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봉승 기록’ KBO 임호균 73구…MLB 바렛 58구, 매덕스 100구 이하 16번
김광현은 경기 후 "공 3개로 한 이닝 아웃카운트 3개를 잡은 건 처음이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마침내 해볼 수 있게 돼 정말 기분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대표적인 탈삼진형 투수 중 한 명인 김광현이 완급 조절로 맞혀 잡는 피칭의 즐거움에도 푹 빠진 눈치다. 실제로 김광현은 이 경기 초반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면서 투구 수가 예상보다 늘었지만, 6회 말을 공 3개로 끝낸 덕에 84개만 던지고 선발 투수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올 시즌 처음으로 나흘만 쉬고 주 2회 등판(3일 화요일과 8일 일요일)한 체력적 부담을 한결 덜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김광현은 내친 김에 또 다른 버킷리스트도 공개했다. "60구대에서 완투를 하는 것"이다. 그는 "퓨처스(2군)리그에서 공 70구 대로 완투를 한 투수를 본 적이 있다. 1군에서 70구 미만으로 완투를 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69구 이하 완투 가능할까
김광현이 자신의 버킷리스트에서 이 항목을 지우려면 최대 69구 이내로 9회를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한 이닝을 평균 7.6구로 끝내고, 2.5구 안에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볼넷은 절대 금물이고, 3구 삼진도 이 목표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무사나 1사 후 주자가 1루에 나가면 다음 타자를 병살타로 잡는 것도 필수다. 사실상 퍼펙트게임에 가까운 경기를 펼쳐도 달성하기 어려운 투구 수다. 실제로 메이저리그(MLB)에서 나온 23회의 퍼펙트게임 중 70구 이내로 끝난 경기는 단 한 번도 없다. 100년도 더 전인 1908년 10월 2일, 에디 조스가 던진 74구가 역대 최소 투구 퍼펙트게임 기록이다. 그 다음으로는 데이비드 콘의 88구(1999년 7월 18일)다.
70구 미만 완투승도 KBO리그에선 전례가 없다. 역대 최소 투구 완투승(완봉승 포함) 기록 보유자인 임호균(청보 핀토스·이하 기록 달성 당시 소속팀)이 그 기준에 근접했을 뿐이다. 면도날 제구로 명성을 날린 임호균은 프로 5년 차였던 1987년 8월 25일 해태(현 KIA) 타이거즈전에서 공 73개로 완봉승을 올렸다. 이후 KIA 애런 브룩스가 59구(2020년 6월 10일 수원 KT 위즈전), 두산 베어스 맷 랜들이 61구(2006년 7월 6일 잠실 KIA전)로 완봉승을 각각 작성했지만, 모두 5회 강우콜드게임으로 인한 행운의 기록이었다. 정규이닝을 채운 완봉승으로는 임호균의 73구가 독보적이다.
임호균은 평소 투구 인터벌이 짧고 빠르게 승부하는 투수로 유명했다. 그만큼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거침 없이 공을 던졌다. 동시에 상대팀인 해태 타선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공격적인 유형의 타자가 많았다. 임호균은 당대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던 해태의 강타자들을 빠른 속도로 맞혀 잡으면서 7회까지 볼넷과 몸에 맞는 볼 하나만 내주고 무피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8회와 9회 선두타자에게 안타 하나씩 맞아 노히터가 무산됐지만, 임호균은 곧바로 후속 타자에게 병살타를 유도해 곧바로 주자를 없앴다. 최종 성적은 9이닝 2피안타 1볼넷 1사구 무실점. 1시간 54분 만에 '73구 완봉승'이라는 난공불락의 기록이 완성됐다. 아웃카운트 27개 중 삼진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눈여겨 볼 만한 특징이다.
