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출신 감독 선임 ‘리얼블루’ 정책 실패 거듭…이병근의 푸른색은 다를지 주목
#위기 극복 실패한 박건하 감독
수원의 리그 순위는 9경기를 치른 현재 1승 4무 4패, 승점 7점으로 11위다. 이대로라면 K리그2 승격 후보와 승강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하는 순위다. 지난해 6위를 차지한 구단이자 K리그 명문으로 불리는 수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순위다.
박건하 감독은 지난 시즌 말부터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반기까지 돌풍을 일으키며 선두 경쟁에도 뛰어들었지만 7월부터 열린 20경기에서 챙긴 승리는 불과 4승이었다. 팬들 사이에선 만족스럽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한때 상위권을 위협하는 팀이었지만 시즌을 마무리할 때 성적은 전체 순위에서 절반 이상인 파이널A에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박건하 감독이 수원 부임 이후 처음부터 흔들렸던 것은 아니다. 2020시즌 후반기부터 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팀의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20년 말 카타르 버블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일부 멤버들이 빠졌음에도 어린 선수를 위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중국 귀화 선수들이 포진한 광저우 에버그란데,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버티는 빗셀 고베 등을 누르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16강에 이어 8강까지 진출했고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2021년 상반기 돌풍은 알려진 대로다.
승승장구하던 박건하 감독의 수원이 흔들린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기대를 갖고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 핵심 미드필더 고승범의 군입대, 정상빈의 해외 진출 등이 수원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박 감독은 한 번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약 30경기를 치르면서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실패한 '리얼 블루'
수원 삼성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다. 1983년 창설한 K리그에 다소 뒤늦게 합류(1996년)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트로피를 수집했다. 리그 합류 3년 차에 첫 리그 우승(1998)을 차지했고 2008년까지 네 개의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리그 내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이 모두 수원으로 향하고 갖가지 트로피를 수집하는 모습에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빗대 '레알 수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원의 리그 우승은 2008년 이후 멈춰 있다. 일각에서는 수원의 우승 실패가 '리얼 블루'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고 말한다.
수원은 1대 김호 감독, 2대 차범근 감독 이후부터 구단 출신 감독을 선임해왔다. 구단에서 선수나 코칭스태프로 경험이 있는 인물을 감독직에 앉혀 구단의 색깔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사령탑에 오른 인물들이 윤성효·서정원·이임생·박건하 감독이었다. 윤성효·서정원·박건하 감독은 모두 선수시절 수원의 주장을 지냈으며 이임생 감독은 6년간 코치 생활을 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수원의 리얼블루 정책 시행 이후 리그 우승은 재현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팬들은 정책의 실패를 지적한다. '구단 출신' 인물을 고려하다보니 인재 풀이 넓지 않다는 것이다. 또 팬들의 사랑을 받는 '레전드'들이 감독으로서 실패하며 지탄을 받는 부작용도 일어났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야 할 레전드가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리얼블루 정책 이후 선임된 인물들은 수원 부임 당시 1부리그 감독 경력이 없는 지도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윤성효 감독은 대학 무대에서, 이임생 감독은 해외 리그(싱가포르), 박건하 감독은 2부리그에서만 지휘봉을 잡았던 지도자들이었다. 서정원 감독은 이전까지 코치 생활만 하다 수원에서 처음 감독직을 맡았다.
반면 구단의 초대, 2대 감독이었던 김호·차범근 감독은 당대 최고 감독으로 불렸다. 이들은 구단 부임 당시 이미 다년간의 감독 경력이 있었고 A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까지 경험한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갖가지 대회에서 우승을 이루며 구단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상윤 MBC 스포츠해설위원은 "그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오랫동안 수원이 경력이 적은 감독을 선임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 김호 감독, 차범근 감독은 누구나 인정하는 지도자였다. 우승을 원한다면 당연히 모셔야 하는 인물들이었다"면서 "물론 경력이 모든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이 위기를 맞거나 계획이 어긋날 경우 팀을 지도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근 감독에 거는 기대
수원은 박건하 감독과 결별 이후 팀의 7대 사령탑으로 이병근 감독을 선임했다. 그간 수원의 감독 선임에서 크게 궤를 벗어나지 않는 인사다. 선수로서 수원에서 10년 이상 활약하며 주장을 맡기도 했다. 지도자로서도 수원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다. 누구보다도 '수원색'이 짙은 인물이다.
하지만 다수 전임자들과 달리 이병근 감독은 프로무대 1부리그에서 지도 경력이 있다. 서정원 감독이 팀을 떠났을 당시 수원 코치로 재직 중이던 그는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대구 FC에서 두 시즌간 감독 생활을 했다. 2020시즌에는 5위를 기록했고 2021시즌에는 3위에 팀을 올려놓으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성공했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변화를 예고했다. 그의 입에서 먼저 나온 이름은 염기훈이다. 이 감독은 "염기훈이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염기훈은 수원에서만 400경기 가까이를 소화한 레전드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2년 가까이 경기장에서만큼은 팀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수원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병근 감독을 선임한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대구에서 재계약을 하는 데 실패했지만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대구 감독 시절 경험을 살려 수원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중계방송을 할 때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수원은 잘해야 하는 팀이다. 팬들의 기대도 크고 수원이 잘해야 리그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병근 감독 체제의 수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