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때 교통사고, 선수 시절 부상 이겨낸 ‘스마일맨’…세계랭킹 1위 이어 세계선수권 정상 등극
우상혁은 지난해 7월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참가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왔다. 올 초부터 돌입한 유럽 투어에서 자신이 올림픽에서 경신했던 한국 신기록(2m34)에 준하는 기록을 지속적으로 내왔다. 그는 지난 2월 6일 체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2m36을 넘으며 개인 최고 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을 또 하며 우승했다. 2021년 11월부터 시작한 시즌에서 우상혁은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이어 2월 16일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2m35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1위 신분으로 참가한 실내육상선수권, 자신감이 있었던 우상혁은 예선에서 경쟁자들이 시도한 2m15는 뛰지도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2m20, 2m24, 2m28을 연달아 가볍게 성공한 그는 3차시기 만에 2m31까지 넘었다. 이어 2m34를 1차 시기에 넘었고 경쟁자들이 모두 바에 걸리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는 2m37이라는 기록에 도전했으나 2차시기까지 실패했고 특유의 경례 세리머니와 함께 대회를 마무리했다.
#'기대주'에서 세계 랭킹 1위까지
도쿄 올림픽에서 4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우상혁은 한국 육상의 '깜짝 스타'는 아니다. 고교 시절부터 높이뛰기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유망주, 또는 기대주로 불리며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장기간 '기대주'로만 불렸다.
그가 처음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고교생이던 2013년. 그는 세계청소년 육상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육상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믿기 힘든, 그래서 더 기쁜 결과였다. 대한육상연맹은 그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MVP를 고등학생 우상혁에게 수여했다. 우상혁은 이듬해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기대감을 높였다.
우상혁의 등장은 육상연맹의 기조와도 맞았다. 세계무대에서 성과를 간절히 바랐던 육상계의 초점은 허들이나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등 도약 종목에 맞춰져 있었다. 단거리 달리기나 마라톤 등은 현실적으로 세계의 벽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유망주' 우상혁은 세계육상센터에서 세계적인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등 육상연맹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성인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홈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10위,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결선 진출에 실패하며 26위를 기록했다. 황폐화된 한국 육상에서 개막 이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생애 처음 참가한 리우 올림픽 이후 우상혁은 한 단계 성장했다. 2017년 들어 2m30을 넘어서며 자신의 기록을 끌어올렸다.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세계육상선수권 출전권도 따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육상 종목에서 몇 안 되는 메달을 안겼다.
리우 올림픽에서 성장을 도모했던 우상혁은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인 도쿄 올림픽에서 꿈에 그리던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올림픽 4위와 세계랭킹 10위로 2021년을 마무리했다. '월드클래스'로 올라선 우상혁은 거칠 것이 없었다. 2022년 유럽 투어에 나서며 세계랭킹 1위, 세계선수권 우승까지 달성했다.
#역경 이겨내고 월드클래스로
한국 육상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한 우상혁에게 그동안 완만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불리한 신체 조건을 극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상혁은 양 발의 사이즈가 10~15mm 다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택시에 발이 깔리는 사고를 당한 탓이다. 오른쪽 발바닥을 50바늘 정도 꿰매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성장기에 겪은 사고로 오른발이 왼발에 비해 덜 자랐다. 이에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양발 밸런스를 잡는 훈련에 집중한다.
일각에서는 작은 키를 약점으로 꼽기도 했다. 우상혁은 188cm의 신장으로 장신이지만 높이뛰기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93cm 내외다. 국제무대에선 경쟁자로부터 '넌 작아서 안 돼'라는 트래시 토킹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기록을 높여가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깜짝 스타 반열에 오른 2020 도쿄 올림픽, 하지만 대회 이전까지 우상혁은 슬럼프를 겪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시기 부상을 당하며 저조한 기록을 냈던 것이다. 2017년부터 2m30을 넘어서며 한국 신기록을 향해 달려가던 그가 갑자기 멈춘 이유다.
지속적으로 대회에 참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2m28을 기록한 이후,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2m19(7위), 이어진 국내 대회에서 2m20 초반대 기록을 냈다. 우상혁 자신도 이때를 "방황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수년간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매일을 술로 지새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김도균 코치를 만나며 우상혁은 마음을 다잡았다. 혹독한 훈련을 거쳤으며 점차 기록을 끌어올렸다. 2020 도쿄 올림픽 출전조차 장담할 수 없던 상황에서 2021년 6월 올림픽 출전을 위해 포인트 산정 마지막 날 다시 바 앞에 섰다. 극적으로 자신의 최고 기록인 2m31을 넘어섰다. 올림픽 자력출전 기준 기록인 2m33에는 못 미쳤지만 세계랭킹 31위에 안착, 32인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어진 올림픽에서 활약은 알려진 대로다.
#세리머니와 긍정적 성격
우상혁은 특유의 밝은 태도로도 눈길을 끌었다.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고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준비 과정에서 웃는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고 바를 넘고 나서는 마음껏 소리치고 가슴을 두드리고 환호를 유도하는 등 세리머니를 펼쳤다. 우상혁은 "기분이 좋아야 더 가볍게, 높이 뛸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그는 많은 시선이 쏠린 큰 무대에서 유독 더 좋은 기록을 내왔다.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서도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대회 직전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육상선수권에서 2m29를 넘으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개인 최고기록이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고 대회 본선에서는 한국 신기록까지 경신했다. 올림픽을 치르고 돌아온 이후에도 “별로 떨리지 않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개성 있는 옷차림은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올림픽에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우상혁의 옷차림이 화제를 모았다.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으로 대외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스니커 매니아 유튜브 채널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영상에서 “운동화 150켤레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상혁은 어린 시절부터 밝은 성격을 자랑했다. 2017년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는 갑작스레 삭발을 하고 나타나 좌중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생애 처음 참가한 올림픽 무대에서도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특유의 당돌하고 밝은 성격은 중학생 시절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에도 육상선수였던 그를 후원하는 대전지역 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정 형편이 어려울 때 장학생으로 선발해 주셔서 큰 힘이 됐다.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내용에 글을 남겼다. 그만의 '감사의 글'은 1회에 그치지 않았다.
'짝발'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이다. 사고를 당하고 수술을 한 발이 오른발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높이뛰기에서 마지막 도약을 하는 발이 왼발이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 세계선수권 우승이라는 결과를 대한민국 최초로 손에 넣은 우상혁의 시선은 다음 대회를 향해 있다. 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9월 개막하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사냥이 목표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관식도 꿈꾼다.
그의 오랜 목표 기록은 2m38이다. 자신의 신장보다 50cm 이상을 뛰어넘겠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소셜미디어 아이디가 'woo_238'일 정도다.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귀국길, 그의 입에서 '2m40'이라는 목표가 나왔다. 상승세를 지속하는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