임호균은 이전에도 기념비적인 경기에서 완봉승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던 1985년 9월 21일 청보와 부산 홈 경기에서 공 96개로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이때 청보 선발 투수였던 장명부 역시 105구로 3점만 내주고 완투패했다. 양 팀이 투수를 한 번도 교체하지 않고 공 201개가 오간 이 경기는 1시간 33분 만에 끝났다. 아직까지 KBO리그 역대 최단 시간 경기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롯데 윤학길은 1995년 6월 21일 잠실 OB(현 두산)전에서 공 75개를 던지고 완투패한 적이 있다. 역대 최소 투구 완투패. 임호균의 최소 투구 완투승 기록과 단 2개 차다. 다만 윤학길은 원정팀 소속이고 패전 투수라 8이닝만 소화했다. OB의 승리로 9회 말은 열리지 않았다. 역대 KBO리그 노히트노런 중 가장 적은 공을 던진 투수는 1988년 4월 2일 롯데와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99구로 대기록을 작성한 OB 장호연이다. 장호연의 기록은 역대 노히트노런 중 유일한 100구 미만·무탈삼진 경기였다.
#MLB엔 60구 미만 완봉승도 있다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은 MLB에선 김광현의 버킷리스트를 먼저 이룬 투수가 존재한다. 붉은 머리카락 때문에 '레드'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던 찰스 헨리 바렛이다. 그는 보스턴 브레이브스 소속이던 1944년 8월 10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공 58개만 던지고 완봉승을 거뒀다. 58구는 7이닝을 100구 안팎으로 막아내는 수준급 선발 투수가 4~5이닝을 소화할 정도의 투구 수에 불과하다. 바렛은 이날 안타 2개와 볼넷 1개만 허용한 뒤 삼진 하나를 곁들여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야간에 진행됐던 이 경기는 바렛의 활약 덕에 1시간 15분 만에 끝나 MLB 역사상 최단시간 야간경기로 남아 있다.
괴짜 선수였던 바렛은 1937~1949년 13년간 선수생활을 했지만, 1945년 단 한 시즌만 21승 9패 평균자책점 2.74로 최고의 활약을 했을 뿐 나머지 시즌은 평범한 투수에 머물렀다. 일부에선 "1945년에만 마운드에서 전력투구를 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정도다. 58구 완봉승을 올린 1944시즌에도 바렛은 9승 16패로 개인 최저 승률(0.360)을 기록했는데, 단 한 경기에서 반짝 호투해 역사적인 진기록을 남겼다. "바렛의 친정팀이었던 신시내티 선수들이 친구처럼 생각하고 방심하다 기록의 희생양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바렛의 58구 완봉승 기록은 한때 관련 자료가 분실됐다는 이유로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신시내티 타임즈의 저명한 야구기자 프랭크 그레이슨이 추후 사실 여부를 재확인해 역대 최소 기록으로 공인받았다. MLB가 투구 수를 공식 기록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1988년 이후로는 밥 튜크스베리(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76구가 최소 경기 완투승 기록으로 꼽힌다. 튜크스베리는 1990년 8월 1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9이닝 동안 공 76개만 던지면서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해 완봉승을 올렸다.
MLB 역대 최고의 '컨트롤 마법사'로 꼽히는 그렉 매덕스도 이에 뒤지지 않는 기록을 갖고 있다. 매덕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이던 1997년 7월 23일 시카고 컵스와 리글리필드 원정 경기에서 공 78개로 완투승을 올렸다. 9이닝 동안 볼넷 없이 안타 5개로 1점만 내줬고, 삼진은 6개를 잡아냈다. 이날 그가 던진 78구 중 63개(80.7%)가 스트라이크였고, 볼은 불과 15개였다. 또 매덕스가 한 타자에게 5구 이상을 던진 것은 7회 말 선두타자 마크 그레이스 타석이 유일했다. 그레이스는 볼카운트 2B-2S에서 매덕스의 5구째를 받아쳤다가 외야 플라이로 아웃됐다.
MLB에서 355승을 올리고 은퇴한 매덕스는 개인 통산 35번의 완봉승 중 16번을 100구 이하로 막는 기염을 토했다. 100구 이하로 완투한 경기도 27번이나 된다. 이런 이유로 MLB에선 '100구 미만 완봉승'을 '매덕스 게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LA 다저스 시절인 2019년 5월 8일 애틀랜타전에서 9이닝을 93구로 막고 완봉승을 올렸을 때도 현지 소셜미디어(SNS)에 '매덕스 게임'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외에 일본 프로야구에선 한큐 브레이브스의 시바타 에이지(1942년)와 마이니치 오리온스의 우에무라 요시노부(1957년)가 기록한 71구가 역대 최소 투구 완투승 기록이다. 1실점 한 우에무라와 달리 시바타는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역대 최소 투구 완봉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김광현이 희망으로 언급한 70구 미만 기록에 거의 근접한 투구 수다.
