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오픈채팅방에 사기꾼도 잠입…일명 ‘텟판’으로 불리는 손쉬운 대상 또 속여
지난해 11월 말, 일본에서는 금융상품 거래법 위반으로 남녀 7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세 차익 프로그램인 쥬빌리에이스와 젠코 등으로 고배당을 받을 수 있다’고 투자를 권유해 무려 650억 엔(약 6800억 원)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범행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사건의 주모자 역시 과거 비슷한 사기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 공교롭게도 사기 피해자 또한 비슷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대체 어떤 사연인지, 그 실태를 소개한다.
일본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특수사기 인지 건수와 피해액은 최근 감소 경향에 있다. 일례로 2014년 피해액은 566억 엔(약 5929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였지만, 2020년에는 약 절반으로 줄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반복해서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속이는 쪽의 동향을 살피면, 사기 피해자를 일부러 노리고 접근한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이스피싱 사기에 쓰이는 데이터 중에는 이미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명단이 존재한다. 한번 속은 피해자에게 “돈을 되찾을 수 있다”고 접근해, 새로운 사기를 치는 것이다.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쉽게 속는 경향이 있어 사기꾼들은 피해자를 ‘텟판(틀림없이 속는다는 뜻)’이라고 부르며, 손쉬운 ‘먹잇감’으로 얕잡아본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명단이 없어도 피해자들이 알아서 모아 주는 곳이 있다. 바로 모바일메신저 오픈 채팅방이다. 지바현에 사는 자영업자 야마모토 씨(가명·50대)는 재작년 지인으로부터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권유받았다. 지인은 “이미 3000만 엔 이상을 벌었다”면서 ‘확실한 투자처’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삶을 뽐내는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순순히 믿은 야마모토 씨는 예금 300만 엔과 함께 100만 엔까지 대출받아 ‘확실한 투자처’로 현금을 전달했다. 투자처 남성은 웹사이트 주소를 보내왔고, 암호화폐 시세가 쭉쭉 올라가는 차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야마모토 씨는 “한때 차트가 700만 엔까지 올라가 현금으로 바꾸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투자처 남성은 “지금 현금화하면 아깝다. 분명히 더 오른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2021년 11월 말, 야마모토 씨가 투자한 암호화폐를 둘러싸고 여러 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투자한 돈이 실제로는 운용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인도 “속았다”며 울며 사과했지만, 한통속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사건 주모자들은 모집한 현금을 투자는커녕 SNS(소셜미디어)에 돈 자랑, 명품 자랑하는 데 썼다”고 한다. 아울러 투자한 사람이 낸 돈을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수법’으로 오랜 기간 피해자들을 속인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을 취재한 사회부 기자는 “체포된 주모자급 용의자가 이른바 ‘멀티의 제왕’으로 불리며 이전에도 비슷한 사기사건을 일으켰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사건의 피해액은 무려 650억 엔(약 6800억 원)대로 추정되나,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당국은 보고 있다. 피해자 수는 최소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순간 400만 엔을 날리게 된 야마모토 씨는 사기사건의 피해자들이 모이는 SNS상 그룹채팅에 빠져들었다. 그는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채팅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간단히 말하면, 사기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모여 ‘돈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공간이었다.
야마모토 씨가 참가했을 때 유저 수는 1500명 정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니 ‘묘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잃었던 돈을 만회했다”는 글을 봤고, 야마모토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쓴이와 쪽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회할 수 있다던 얘기는 ‘다른 확실한 투자처를 알려줄 테니 100만 엔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기 피해자들을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야마모토 씨처럼 채팅을 통해 새로운 투자처를 소개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중 몇 명은 벌써 돈을 건넨 사례도 있었다. 채팅에 참여한 1500명 가운데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사기꾼’이 존재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이 진짜이고 거짓인지 모르는 가운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피해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악질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몇 번을 속아도, 또 다시 사기꾼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드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주간포스트는 “피해자가 늘면 늘수록 사기꾼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고, 새로운 피해자가 생겨난다”면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일반 소비자의 의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잘 모르는 투자에는 결코 손대지 마라”는 조언이다. 아울러 “최근에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투자사기 범죄가 늘고 있는 만큼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강습회나 온라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코시국 용돈 줄고 알바도 줄고…’ 대학생들 암호화폐 투자사기에 ‘홀딱’
일본에서는 대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투자사기가 극성이다. 주로 “AI(인공지능)로 암호화폐(가상화폐)를 운용해 높은 시세차익을 내주겠다”는 말로 유혹한다. “수요가 급상승하는 암호화폐를 지금 당장 구입해 가격이 오른 타이밍에 팔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꼬임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Z세대(1997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59%,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의 46%가 “암호화폐에 투자함으로써 부유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학생들이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가계가 어려워져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비 등이 줄어든 점이 꼽힌다.
비교적 디지털화폐에 저항감이 덜한 세대가 관련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금융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 IT 저널리스트이자, 세이케이대학의 다카하시 아키코 교수는 “극단적으로 이율이 좋은 투자에는 내막이 있는 법”이라며 “암호화폐 등 구조를 잘 모르는 돈벌이에는 주의하고,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 꼭 상담하라. 투자할 때도 최소한 빚을 내면서까지 손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