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지대 아닌 1야당 전격 입당 승부수 통해, 홍준표 추격 따돌리고 김건희 리스크 극복, 단일화가 최종 하이라이트
#제1야당 택한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 당선인은 헌정 사상 첫 0선·검사 출신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윤 당선인은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 직을 자진사퇴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29일 오후 1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제20대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정계 입문을 공식화했다. ‘대선을 통해 정치 데뷔를 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윤 당선인의 대선 출마 선언은 정치권 예상 범위 안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정치 입문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렸다. 국민의힘 입당설과 제3지대론이 제기되며 향후 행보를 둘러싼 궁금증이 증폭됐다. 그러던 지난해 7월 30일 윤 당선인은 국민의힘 당사를 기습 방문해 입당 의사를 타진했다. 때마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방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당사를 방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힘 선대위에서 활동한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장면을 ‘첫 번째 결정적 장면’으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선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입문한 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제3지대론을 채택한 경우가 있었다”면서 “그 결말은 모두 자연스러운 도태였다”고 했다. 그는 “윤 당선인의 입당은 제3지대론에 대한 각종 소문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확실하고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선거 공학을 논할 때 간과하는 요소가 있다”면서 “바로 돈”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대권 출마 의사를 무른 적이 있다”면서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입당을 선택해 제도권 정치에 편입한 것은 현실적인 부분을 살펴봤을 때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제1야당에 편입하면서, 경선이라는 정글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금전적인 부분은 당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 입당 자체가 상당히 결정적인 한 수였다”고 했다.
#‘무야홍’ 맹추격 뿌리치고…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의힘 입당을 선언하며 제도권 정치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생애 첫 선거로 대선을 점찍은 전직 검찰총장의 대선 경선 과정은 험난했다. 2030 사이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항마가 떠오른 까닭이다. 바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홍 의원은 제19대 대선에서 낙선한 뒤 먼 길을 돌고 돌았다. 자유한국당 당권을 잡은 뒤엔 지방선거에서 패했다. 제21대 총선에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국민의힘으로 돌아왔다. 험난한 정치 역정을 거친 홍 의원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다시 신드롬 중심에 섰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제19대 대선에서 다소 거칠다는 평가에서 더 나아가 각종 막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홍 의원의 입담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사이다’를 추구하는 젊은 층의 시대정신과 묘하게 맞물렸다”고 했다.
홍 의원은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신드롬을 일으키며 2030세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 표심이 제20대 대선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가운데 홍 의원이 일으킨 돌풍은 정치권 태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정치 초보 입장에서 첫 검증대에 오른 윤 당선인은 각종 논란 중심에 섰다. ‘손바닥 왕(王)자’ 논란,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 등이 윤 당선인 발목을 잡았다. 각종 논란이 불거지는 사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은 홍 의원이 윤 당선인을 맹추격하는 양상이 됐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결과는 지난해 11월 5일 발표됐다. 2030세대 지지를 등에 업은 홍 의원과 6070세대에서 ‘정권심판 적임자’ 평가를 듣던 윤 당선인이 맞붙었다. 당원투표 50%와 국민 여론조사 50%로 진행된 대선 경선에서 윤 당선인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에게 열세를 보인 윤 당선인은 당원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으며 대선 후보 자격을 얻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석열 후보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홍준표 캠프 소속이던 국민의힘 관계자는 “만약 경선이 일주일만 뒤에 치러졌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승부였다”고 아쉬워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는 “2030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홍준표 의원의 바람을 6070세대를 규합하며 막아낸 윤 후보의 승리가 단순한 운일지 아니면 실력일지는 대선 본선에서 판가름 날 요소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킹메이커’ 김종인과 쿨한 결별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제1야당에 입당한 뒤 대선 후보 자격을 얻은 윤석열 당선인의 다음 행보는 선대위 구성이었다. 그리고 ‘별의 순간’을 언급하며 윤석열 대망론에 힘을 실은 바 있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존 윤석열 캠프 인사들을 직격하는 발언을 지속했다. 사실상 선대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김 전 위원장 포지션을 둘러싼 알력다툼으로 풀이됐다.
선대위 인선을 둘러싼 갈등관계는 이뿐 아니었다. 일부 선대위 인사 인선 과정에 있어서 윤 당선인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갈등을 겪었다. 돌이킬 수 없던 선을 넘은 듯했던 윤 당선인과 이 대표의 갈등은 지난해 12월 3일 울산 회동으로 극적 봉합됐다. 윤석열-이준석 갈등이 해소된 뒤 국민의힘 중진급 고위 인사들은 선대위 화룡점정 차원으로 김 전 위원장 설득에 돌입했다. 이준석 대표는 김 전 위원장 필요성을 윤 당선인에게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 결과 12월 발표된 윤석열 선대위 명단에 김 전 위원장은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1940년생 ‘킹메이커’가 상임선대위원장 직을 맡은 이준석 당대표, 김병준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삼각편대를 이루며 선대위 심장부에 합류한 셈이었다. 하지만 윤 당선인과 김 전 위원장의 동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22년이 밝은 뒤 각종 실언 논란이 불거지며 윤 당선인 지지율이 떨어졌다. 위기감이 팽배하던 당시 윤 당선인은 김 전 위원장에게 선대위 전권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선대위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조직 쇄신에 돌입했다. 그러나 템포가 빠른 김 전 위원장의 일방적 선대위 쇄신에 윤 당선인은 “이건 나에 대한 쿠데타”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1월 3일엔 김 전 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 전 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윤 당선인에게)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 연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과거 여러 번 대선을 경험했는데, 후보가 선대위에서 해주는 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늘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김 전 위원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윤 당선인은 장고 끝에 1월 5일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 해촉 발표를 예정했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나간다면 내 발로 나가겠다”며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그 정도 정치적 판단 능력이면 더 이상 나하고 뜻을 함께할 수 없다”고 윤 당선인을 작심 비판했다. 윤 당선인과 김 전 위원장이 ‘별의 순간’을 논하다가 결별을 한 순간이었다.