#1이닝 3구삼진 3개 기록도
삼진은 투수가 야수의 도움 없이 홀로 잡아낼 수 있는 유일한 아웃카운트다. 이 때문에 한 투수가 1이닝을 공 9개로 세 타자 연속 삼진 처리하는 것을 '무결점 이닝(Immaculate Inning)'이라고 부른다. 투수의 힘으로 그 이닝을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의미에서다. 김광현이 1이닝을 공 3개로 끝낸 지 이틀 만에 롯데 토종 에이스 박세웅은 '무결점 이닝'을 만들면서 또 다른 최소 투구 진기록을 세웠다.
박세웅은 지난 10일 부산 NC 다이노스전에서 5회 초 세 타자를 연속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워 KBO리그 통산 여덟 번째로 1이닝 최소 투구 3탈삼진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박세웅은 6-0으로 팀이 넉넉히 앞선 5회 초 NC 선두 타자 이명기와 다음 타자 노진혁을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시킨 데 이어 마지막 타자 오영수에게도 세 번 모두 헛스윙을 유도해 공 9개로 마지막 삼진을 얻어냈다. 롯데 소속 투수로는 사상 최초의 기록. 8이닝 3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이튿날 "꽤 오래 야구를 했지만, 1이닝 9구 3탈삼진은 MLB와 마이너리그에서 한 번씩밖에 못 봤다. 박세웅의 기록을 목격한 게 세 번째가 되는데, 무척 특별한 순간이었다"며 "팀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박세웅이 최고의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살려줬다. 그의 성장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고 박수를 보냈다.
박세웅에 앞서 한 이닝 최소 투구 3탈삼진 기록을 세운 투수는 총 7명이다. 두산 다니엘 리오스가 2007년 6월 16일 인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역대 최초로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냈다. 그 전까지는 해태 선동열(2회)을 포함한 13명의 투수가 공 10개로 1이닝 3탈삼진을 잡은 게 최소 투구 기록이었다. 리오스는 두산이 1-0으로 앞선 8회 말 이진영, 박경완, 최정을 연속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KBO리그에 첫 이정표를 세웠다. 동시에 9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순조롭게 달성했다.
그 다음은 두산 금민철이다. 2년 뒤인 2009년 5월 27일 잠실 히어로즈전 9회 초에 클리프 브룸바, 김일경, 송지만을 상대로 리오스와 같은 기록을 세웠다. 2012년엔 두 차례 나왔다. 넥센(현 키움) 강윤구가 2012년 4월 11일 목동 SK전 4회 초(안치용-박정권-조인성), 한화 이글스 김혁민이 9월 21일 대전 넥센전 2회 초(이성열-조중근-문우람)에 각각 달성했다. 이어 삼성 라이온즈 우규민이 2017년 4월 1일 대구 KIA전 5회 초(이홍구-김선빈-로저 버나디나), NC 강윤구가 2018년 7월 18일 인천 SK전 7회 초(노수광-윤정우-제이미 로맥)에 차례로 해냈다. 강윤구는 유일하게 두 차례 1이닝 9구 3탈삼진을 경험한 투수인데, 소속팀은 넥센과 NC로 각각 달랐다. 두산 라울 알칸타라는 2020년 10월 8일 인천 SK전 2회 말 고종욱, 김성현, 박성한을 모두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 진기록을 세우고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도 있다. LG 트윈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다. 켈리는 2019년 8월 29일 잠실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2회 초 김태균, 백창수, 송광민을 연속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3회 말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기가 중단됐고, 결국 30분 만에 우천 노게임이 선언됐다. 알칸타라보다 먼저 달성한 KBO리그 6번째 1이닝 9구 3탈삼진 기록도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심지어 노게임 선언 5분 만에 얄궂게도 비거 그치고 거짓말처럼 비구름도 사라졌다. 호투하던 켈리 입장에선 더욱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