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코치 맡고 심적 부담 컸었다…나성범 이적 많이 아쉬워”
미국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 위치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이너리그 훈련장에서 만난 NC 다이노스의 손시헌 코치는 필라델피아 구단을 상징하는 빨간 색상의 훈련복을 입고 기자와 인사를 나누며 잠시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 코치는 현재 필라델피아 캠프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그가 NC와 마지막 FA 계약을 맺을 당시 은퇴 후 지도자 연수 지원을 계약 조건에 포함시킨 덕분에 2년여의 2군 코치 생활을 잠시 접고 지난 12월 중순 가족들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손 코치는 선수 생활 은퇴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코치로 한국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미국 연수를 가는 게 배우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정확히 그 내용을 실천에 옮겼다. 2년 전 KIA 타이거즈 이범호 코치가 마이너리그 캠프 연수를 받은 바로 그 장소에서 손 코치가 새로운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손 코치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지난 12월 중순 가족들과 함께 플로리다주 탬파에 도착했던 손시헌 코치. 미리 집을 구하지 못한 채 미국에 온 터라 처음엔 정착 준비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통역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탬파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하는 박세훈 씨를 만나 필라델피아 연수 기간 동안 도움을 받게 됐다.
현재 손 코치가 속해 있는 곳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유망주들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미니 캠프. 3월 초 마이너리그 캠프가 열리기 전까지 20일가량 진행되는 유망주들을 위한 스프링캠프인 셈이다. 그런데 이곳에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코치부터 마이너리그 코칭스태프까지 모두 모여 유망주들의 훈련을 돕는다.
“양키스 전 감독이자 현재 필리스 감독을 맡고 있는 조 지라디 감독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29년 동안 코치로 일하다 오신 분, 홍성흔 선배와 샌디에이고에서 같이 코치를 하셨던 감독 등 필리스의 여러 지도자들이 다 모여 있다. 모든 걸 배우고 흡수하고 싶은 나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다.”
손 코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이 틈틈이 기록한 질문 목록을 통해 선배 지도자들에게 궁금했던 부분을 묻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만약 선수 생활 은퇴 후 바로 코치 연수를 왔다면 물어보지 못했을 내용들”이라면서 “NC에서 2년간 선수들을 이끈 경험 덕분에 다양한 내용을 만들어 왔다”고 설명했다.
손 코치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훈련장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캠프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들이 모이는 전체 미팅에 참여한다.
“이후 코칭스태프들끼리 다시 모여 그날의 훈련 방향과 선수들의 몸 상태 등을 체크한 다음 필드로 나간다. 흥미로운 건 수비와 타격 훈련을 시작하기 전 선수 개인별 맞춤 훈련을 따로 한다는 부분이다. 수비 훈련만 봤을 때 3루수는 강한 타구에 대응하는 법을, 유격수는 좋은 움직임을 위해 민첩성이나 순발력을 향상 시키는 운동을, 2루수는 더블플레이 때 피봇 동작하는 부분 등을 세밀하게 접근해 나간다. 그런 개인별 맞춤 훈련을 마친 다음 팀 훈련을 통해 배운 부분을 활용해 나가는 게 신선한 방식이었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한 훈련은 오후 2시 전에 끝난다. 훈련이 끝났다고 하루 일과가 종료되는 게 아니다. 또 다시 코칭스태프의 회의가 이어진다.
손 코치는 미니 캠프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훈련 태도 및 복장 관련해서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룰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선수들이 처음부터 몸에 익혀야 할 부분들을 미리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선수 생활 은퇴 후 2군에서 수비 코치를 맡았던 손 코치는 한동안 심적으로 부대끼는 일들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최고참 선수로 후배들을 대했을 때랑 코치로 후배들을 대하는 상황들에 차이가 있었다. 나도 선수들에게 코치보단 선배로 다가가고 싶었는데 막상 현실은 코치 손시헌이 존재하게 되더라. 이전 이종욱 코치가 먼저 은퇴 후 코치 세계에 뛰어들었을 때 내게 “(코치가 돼) 들어와서 보면 또 다른 세상이란 걸 느낄 것”이라고 말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때는 막연히 짐작만 했는데 내가 해보니 당시 이 코치가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C 다이노스는 2020년과 2021년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020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팀이 이듬해에는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며 7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손 코치는 당시 일부 선수들의 일탈로 팀은 물론 프로야구 전체가 흔들렸던 상황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프로야구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불미스러운 일들과 그 일에 연루된 선수들은 무조건 죄송하다 잘못했다는 말보다는 좀 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과와 반성은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거듭 반복한다고 해서 지칠 일도 없다. 팬들이 진심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반복해서 자신들의 달라진 마음가짐을 전해야 한다.”
손 코치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구단 안팎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들었던 코치들, 선수들과의 이별이었다. 특히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 나성범의 KIA행은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NC 창단 멤버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후배와의 이별은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많이 아쉬웠다. 계약 진행 과정의 자세한 내용까진 잘 모르겠지만 성범이랑 몇 차례 식사를 하며 어느 정도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구단 상황도, 성범이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으로 지켜봤을 때 아쉽다는 말 외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더라. 프랜차이즈 스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팀에 남았다면 영구 결번 1호가 됐을 선수인데 그런 선수를 잡을 수는 없었을까 싶다. 나를 포함해 NC의 모든 구성원들 목표는 NC를 9개 팀 모든 선수들이 뛰고 싶어 하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실 근면의 아이콘인 성범이를 놓친 건 정말 아쉽다.”
손 코치는 나성범이 KIA와 6년 150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NC에서도 충분히 오퍼가 가능한 계약 규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배가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떠난 선수에게는 행운을, 우리 팀에 새로이 합류한 손아섭과 박건우한테는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 환영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는 현실에,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야구인이기 때문이다.”
손 코치는 나성범이 NC를 떠났어도 후배와의 인연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시헌이 형”하며 전화를 하는 나성범의 목소리가 그립다고 한다. 나성범이 새로운 팀에서 더 큰 동기부여를 안고 잘 적응해나가길 바란다는 진심을 전하기도 했다.
“아마 성범이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성범이 아닌 더 업그레이드 된 나성범으로 올 시즌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나도 두산에서 NC로 이적했을 때 실력적인 면에선 기대에 못 미쳤을지 몰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 계기가 됐다.”
손 코치는 현재 KBO리그가 여러 가지 위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야구를 좋아했던 팬들의 관심사가 바뀐 부분이 야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야구는 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언제쯤 야구장에 가득 울려 퍼지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을까 싶다. 모든 야구인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면서 야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고 싶은, 안 보면 궁금한 그런 야구를 해야 팬들을 야구장이나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나 또한 한국 야구를 위해 여기 있는 동안 많은 걸 보고 배우고 흡수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
미국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