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인수위 바람 잘 날 없어…이재명 되면 친문 세력과, 윤석열 되면 안철수 라인 등과 갈등 가능성
제20대 대통령 당선자 공식 활동은 국정 인수인계 절차를 논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그 역할을 맡는다. 인수위는 차기 정부 국정 운영방향, 경제정책, 외교안보 등을 설계한다. 당선자가 인수위를 어떻게 꾸리고, 운영하는지를 살펴보면 향후 임기 5년의 윤곽이 그려진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수위는 위원장 1인과 부위원 1인 및 24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100여 명으로 구성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인수위 역할을 대신했다. 2008년 이명박·2013년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각각 180여 명, 150여 명으로 구성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인수위 규모는 247명이었다.
역대 인수위에서 위원장은 교수나 법률가 등 외부 전문가가, 부위원장은 정치 실세들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임채정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인수위원장을 맡았다. 정책실무형으로 인수위를 구성하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구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이 인수위원장을, 부위원장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맡았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인수위원장으로 발탁됐다. 김 전 소장은 인수위 기간 거침없는 발언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김 전 소장은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됐지만, 두 아들의 병역 면제와 부동산 문제로 내정 5일 만에 사퇴했다.
진영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박근혜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진영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고, 문재인 정부에선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도 발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가 인수위 역할을 대신했다. 김진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역대 인수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이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인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전 의원 간 ‘힘겨루기’가 대표적이다. 이상득 전 의원은 창업공신 그룹인 ‘6인회’의 주요 멤버이자 이 전 대통령 친형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 서울시장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거쳐 정무부시장에 발탁된 뒤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정 전 의원은 선거 기간 핵심 업무를 맡으면서 실세 중 실세로 통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이상득 전 의원 등의 견제로 인수위 때부터 권력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 전 의원은 “정부 인사 실패는 청와대 몇몇 인사들의 전횡 때문”이라고 비판했고, 그 파장은 상당했다.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권력 사유화’ 논란이었다. 이로 인해 이 전 의원 최측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전격 사퇴했다. 이후로도 이명박 정부 내내 정두언-이상득으로 대표되는 소장파와 원로파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 내부 갈등이 덜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타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 특성상 어느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10년 만의 인수위 출범으로 정부의 대대적 개편이 예상되면서 정부부처 역시 ‘휴업 모드’다. 정권 말 공직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인사, 업무 등의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인수위를 거쳐 새로운 정부의 국정 방향이 정해지면 오는 6~7월에는 각 부처 수장이 바뀔 예정이다. 여야 후보 모두 대선 공약에서 청와대, 기획재정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대대적 개편안을 내놓은 상태다. 한 부처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야 후보 누가 당선돼도 3~4개월 후엔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라며 “지지율 눈치를 보는 시기는 맞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중 누가 되더라도 인계 과정에서 역대급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관측한다. 이 후보 측은 민주당 계승을 외치며 여권 지지층 표심을 호소했지만, ‘이재명 정부의 출범도 정권교체’ 등의 발언으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보였다. 특히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재명의 민주당 정부는 다를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와 선 그은 바 있다. 무엇보다 이 후보는 정치 비주류로서 정계 내 ‘친문’ 세력과는 세력이 완전히 다르다는 정계 내 중론이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문재인 청와대 또는 친문 진영과 갈등을 빚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월 3일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공동정부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대선 이후에 바로 추진하기로 했다. 단일화 안에는 “집권 시 인수위 단계부터 대등한 자격의 공동 인사권”이 반영됐다.
이에 따라 안 대표는 윤 후보가 선거에서 이길 경우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하며 내각 개편 등 정부 청사진을 공동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이나 국무총리직 등을 직접 맡아 국정 파트너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향후 정부 구성과 합당 과정에서의 갈등이 정국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수민 평론가는 더불어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 인수위 혼란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당은 이 후보가 비주류 출신이라고 해도 이 후보가 당선되면 친문 직계라고 할 수 있는 의원들이 뒤로 물러 서 있을 것”이라며 “반면 국민의힘은 인수위를 같이 꾸릴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도 있는 데다, 국민의힘 세력, 윤 후보 직계 세력, 다른 쪽에서 건너온 선대위 세력, 호남 출신 세력 등이 다 어우러져 있어 알력 다툼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