윤 당선인과 김 전 위원장 결별은 국민의힘 관계자들 사이에서 대선 전 결정적 장면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 시절 고위 당직을 지냈던 한 관계자는 “윤 당선인은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한 뒤 비로소 혼자 일어서는 방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정 인물에게 의존하는 조직 운영이 아닌, 미숙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조직을 끌고 나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순간적으론 아픔을 겪었을지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밑거름이 됐다. 전화위복인 셈”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김건희 7시간 녹취록 공개
연초부터 윤석열 당선인이 선대위 쇄신 등 내부 교통정리에 집중하는 사이 대선 경쟁엔 불이 붙었다. 제20대 대선을 수놓은 ‘네거티브 경쟁’이 절정을 향했다. 네거티브 경쟁이 펼쳐지는 사이 윤 당선인 측에서 주로 의혹 중심에 서는 대상은 부인 김건희 씨였다. 김 씨는 이력서 허위이력 기재 논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무속인 연결고리 의혹 등 수많은 구설에 휘말렸다.
그러던 1월 12일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김건희 씨 육성이 담긴 7시간 분량 녹취록 내용을 방송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1월 13일 국민의힘 선대본은 MBC를 상대로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법적대응에 나섰다. 1월 14일 법원은 국민의힘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김 씨 수사 사건 관련 발언, 특정 언론사 기자 등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소 강한 어조 발언, 정치적 견해 등과 관련 없는 일상생활에서 지인들과 대화에서 나올 수 있는 내용에 불과한 것은 방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26일 김 씨는 허위이력 기재 의혹과 관련해 사과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그 후로 김 씨에 대한 여론은 악화돼 있던 터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녹취록 공개에 대한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제1야당과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가처분신청을 통해 분쟁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김건희 녹취록 방송’은 1월 16일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엔 김 씨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육성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러나 해당 방송분이 방영된 뒤 여론 반응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 씨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왔지만 옹호론도 급부상했다. 이날 방송 전까지 수백 명에 그쳤던 김 씨 팬카페 회원이 수만 명대로 폭증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MBC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녹취록 방영은 이번 대선 주요 분기점이었다”면서 “해당 녹취록이 방영되면서 김 씨를 중심으로 불거진 논란 일부에 대한 해명이 자연스럽게 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방송이 방영된 뒤엔 되레 김 씨에 대한 공세가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설 연휴를 전후로 ‘네거티브 공수교대’가 이뤄진 원인이 됐다”면서 “유권자들이 양 진영 네거티브에 둔감해지기 시작한 포인트 역시 이 방송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끝내 성사된 야권 단일화
윤석열 당선인의 정치 입문기는 험난했다. 입당을 한 뒤 경선에서 승리하고, 선대위 내홍을 겪은 다음엔 부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응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 끝엔 최후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야권 단일화였다. 1월 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내가 정권교체 주역이 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안 대표는 줄곧 단일화 의사가 없다는 뜻을 공언했다. 여기에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가 아니라면 단일화 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지속해서 피력했다.
이후 야권 단일화는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던 2월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후보등록을 마친 뒤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과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들은 여론조사 방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측은 후보 간의 담판 방식 혹은 ‘안철수의 결단’을 통한 단일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었다.
이튿날 안 대표는 “이것(여론조사 방식 단일화)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제안”이라면서 “어떻게 공당 후보에게 중간에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 있냐”면서 격앙된 감정을 토로했다. 2월 20일 안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내 길을 가겠다”면서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그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단일화 협상을 놓고 폭로전을 벌였다.
이대로 결렬된 줄 알았던 단일화 물꼬는 3·1절을 기점으로 트였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는 중 안 대표가 “어떤 후보든 아젠다에 대한 의논이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만날 의향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3월 2일 선관위가 주최하는 마지막 TV토론에서 안 대표는 윤 당선인과 같은 붉은색 넥타이를 착용해 많은 이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단일화 시그널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설마는 사실이 됐다. TV토론을 마친 뒤인 3월 3일 새벽 윤 당선인과 안 대표는 서울 논현동 모처에서 회동했다. 이날 회동 결과물로 야권 단일화가 성사됐다.
단일화 협상 과정은 수차례 삐걱거렸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 확고한 단일화 의지는 변치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몇 차례 단일화가 결렬 국면에 처한 상황에서도 일부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선 “단일화는 100% 이뤄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단일화 협상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의도치 않았던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윤석열 선대위와 안철수 선대위 사이 이어져 있던 핫라인이 공고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했다.
함경우 국민의힘 선대위 공보단 부단장은 당내 경선부터 야권 단일화까지 일련의 과정을 돌이키며 “최종 하이라이트였던 단일화는 선거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함 부단장은 “단일화로 호남이 결집했다는 ‘단일화 역풍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야권 단일화는 투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일원화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단일화가 염원이었고,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대표가 그 염원에 응하면서 정권교체라는 결과물이 따라온 셈”이라면서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안철수 대표의 비전과 경험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당선인은 당선을 확정한 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빠른 시일 내에 합당을 마무리 짓고 외연을 넓히는 더 성숙한 정당이 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야권 단일화로 정권교체에 일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3월 10일 통화에서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장면과 관련해 “최종 개표 결과가 0.7%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5가지 터닝 포인트 모두가 승패를 가늠하는 승부처였다고 본다”면서 “당내 경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위태위태한 상황에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재능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