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부상으로 뒤늦게 1군 합류…데뷔전 호된 신고식 이후 연속 호투로 ‘승리조’ 승격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간 문동주
오른손 정통파 투수인 문동주는 대전·충청 지역 연고팀인 한화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진흥고 1학년 때 내야수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는데, 2년 만에 시속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리면서 고교 야구 최고 투수로 올라섰다. 많은 강속구 투수가 '제구 불안'이라는 고질적 약점에 시달리지만, 문동주는 구속이 늘면서 오히려 제구가 더 안정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해 고교 무대 11경기에서 48과 3분의 2이닝 동안 삼진 72개를 잡으면서 볼넷은 10개만 내줬다. 키(188㎝)도 크고 몸이 유연해 "프로에서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시속 160㎞까지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도 고향팀 KIA 유니폼을 입지 못한 건, '제2의 이종범'이라 불리는 동갑내기 내야수 김도영과 같은 지역 고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김도영은 동성고 시절 콘택트 능력, 장타력, 빠른 발, 수비력, 강한 어깨를 두루 갖춰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극찬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고교야구 21경기에서 타율 0.456, 출루율 0.531, 장타율 0.608, 도루 17개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냈다.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입을 모아 "김도영 수준의 내야수는 향후 수년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역대급' 유망주 두 명을 눈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KIA는 결국 내야수가 필요한 팀 전력을 고려해 김도영을 1차 지명했다.
그러자 한화는 큰 고민 없이 곧바로 문동주를 1차 지명해 대전으로 데려갔다. 한화는 전년도 최하위팀에 주어지는 1순위 전국 지명권(전년도 하위권 3팀이 성적 역순으로 연고 지역과 무관하게 1차 지명할 수 있는 권리)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이미 둘 중 KIA가 뽑지 않는 선수를 지명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한화는 고향팀에 가지 못한 문동주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김도영(4억 원)보다 1억 원 더 많은 계약금을 안겼고,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을 선물하면서 환영의 뜻을 표현했다.
#불펜피칭 광속구에 야구계 들썩
한화는 계약서에 사인한 직후부터 '문동주 특별 관리'에 돌입했다. 문동주가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열린 23세 이하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등 다른 고교 투수들보다 많은 공을 던졌다는 점을 고려해 3개월간 공을 잡지 않고 휴식하게 했다. 또 경남 거제로 떠나는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문동주를 제외하고 충남 서산 2군 캠프로 보내 몸 상태에 맞는 단계별 투구 프로세스를 거치게 했다. 이에 따라 문동주는 1월 들어 처음으로 캐치볼을 시작했고, 2월부터 조금씩 투구 수와 힘의 단계를 늘려 나가면서 신중하게 몸 상태와 구위를 점검했다.
그리고 2월 24일 90%의 힘으로 진행한 30구 불펜 피칭에서 마침내 직구 최고 시속 153㎞를 찍었다. 최원호 한화 2군 감독은 당시 "아직 신인이라 '몇 퍼센트의 강도'라는 개념이 확실하지 않을 테니 '네가 느끼기에 전력은 아니다'라는 느낌으로 던져보라고 했다"며 "랩소도 장비로 측정한 구속을 보고 2군 코치진 모두 놀랐다. 직구뿐 아니라 커브도 정말 좋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구속이 빠른데 제구도 좋고, 훈련 태도도 무척 성실하다. '특급'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투수"라고 했다.
