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물량 풀려도 해결 난망…글로벌 공급망 정상화 시급
인도네시아는 4월 팜유 원유는 물론 팜스테아린을 제외한 모든 파생상품의 수출을 잠정 금지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팜유 업자들이 최근 높아진 국제 가격을 노려 수출에만 집중하자 내수시장 식용유 값이 급등하고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국내에서도 식용유 대란이 빚어졌다. 인도네시아의 조치는 내수시장 가격 안정을 위해서다. 국제 팜유 가격이 오른 이유는 밀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국의 경제 봉쇄, 인도의 폭염, 미국과 프랑스의 가뭄 등으로 밀(소맥) 가격이 급등하자 대체재인 옥수수 값도 치솟았다. 인도가 최근 밀 수출을 금지하면서 옥수수 값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 팜유는 화석연료의 대체재다. 국제 유가상승도 팜유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국제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된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주요국 6개국(EU·일본·영국·캐나다·스웨덴·스위스)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5에 근접했다. 최근 20년 사이 최고치다. 달러 값이 오를수록 신흥국 화폐가치는 하락한다. 신흥국 입장에서는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이 오른다. 이에 맞서려면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 금리가 오르면 경제 효율이 낮아진다. 이는 외국자본의 이탈(달러공급 축소)로 이어질 수 있고 다시 화폐가치의 하락을 초래한다. 반대로 미국은 금리를 높이면 달러 가치가 상승해 수입 물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강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비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식량 문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 금수조치에 나선 국가들은 16개국에 달한다. 전세계 교역량 내 식량 수출제한 금지 조치가 차지하는 칼로리 비중은 17%로 2008년 식량위기 당시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보다도 높다.
최근 국제연합(UN)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올해 작황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공급과 재고를 합하면 수요를 웃돌고 있어서다. 러시아는 2020년 기준으로 전세계 밀 수출량의 17.6%를 수출했고, 우크라이나도 세계 전체 밀 수출량의 8% 정도를 공급했다. 우크라이나의 옥수수 수출량도 전세계 수입 수요의 13%에 달한다. 판로가 막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축적됐던 물량이 풀리면 가격 안정 효과가 클 수 있다는 것이 유엔의 판단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물량이 시장에 풀려도 식량 가격 상승세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전쟁으로 올해 우크라이나 파종은 치명상을 입었고 내년 정상 수확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식량 생산과 운송 등에 필요한 연료와 비료 값도 이미 크게 높아졌다. 국제 비료 가격은 역사상 최고치를 매월 경신 중이다.
비료 가격이 진정되기 위해서는 국제유가 및 에너지 가격의 하락 전환이 필수적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경제를 봉쇄하면서 최근 국제유가는 일단 상승세가 주춤하다. 중국의 봉쇄가 풀리면 수요가 되살아나며 국제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의존하던 천연가스와 원유 구매처를 최근 미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덕분에 한때 빚에 허덕이던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은 최근 돈벼락을 맞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리서치 업체 리스태드 에너지에 따르면 미국 셰일업체들은 올해 유가상승 덕에 약 1800억 달러(약 228조 원)에 달하는 잉여현금흐름(FCF)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벌어들인 현금보다 많은 액수다.
하지만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은 생산량 증가를 위한 투자에는 소극적이다. 과거 증설로 공급과잉이 초래돼 경영난을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들도 증설에 신중하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셰일가스와 가격 경쟁을 벌이다 재정난에 직면했었다. 이와 관련,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수급 환경 상 에너지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