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빅리그 경험 뒤 노련미 더해져…‘퍼펙트’ 걸린 폰트 내린 건 선수 의지도 반영”
현재 SSG는 시즌 초반 선발 투수로 큰 활약을 펼친 노경은이 손가락 골절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다. 최정과 이재원도 부상으로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추신수가 복귀하긴 했지만 그가 부상자명단에 오르는 동안 공교롭게 팀 타선의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그럼에도 SSG는 단독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SSG를 이끄는 김원형 감독은 팀이 1위를 달리고 있는 배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김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미국 다녀와서 더욱 만개한 김광현
불꽃같은 4월 한 달을 보낸 SSG 랜더스. 김원형 감독은 “요즘 잠은 잘 주무시느냐”는 안부 인사에 “선수들 덕분에 숙면을 취하고 있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팀이 계속 단독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으로 선발 투수의 안정을 첫 번째로 꼽았다.
“선발 투수들의 호투가 타자들한테 득점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중간, 불펜진도 시범 경기 때는 불안 요소가 눈에 띄었는데 막상 시즌 들어오니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투타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지면서 4월 한 달간 성적이 좋았던 것 같다.”
SSG는 지난해 주축 선발 투수인 문승원, 박종훈이 팔꿈치 수술로 이탈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윌머 폰트-김광현이란 원투펀치가 자리를 잡았고, 5선발 오원석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선발 로테이션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 야수들한테도 심적 부담을 덜게 해주고 있는 것.
김원형 감독한테 현재 호투를 펼치고 있는 김광현의 ‘미국 가기 전과 후’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김 감독은 무엇보다 김광현의 노련미를 손에 꼽았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노련미가 많아진 것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구위와 힘으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구종도 다양해졌고, 다양한 구종에 강약 조절을 더한다. 한마디로 투수로서 만개했다는 느낌을 준다.”
#방출 선수 신화 쓴 고효준의 부활
김 감독은 방출 선수의 또 다른 신화를 쓰고 있는 고효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국 나이로 불혹인 SSG의 좌완 불펜 고효준은 200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SK 와이번스(현 SSG),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를 거쳐 2021년 LG 트윈스에서 뛰었다. LG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그는 시즌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절치부심 끝에 SSG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SSG 유니폼을 입은 그는 올 시즌 재기에 성공하면서 감동적인 스토리를 양산 중이다.
김 감독은 고효준의 호투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효준이 하고는 SK에서 같이 지냈던 터라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그동안 좋은 구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불펜에서 필승조 역할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효준이가 다시 SSG로 돌아오게 됐고, 나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내가 직접 얘기하지 않고 투수 코치와 배터리 코치와의 대화를 통해 시범 경기 때부터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자고 말했다. 그동안 고효준하면 구속이 빠른 투수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구위는 좋다. 그런데 반대로 제구가 안 되니 변화구에 집중하면서 투구 패턴을 바꿔보자는 내용이었다. 그걸 효준이가 잘 받아들였고, 시범 경기 때부터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직구의 스트라이크 비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김 감독은 2스트라이크 이전까지 변화구 위주의 투구를 하기를 바랐다. 즉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에게 2스트라이크 전까지 변화구 사인을 요청했고, 고효준도 포수 사인에 따라 변화구에 집중했다. 그게 적중하면서 고효준은 구위는 물론 제구가 안정되었고, 어느새 마운드에서 더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효준이가 삼진 아웃을 잡은 후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더라. 그동안 얼마나 잘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많은 한이 쌓였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 효준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경은의 이탈이 뼈아프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올 시즌 선발 투수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노경은이 오른손 검지 골절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다. 노경은은 2021시즌을 마친 뒤 롯데에서 방출됐고 올 시즌부터 SSG 유니폼을 입고 뛰는 중이다. 5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2.63의 성적을 거두며 부활 찬가를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의 부상이라 그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노경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올 시즌을 준비했다. 그래서 부상당한 게 너무 안타깝다. 작년에 선발 투수들의 부진으로 시즌 내내 힘든 경기를 많이 치렀는데 경은이가 합류하면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위를 선보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140대 중반을 던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꾸준히 노력했다는 증거 아닌가. 경은이가 우리 팀에 합류하면서 젊은 선수들한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인데 경기 중 사고로 이탈했다는 게 가슴 아프다. 열심히 재활해서 복귀한다고 했으니 우린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폰트의 퍼펙트게임 무산에 대해
4월 2일 SSG의 윌머 폰트는 NC와의 원정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무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KBO리그 사상 최초로 어떤 주자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9이닝 퍼펙트였다. 하지만 타선의 침묵으로 10회 연장으로 이어졌고, 폰트는 10회 말 등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SSG가 10회초 4점을 뽑아낸 터라 당시 104구의 공을 던진 폰트의 등판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마운드에는 폰트 대신 김택형이 올라갔다. 김택형은 손아섭한테 볼넷 출루를 허용하는 걸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당시 야구 팬들은 김원형 감독이 폰트를 10회에 올리지 않은 데 대해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김 감독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나도 그 경기 후 며칠 동안 머리가 아팠다. 그 결정에는 선수의 의지도 중요했다. 폰트가 9회 던지고 나서 더 이상 던질 힘이 없다고 하더라. 개막전이었고, 이미 104개의 공을 던진 터라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KBO리그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무산된 건 아쉽지만 우린 그 후를 생각해야만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입장에선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언젠가는 터질 거란 믿음의 오태곤
4월 29일 SSG는 두산전에서 연장 12회 끝내기 안타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은 이날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던 오태곤. 당시 1할대 타율의 오태곤 대신 다른 타자를 내세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원형 감독은 대타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오태곤을 내보냈는데 그게 적중했다. 김 감독은 오태곤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태곤이가 시즌 개막 후 타격 부진을 겪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분명 한 건 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또한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개인적으로도 태곤이의 안타를 기대했다. 시범 경기 때까지만 해도 타격감이 괜찮았는데 시즌 개막 후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안타가 안 나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1위 팀 감독이지만 그럼에도 고민은 있을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앞으로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는 걸 가장 큰 목표로 꼽았다.
“4월 한 달 동안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 이 선수들을 어떻게 하면 시즌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지가 고민이다. 아마 모든 팀 감독들의 걱정이 선수들 부상일 것이다. 야구장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의 함성과 응원가를 들을 때마다 전율이 인다. 이러한 팬들 덕분에 선수들이 좋은 에너지를 받아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 같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정이 계속 되고 있지만 이 분위기를 잘 살려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