 6000원 정가제 아니었나?’며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일부는 ‘혹시 가격에 따라 정확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자 ‘증상이 있으면 차라리 동네 병원에서 5000원 정도에 검사를 받는 것이 더 낫겠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16~17일 서울 마포구와 종로구 일대의 약국을 방문해 자가진단키트 5개의 가격을 비교해 본 결과, 같은 건물에 입점했더라도 최소 3만 원부터 최대 4만 원까지 그 가격이 달랐다. 낱개로 환산하면 6000~8000원으로 개당 최대 2000원 차이가 나는 셈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혹시 자신이 구매한 제품이 다른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약국마다 자가진단키트의 가격이 다른 이유는 소분 여부에 달려있다. 정부가 낱개 판매에 대해서는 6000원으로 판매가를 지정해뒀지만 제조업체에서 처음부터 소량 포장(1·2·5개)으로 제조해 공급한 제품에는 6000원이라는 지정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의약품의 가격은 약사법 제56조 제2항의 ‘판매자 가격 표시제도’에 따라 판매자인 약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다만 가격이 다르다고 제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약사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이에 대해 마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 씨는 “약국에서도 소분된 제품에 대해서는 개당 6000원에 팔고 있다. 그보다 더 비싸게 구매하셨다는 분은 아마 처음부터 5개로 포장되어 나온 제품을 구매하신 것 같다. 하루에 최대 50개까지 들어오는 6000원짜리 제품을 먼저 소진하고 그 뒤에 약사 재량으로 확보한 키트를 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로구의 약사 B 씨는 “최근 재택치료자의 약 제조를 전국의 모든 약국이 하게 되면서 약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며 “출근하면 가장 먼저 ‘키트 있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손님 응대하고, 약 제조하고, 시간을 쪼개 키트도 소분해야 한다. 소분 키트는 팔아봤자 포장비에 인건비를 따지면 남는 게 많지 않다. 그래도 키트를 구하려고 하루 종일 발품 파는 손님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나눠서 파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약사회 측은 정부가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공급 가격을 사실과 다르게 발표해 놓고 가격을 한시적으로 6000원으로 지정했다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정부가 도매상이 약국에 공급하는 진단키트의 개당 가격이 2420원이라고 발표했는데, 실제 공급가는 이보다 비싼 3700~4000원 선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자가진단키트 품귀현상은 과거 마스크 대란만큼 길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약사회는 도매상과 합의를 통해 자가진단키트 공급가를 소폭 인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대용량 제품 개당 가격인 3700원을 기준으로 약 200원이 인하됐다. 여기에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제조사도 추가되면 공급난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정부도 지속적으로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7일 자가진단키트 유통과 관련해 대한약사회장 및 7개 편의점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가격 급등과 잦은 품절로 인해 국민들께서 불편해 하시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매주 1200만 개 이상의 신속항원검사 자가진단키트 물량을 민간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들쑥날쑥한 가격과 별개로 진단키트 구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17일 종로구 1·2·3·4가동과 강북구 일대 편의점 21곳의 재고를 확인해 본 결과, 자가진단키트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3곳에 그쳤다. 가격은 3곳 모두 개당 6000원이었다. 강북구 소재의 편의점 직원 C 씨는 “점장님이 6000원에 팔라고 해서 그렇게 팔고 있다. 입고되자마자 몇 시간 내에 모두 팔리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이어지는 품귀현상에 자녀가 있는 일부 가정에서는 해외 판매용 자가진단키트를 공동구매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블로그와 온라인 카페에서는 ‘자가진단키트를 공구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판매하는 자가진단키트는 아직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으로 확인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허가를 받지 않은 키트를 구입하는 것은 의료기기법 위반에 해당한다. 해외 직구 시에는 세관에서 적발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 허가를 받지 않은 키트를 파는 것은 불법으로 판매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받은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는 2월 17일 기준 △휴마시스 △SD바이오센서(2종) △래피젠 △젠바디 △수젠텍 △메디안디노스틱 △오상헬스케어 △웰스바이오의 9종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