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현직 대법관 재판거래 관여’ 의혹 제기에 여권 ‘윤석열은 김만배 일당의 흑기사’ 반박…대선 후 ‘가이드라인’ 우려
여당 측은 김 씨가 정영학 회계사 등과 나눈 대화 속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등장한 것을 놓고 ‘김만배 일당의 흑기사’라고 비판하고 있고, 야당 측은 녹취록에 현직 대법관이 등장한 것을 놓고 ‘재판거래 관여자’일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 의혹 모두 고발 등이 이미 들어가 있어 수사가 불가피한데, 법조계는 녹취록의 한계를 주목하고 있다. 녹취록 속 대화는 모두 전언에 해당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만배 씨 등도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도 이를 뒤집을 만한 핵심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후 당선된 측에서 본인 의혹뿐만 아니라, 타 후보의 의혹에 대해 어떤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릴지 법조계가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새로 등장한 A 대법관 ‘조력’ 가능성에 이재명 화들짝
정영학 회계사와 김만배 씨의 대화가 담겨있는 녹취록에서, 현직 대법관이 등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재판거래 의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만배 씨가 권순일 당시 대법관을 접촉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대법원 상고심 전원합의체 판결에 청탁을 했다는 게 기존 의혹이었다면, 권순일 대법관 외에도 추가로 A 대법관이 화천대유 의혹에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녹취록에는 김만배 씨가 A 대법관에 대해 ‘경제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취지의 대화가 담겨있다. 한국일보 등에 따르면, 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 씨는 정영학 회계사를 2021년 2월 만난 자리에서 “저분은 재판에서 처장을 했었는데 처장이 재판부에 넣는 게 없다”며 “그분이 다해서. 내가 원래 50억 원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다”라고 A 대법관을 언급했다. 또, 김 씨는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 그분 따님이 살어. 응? 계속 그렇게 되는 거지. 형이 사는 걸로 하고. 이 (아무개) 대표한테도 물어보고”라고 말하는 등 주거 문제에 대해 도움을 줬다는 취지의 발언도 담겨 있다.
A 대법관은 의혹이 제기되기 전부터 “전혀 사실무근이다, 김 씨 측과는 아무런 접촉도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을 했지만, 국민의힘 측은 “50억 원 상당의 혜택을 준 게 아니냐”면서 문제 삼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녹취록 속 그분으로 대법관이 지목됐다고 한다”며 “그분(A 대법관)에게 50억 원 빌라를 사드린다는 부분인데, 대법관의 50억 원 빌라 구입 부분도 신빙성을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김만배가 대법원에 계속 연줄을 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권순일과의 재판 거래 의혹도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은 A 대법관 의혹을 놓고 “이재명 후보 대법원 파기환송한 주역이 바로 권순일, A 대법관”이라며 “김만배 씨는 A 대법관이 행정처장이라 재판에는 못 들어가지만 다해주었다고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만배 씨가 50억 원씩 주려고 했다는 것은, 무죄 재판거래에 김만배가 100억 이상을 베팅했다는 뜻”이라고도 강조했다.
#이재명 측 “그분 아닌 것 입증” 해명, 녹취록으로 역공
이재명 캠프 측은 오히려 녹취록 속 내용을 토대로 이재명 후보의 ‘무관함’이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 배당금에 대해 “절반은 그분의 것”이라고 얘기한 것을 놓고 ‘그분=이재명 후보’라고 비판했던 국민의힘에 대해 “오히려 그분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추가로, 김만배 씨와 정영학 회계사의 대화 가운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등장하는 것을 놓고 ‘김만배 일당의 흑기사’라고 문제 삼고 있다.
맞불 작전에도 나섰다. 우상호 이재명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은 2월 20일 언론에 김만배 씨 녹취록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 씨는 “윤석열 영장 들어오면 윤석열은 죽어”라고 말했고, 이에 정영학 회계사가 “죽죠. 원래 죄가 많은 사람이긴 해 윤석열은. 그래서”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만배 씨는 다시 “(윤석열은) 되게 좋으신 분이야”라고 말한 뒤 “나한테도 꼭 잡으면서 ‘내가 김 부장 잘 아는데 위험하지 않게 해(웃음)’”라고 말했다.
우상호 본부장은 이를 놓고 “김만배 씨에게 자신이 도와준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며 “윤석열 후보와 김만배가 깊은 관계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점”이라며 이번 대장동 의혹이 이재명 후보가 아니라,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연루된 게이트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도한 의혹 제기 아니냐는 지적도
두 유력 후보 모두 한 경제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김만배 씨와 만난 인연이 있고, 이런 내용들이 녹취록에 등장하다 보니 ‘논란’으로 계속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녹취록이라고 하는 ‘제한된 증거’를 놓고 언론이 너무 과도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직접적으로 청탁을 한 대상과의 대화가 아니라, A 대법관이나 이재명·윤석열 후보에 대해 김만배 씨가 제3자에게 한 얘기는 모두 입증해야만 하는 의혹에 불과하다”며 “이런 전언은 전혀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고 검찰이 이를 ‘실제 청탁과 뇌물’로 확인해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검찰 역시 녹취록 속 등장하는 대화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김만배 씨의 자금 흐름 등을 추적해 봤지만 권순일 전 대법관, A 대법관 등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는 나”라고 주장하는 김만배 씨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녹취록 대화를 놓고 50억 클럽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정작 이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에서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정도를 제외하면 뚜렷한 진술과 증거가 없어 수사에 진척이 없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지금 두 캠프에서 서로를 흠집내기 위해 쏟아내는 의혹들이다. 대선 후 당선된 후보는 본인 관련 내용은 물론, 상대방 후보 관련 의혹 모두 검찰·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텐데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앞선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의혹들이 모두 사실무근이라면 모르겠지만, 당선된 캠프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더 확실한 수사를 원하면서 동시에 본인 의혹에 대해서는 빠르게 무혐의를 판단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느냐”며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듯 나오는 녹취록 바탕의 의혹 제기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