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히키코모리 얽힌 사건 등 너무 깊은 관계가 화근…때론 남보다 못한 관계 속 가장 손쉬운 희생양 되기도
사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살인사건 비율이 낮은 나라 중 하나다. 2018년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일본의 살인율은 10만 명당 0.26명으로 싱가포르(0.16명) 다음으로 낮았다. 참고로 미국은 4.96명이다.
장기추이를 살펴봐도 살인사건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일본 경찰청이 파악한 2016년 살인사건(미수 포함)은 770건으로, 1979년에 비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족 간의 살인사건은 오히려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20년 전에는 친족 간의 살인사건이 전체 살인사건의 40%였지만 근래는 55%로 뛰었다.
일례로 2018년 가고시마현에서는 가해자가 친족 4명과 인근 주민 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사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같은 해 미야자키현에서도 일가족 5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으로 추정되던 인물은 친족이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진상은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NPO법인 ‘월드오픈하트’의 아베 쿄코 이사장은 지금까지 2000건 이상의 가해자 가족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반적으로 무차별 살인이나 엽기 살인 같은 선정적인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반면, 친족 간의 살인은 사회적으로 묻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아베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사건은 가족관계가 너무 소원하거나 혹은 반대로 친밀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후자는 “간병 및 육아 피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 등 가족의 장래를 비관해 동반 자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인은 ‘일본의 친족 간 살인사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이가 좋았던 가족이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악화돼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아베 씨는 “특히 일본인들은 가정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타인과 상담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아 정신적 한계에 이르게 된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가족관계가 얕아서 일어나는 살인은 다른 범행 동기와 마찬가지로, 억울하고 분한 ‘원한’이나 ‘금전적 목적’이 계기가 된다. 부모의 재혼으로 갑자기 형제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 가족이라 묶여도 교류가 희박한 관계가 있다. 또 경제적 사정 때문에 처가에 얹혀살게 됐으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거나, 조부모와 함께 살지만 대화가 거의 없는 손자·손녀들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대개는 가정 내에서 무방비하고 노리기 쉬운 가족이 희생된다. 가족이라 불려도 가해자에게 있어서는 정서적으로 타인과도 같은 존재다. 악의가 싹틀 때 가장 가까이에 사는 가족이 피해를 당하고 만다.
친족 간 살인사건의 유족은 피해자 가족이면서 가해자 가족이다. 이와 관련, 아베 씨는 “어느 쪽의 정체성이 강한지는 관계성에 따라 실로 다양하다”면서 “가해자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원하는 가족도 있고, 심경은 복잡하지만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의 신원인수인(보증인)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갱생 보호를 거절하기가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갱생지원 제도가 충분하지 않아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은 “‘가족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무리한 가치관이 비극을 반복하는 악순환을 낳았다”고 언급했다. “문제가 생겼을 땐 공공기관에 도움을 청하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간병 피로가 심하다면 간병인을 지원하는 제도를, 육아로 피폐해져 있다면 ‘일시돌봄’ 제도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만큼 가족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주간여성은 “가족 간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 정비와 함께 가족 개개인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가족 간이라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타인이라면 참았을 감정인데, 가족 앞이라 터트리고 후회한 경험은 없는가.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가 허용될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내가 참을 수 있다고 해서 다른 가족도 잘 참아낸다는 법은 없다. “남에게 하지 않는 일은 가족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한편, 아베 씨는 “가족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땐 다른 친족을 끌어들이지 말고,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상담할 것”을 권했다. 중재자로서 관계가 가까운 사람이 적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친족도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오히려 친족을 끌어들임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킬 위험이 높으니, 가족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기관에 의뢰하는 편이 좋다”는 조언이다.
장기불황 그후…사회문제와 밀접한 일본 친족 살해
#간병 피로
일찍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인이 노부모나 배우자를 간병하는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른바 ‘노노개호(老老介護)’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모두 65세 이상인 경우를 일컫는다. 간병에 지쳐 심신이 무너진 나머지 동반자살을 하거나, 피간병인에게 폭력을 행사해 숨지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히키코모리
일본의 경우 1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그 절반은 중장년층이다. 히키코모리가 장기화되면서 부모는 퇴직하고 수입원도 끊긴 상태. 자식 뒷바라지에 지쳐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빈곤 동반자살
중산층이 두터웠던 일본이지만, 장기불황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2008년 리먼 쇼크 경제불황으로 빚더미에 앉은 남성이 모친과 동반자살 한 사건이 유명하다.
#아동학대
2019년 일본 아동상담소가 대응한 학대 건수는 무려 19만 건 이상. 29년 연속으로 증가하고 있다. 관련 사망 사건은 연간 60~90건 정도다. 교육이라는 허울 아래 ‘과도한 폭력’을 휘두르다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곤 한다. ‘육아 방치를 해도 아이는 자란다’고 착각하는 부모가 많은 것도 문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