고교 시절 "시속 150㎞ 강속구를 던진다더라"고 소문났던 투수들 중 대부분은 정작 프로에 와서 명성에 걸맞은 구속과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문동주는 달랐다. '진짜' 광속구를 뿌렸다. 3월 1일 마침내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앞에서 처음 불펜 피칭을 진행했고, 또 90%의 힘으로 최고 구속 155㎞를 기록해 야구계를 들썩이게 했다. 당시 메이저리그(MLB) 직장 폐쇄 여파로 국내에 머물며 한화 선수단과 함께 훈련하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도 문동주의 피칭을 바로 뒤에서 지켜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MLB 올스타 출신인 호세 로사도 투수 코치는 "가끔 주목과 관심을 끌도록 타고난 선수들이 있는데, 문동주도 그런 유형인 것 같다. (취재진과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집중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자기 공을 던졌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3월 12일부터 문동주를 시범경기에 내보내 본격적인 실전 점검을 시작하려던 한화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제동이 걸렸다. 문동주가 3월 9일 불펜 피칭을 마친 뒤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고, 병원 검진 결과 내복사근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문동주는 병원의 권유에 따라 2주간 안정을 취한 뒤 다시 재활군에서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문동주는 시범경기 문턱에서 뒷걸음질을 쳤고, 정규시즌 개막 엔트리 합류도 불발됐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다쳐서 마음이 안 좋았다. (관심이 집중된 데 대해) 부담을 안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부담이 됐던 것 같다"며 "동기들이 먼저 잘하고 있다고 해서, 또 내가 서둘러서 1군에 올라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몸 상태에만 신경을 썼다"고 했다.
#2군에서 시속 156㎞ 찍고 1군 데뷔
문동주가 대망의 프로 데뷔전을 치른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였다. 한화는 경기가 없던 5월 9일 월요일에 문동주를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했다. 문동주가 2군 경기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본 뒤 "이제 1군에서도 자기 공을 던질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동주는 1군 합류 전 2군에서 진행한 세 차례 실전 점검을 순조롭게 마쳤다. 4월 30일 LG 트윈스와 2군 홈 경기 7회 마운드에 올라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정식 경기에 투입됐다. 지난해 9월 야구월드컵 이후 8개월 만의 실전 등판. 성적은 1이닝 무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이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55㎞,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53㎞로 측정됐다.
문동주는 이어 5월 3일 SSG 랜더스와 2군 연습경기(1이닝 무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에서 다시 최고 시속 156㎞, 직구 평균 시속 154㎞를 기록했다. 1군 등록 전 마지막 2군 등판인 6일 LG전(1이닝 무피안타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에서도 최고 156㎞, 직구 평균 시속 152㎞의 강속구를 자유자재로 뿌렸다. 특히 마지막 LG전에서는 입단 후 두 달간 연마한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해 실점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은 문동주는 마침내 LG와 주중 3연전을 앞둔 10일 잠실구장에 등장했다. 한화는 문동주의 보직을 고민하다 아직 프로 경험이 없고 최근 부상 이력이 있는 점을 고려해 일단 불펜 투수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정민철 한화 단장은 "문동주는 궁극적으로 우리 팀 에이스로 성장해야 할 투수다. 다만 1군에서 프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먼저 짧은 이닝을 맡기면서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며 "내복사근 부상이 아니었다면 선발로 출발했겠지만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지금은 몸 상태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불펜에서 프로의 경험치를 쌓는 게 먼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문동주가 올 시즌 내내 불펜 투수로 뛴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 단장은 "한 시즌을 변수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 끌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며 "문동주가 충분히 1군 마운드에 익숙해졌다고 판단하면, 상황에 따라 현장과 협의해 계획했던 선발 프로그램을 더 빨리 가동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데뷔전 3분의 2이닝 4실점
문동주가 1군에 올라온 10일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처음으로 취재진에 더그아웃이 다시 개방된 날이었다. 문동주는 경기 전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모든 질문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예상보다 1군에 늦게 합류했지만, 그만큼 구단과 코치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100% 몸 상태로 준비를 잘했다"며 "어버이날(8일)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1군 승격 전화를 받아 부모님께 좋은 선물이 됐다"고 활짝 웃었다. 또 "1군 버스로 이동한 게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다. 불펜으로라도 1군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게 감사하다"며 "앞으로 나도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수베로 감독도 "문동주는 좋은 재능이 있고, 던질 때 본인을 믿는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을 프로 무대에서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면서 "일단 첫 2주는 편한 상황에서 불펜으로 등판하게 하고, 연투는 시키지 않겠다"고 활용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문동주는 바로 그날 LG전에서 한화가 1-5로 뒤진 8회 말 팀의 다섯 번째 투수로 등판해 처음으로 KBO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문제는 프로의 벽이 문동주의 예상보다 더 높았다는 거다.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에 오른 문동주는 LG 선두타자 오지환에게 슬라이더를 던지다 좌전 안타를 맞아 첫 피안타를 기록했다. 다음 타자 유강남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엔 문보경과 이재원에게 연속으로 초구에 장타를 허용해 순식간에 2점을 내줬다. 당황한 문동주는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타자 서건창에게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난 공을 연거푸 던졌다. 스트레이트 볼넷. 계속된 1사 1·3루에선 홍창기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맞아 추가 1실점 했다. 박해민의 좌전 안타로 2사 1·2루 위기도 이어졌다. 결국 한화 벤치는 문동주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불펜 신정락을 올렸다. 신정락이 김현수에게 적시타를 맞아 문동주가 남긴 한 명이 추가로 홈을 밟았다.
