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라면 주택 매입이나 계획된 지출 유리…투자자라면 현금·단기채권·부동산 투자가 적격
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8% 올랐다. 이는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흐름세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이에 따른 미국의 금리 인상,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상하이 봉쇄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 결과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흐름이 금세 해소되기는커녕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 시기가 지속되면 현금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에 맞서 내 자산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고, 소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은 쓰는 게 좋을까, 저축을 하는 게 좋을까.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현명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본다.
다가오는 여름휴가를 위해 찜해두었던 항공료가 예년보다 너무 비싸졌거나, 같은 양의 식료품을 사는데도 불과 몇 달 새 가격이 올라 놀랐는가. 직장인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점심값 때문에 놀라긴 마찬가지다. 실제 지난 몇 달 동안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가뜩이나 움츠러든 소비 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런 경우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가정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소비자가 아닌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인플레이션과 함께 점점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현금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요컨대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때면 오히려 적절한 곳에 돈을 써서 오히려 돈을 벌어야 한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소비자’로서는 어떤 소비를 해야 하며 ‘투자자’로서는 어떤 투자를 해야 할까. 먼저 소비자라면 물가 흐름에 따라 소비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물가가 다소 진정될 기미가 보인다면 지출을 줄이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투자하는 게 좋다. 즉, 현금을 보유하는 쪽이 더 이롭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면 미래에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어차피 지출해야 할 곳이 있다면 돈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지출하는 게 낫다. 주택 구입 자금을 융자하는 방법부터 어떤 자동차를 구입할지 등 상황에 따라 재정 계획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
#임대보다는 매입을 하라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주택을 임대하는 것보다 매입을 하는 게 낫다. 집주인은 임대차 만기가 도래할 때면 인플레이션 수준으로 임대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세입자라면 당신의 주거비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집을 사야 하는 이유는 첫째,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현재의 돈의 가치는 앞으로 더 하락하게 된다는 점, 둘째, 토지, 자재, 인건비 등 전반적인 비용이 모두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승한다는 점 때문이다. 주택을 구입하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라
만일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인플레이션 시기는 대출을 하기에 이상적인 시기다. 물론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는 경우에 한해서다. 이런 경우 인플레이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장점은 인플레이션으로 조정된 주택담보대출 금액의 가치가 인플레이션 상승과 동일한 비율로 하락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 시켜라
연비가 나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연비가 좋은 휘발유차로 교체하거나 혹은 전기차 구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는 전기 요금을 줄이기 위해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거나 난방 및 냉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창문과 문틈을 막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공급 부족에 대비하라
높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공급 부족 문제가 꽤 흔하게 발생한다. 이를 대비해서 부패하지 않는 저장 식품이나 기타 생활필수품을 비상용으로 비축해두는 게 좋다. 가령 화장지나 통조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상품 가격이 예금 금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른다면 고금리 저축을 하게 되는 셈이다.
#내구성이 뛰어난 제품을 구입하라
세탁기나 건조기처럼 오래 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수리를 받을 확률이 낮은 내구성이 뛰어난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입하는 게 좋다. 이런 제품은 가격은 더 비쌀 수 있지만, 훗날 불필요한 추가 지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산을 세워 지출하라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예산을 세워 지출을 통제하는 게 좋다. 특히 교통비, 식료품비, 교육비, 의료비와 같이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출이 그렇다. 만일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지금 대량 구매를 해두는 게 낫다. 인플레이션의 방향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각자 스스로 자신의 재정 상태는 통제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
#현금을 비축하라
‘모닝스타’의 포트폴리오 전략가인 에이미 아노트는 “현금은 종종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금은 성장 자산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이 단기 금리 상승을 동반한다면 현금 역시 명목상으로는 보통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고 지적했다.
재무설계자인 애나 은지에-콘테도 이에 동의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 입증되긴 했지만, 일정 부분 현금을 항상 고수익 예금 계좌나 MMA(머니마켓계좌) 또는 CD(양도성예금증서)에 넣어두라고 조언했다. 다만 은지에-콘테는 “그렇다고 너무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외벌이 가구는 6~9개월, 맞벌이 가구는 6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는 현금을 따로 마련해두라고 권고했다.
#단기 채권을 매입하라
단기 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CD나 저축성 예금에 현금을 넣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으며, 현금 유동성도 확보하게 된다. 물가 상승이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장기 채권보다는 단기 채권이 유리하다.
이와 관련, 재무설계사인 다이한 라수스는 “단기 및 중기 채권 투자는 고수하되, 장기 채권 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수정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하면 채권이나 채권형 펀드는 금리 상승에 영향을 덜 받으므로 이때는 반드시 단기 채권 및 채권 펀드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도 조언했다. 단기 채권은 또한 만기가 도래하면 더 높은 금리의 단기 채권으로 재빨리 갈아타서 재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식
아노트는 “주식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유용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경우에는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수스 역시 “물가가 상승할 때는 투자 수익률을 저해할 수 있는 급격한 포트폴리오 변경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물가가 상승하든 안정되든 분산 투자를 해야 효과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부동산은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기간 동안 투자하기에 적합한 분야다. 보통 부동산의 가치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임대인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소득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승하는 인플레이션과 보조를 맞추게 된다.
주택을 구입할 여건이 안 된다면 리츠(부동산투자신탁)나 또는 리츠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와 같은 간접 투자 상품을 노려볼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나고 있는 시장 변화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노트는 “코로나로 인한 영향 때문에 원격근무나 재택근무를 채택하는 기업이 늘면서 사무실과 상점 등 상업용 부동산 수요는 불확실해진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금
금은 단기적으로는 항상 인플레이션 상승을 방어하지는 못하지만, 장기적(수십 년을 의미)으로는 인플레이션과 동행하는 경향이 있다.
#현물
석유, 금속, 농산물과 같은 원자재 가격은 보통 인플레이션과 함께 상승하므로 좋은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자재 투자도 때로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품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크게 변동되는데, 이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사실 예측하기 힘들다. 따라서 원자재 투자는 위험 부담이 큰 투자에 속한다. 성공한다면 높은 수익을 기록하지만 그만큼 손실 위험도 크다.
“최고의 투자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 버핏이 말하는 인플레이션 방어 비법
개인이 인플레이션을 '완벽하게'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의 없다. 하지만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고 경영자이자 전설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은 “개인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22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보호장치 가운데 하나는 “기술을 연마하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오랜 조언을 되풀이했다. 요컨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인플레이션 방어는 특정한 어떤 일을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다”라는 의미다.
버핏은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예로 들면서 “(사람들은) 당신이 제공하는 기술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생산하는 것의 일부를 당신에게 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버핏은 현금과 달리 기술로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수요가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달러의 가치가 어떻든 그 기술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수요가 있게 된다. 버핏은 “당신이 가진 어떤 능력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최고의 투자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여기에는 세금도 전혀 부과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조언은 버핏이 2009년 경기 침체 말기에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한 충고와 같은 맥락이다.
또한 버핏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는 “달러 가치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수요가 많은 제품을 만드는 ‘근사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버핏은 ‘코카콜라’와 같은 회사를 예로 들면서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탄산음료를 마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품 가격이 오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어쨌든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에 돈을 지불하게 돼있다”라고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