최종 성적은 3분의 2이닝 4피안타 1볼넷 1탈삼진 4실점. 안타 4개 중 3개가 2루타 이상의 장타였고, 제구는 들쑥날쑥했다.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공 26개를 던졌다. 관심을 모았던 최고 구속은 시속 154㎞를 기록했지만, 던지는 족족 맞아나가니 큰 무기가 되지 못했다. 호되다 못해 참담한 프로 신고식이었다.
#놀라운 회복력
좋은 선수와 평범한 선수의 차이는 실패 이후 회복력에서 갈린다. 충격적인 첫 등판을 마친 문동주는 이틀간 몸과 마음을 재정비한 뒤 13일 대전 홈 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한화가 롯데 자이언츠에 0-8로 뒤진 7회 초 다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공 13개로 세 타자를 아웃시켰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7㎞를 찍었다. 첫 삼자범퇴. 데뷔전의 트라우마는 벌써 씻어버린 듯했다.
첫 등판의 긴장과 부담을 덜어낸 문동주는 사흘 전과 전혀 다른 투수로 보였다. 롯데 선두 타자 추재현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뒤 다음 타자 지시완에게는 초구 슬라이더로 3루수 땅볼을 유도했다. 마지막 타자 이학주와는 8구 승부 끝에 커브를 던져 중견수 플라이로 이닝을 끝냈다. 공 13개 중 직구가 7개, 변화구(슬라이더·커브)가 6개였다. 직구 평균 구속도 시속 155㎞에 육박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동주는 이틀 뒤인 15일 롯데전에서 7-3으로 앞선 6회 초 투입됐다. 처음으로 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문동주가 나선 것이다. 한화가 10연패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 어깨도 무거웠다. 그런데도 문동주는 앞선 등판보다 더 좋은 투구를 했다. 탈삼진 1개를 곁들이면서 다시 삼자범퇴. 수베로 감독은 "문동주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멘탈이 굉장히 좋은 투수인 걸 재확인했다"고 흐뭇해했다.
이제 문동주는 빠른 속도로 팀 내 입지를 넓혀 가고 있다. 18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3-1로 앞선 8회 초 구원 등판해 데뷔 첫 홀드를 올렸다. 수베로 감독이 경기 전 "문동주는 적응력이 유독 뛰어나다. 앞으로는 조금 더 중요한 상황에서 나설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문동주는 삼성 베테랑 타자 오재일에게 커브를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이원석에게 시속 155㎞ 직구를 던지다 빗맞은 중전 안타를 허용했다. 그러나 다음 타자 김태군을 2구 만에 유격수 땅볼로 유도해 병살타로 이닝을 종료했다. 데뷔 후 네 번째 등판 만에 치른 불펜 승리조 시험도 일사천리로 통과한 모양새다. 1이닝 동안 소화하는 투구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동주는 "데뷔전은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다. 프로 첫 경기라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경기 운영이 너무 안 좋았다"고 돌이키면서 "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동주가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치면서 2022년 슈퍼 루키 경쟁도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